끝내 살리지 못한 먹거리예산, 실종된 먹거리복지

  • 입력 2023.01.08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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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해 11월 16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친환경농업 생산자-소비자 결의대회’ 참석자들이 친환경농업 확대, 임산부·초등학생 먹거리지원예산 복원 등을 외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해 11월 16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친환경농업 생산자-소비자 결의대회’ 참석자들이 친환경농업 확대, 임산부·초등학생 먹거리지원예산 복원 등을 외치고 있다. 한승호 기자

푸드테크(먹거리 관련 첨단기술)를 강조하며 ‘먹거리산업’을 육성하려는 윤석열정부 하에서 먹거리복지는 실종됐다. 기획재정부의 먹거리기본권 관련 예산(임산부 친환경농산물 지원사업 예산 157억8,000만원, 초등돌봄교실 과일간식 지원사업 예산 72억원) 전액 삭감이 현실화된 가운데, 최근 지자체 및 농민·먹거리운동 진영의 분위기는 어떠할까.

기재부의 예산 삭감 명분은?

기재부의 전액 삭감 명분은 무엇일까. 먹거리지원사업의 통합을 위해 올해부턴 시범사업으로 그동안 진행돼 온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지원사업과 초등돌봄교실 과일간식 지원사업을 일시 중단하고, 농식품바우처 실증연구 사업(농식품바우처 사업)과 통합해 2025년부터 본 사업으로 실시하겠다는 게 기재부의 입장이다. 실제로 올해 농식품바우처 사업 예산은 지난해 89억원보다 59억1,200만원 늘어난 148억1,200만원이다.

그러나 농식품바우처 사업은 정부가 규정하는 ‘저소득층(중위소득 50% 이하 가구)’으로 사업대상을 한정 짓는 데다 이용자가 ‘농식품바우처카드’라 적힌 카드를 써야만 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낙인효과를 낳는, 전형적인 선별 복지정책이다.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지원사업의 경우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임산부라면 누구나 지원 대상인 사업이었던 만큼, 농식품바우처 사업에 통합시킬 시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지원사업의 보편적 복지 성격은 담보할 수 없다.

한국친환경농업협회(회장 강용, 한친협)는 지난해 12월 27일 발표한 먹거리예산 삭감 규탄 성명에서 “저소득층 가구를 지원하도록 설계된 농식품바우처 사업에 나머지 사업을 통합 운영할 경우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이처럼 개별 사업의 대상자와 사업 고유의 특성을 외면한 채 인위적으로 통합하겠다는 것은 해당 사업들에 대한 몰이해 내지는 (예산) 삭감을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한편으로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회장 이학구)가 지난해 12월 26일 성명에서 지적했듯이, 초등돌봄교실 과일간식 지원사업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체결 당시 국내 과수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유무역협정 국내보완대책 367가지 중 하나였던 만큼, 이 보완대책을 기재부의 손으로 없애버렸다는 비판도 제기될 수밖에 없다.

한편 정부 예산삭감으로 인해 먹거리 지원사업을 진행하던 지자체들도 당혹스러운 상황이다.

일례로 인천시(시장 유정복)는 관내 GAP인증 배를 돌봄교실에 공급하는 초등돌봄교실 과일간식 사업이 난관에 봉착했다. 7억4,000만원의 사업비 중 국비(초등돌봄교실 과일간식 지원사업 예산)가 50%인 3억7,000만원을 차지했는데 그 50% 예산이 증발한 것이다. 선택은 지자체 자체 부담을 늘려서 사업을 진행하던가, 사업을 접던가, 둘 중 하나다. 현재로선 사업 추진여부를 놓고 검토 중이라는 게 인천시의 설명이다.

경기도(지사 김동연)의 경우 올해 4만8,000명의 도내 임산부를 대상으로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지원사업을 진행하려 했으나, 2만명 분으로 예정해 놨던 국비(임산부 친환경농산물 지원사업 예산)가 증발했다. 다만 경기도의 경우 도 차원에서 예산을 늘려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김동연 지사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후문이다.

“더 잘 싸워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한편 먹거리운동 시민사회 일각에선 “농업·먹거리정책과 관련해 운동진영이 더욱 조직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먹거리예산 삭감을 막기 위해 농민·먹거리단체가 똘똘 뭉쳐 싸워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은 180석의 국회 의석을 차지했음에도 (먹거리예산 삭감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못했다”며 “전국농민회총연맹·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처럼 길거리 농성이라도 하며 강하게 부딪쳐야 했다. 향후 어떤 식으로 싸워야 할지에 대해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먹거리운동단체 관계자 중 한 사람은 “지금 먹거리운동 진영은 연대도 탄탄하지 못하고, 이렇다 할 싸움을 강력하게 펼치지 못한 채 정치인에게 우리 문제의 해결을 요청하는 식의 상황이 반복됐다”며 “우리는 군급식 민간위탁도 못 막았고, 서울시 도농상생 공공급식 등 각 지역 공공급식·지역먹거리 정책의 퇴행도 못 막았고, 결국 양대 먹거리예산 전액 삭감도 못 막았다. 진정으로 우리 스스로 지금 운동진영의 상황을 살펴보며, 앞으로 어떻게 활동해야 할지 모색해야 할 상황”이라고 자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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