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45만톤 격리는 단기 미봉책 … 양곡관리법 전면 개정해야”

고창 농민들,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지서 한 필지 논 갈아엎어

“벼 40kg 5만원 이하로 떨어져 … 차라리 농사 안 짓는 게 나아”

정읍시농민회, 논벼 생산비 조사 결과 ‘40kg 기준 6만2,213원’

김제 일부 농협 우선지급금 4만원 “농가들 적자 면치 못할 것”

  • 입력 2022.10.02 18:00
  • 기자명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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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태형 기자]

지난달 28일 전북 정읍시 이평면 만석보터에서 열린 ‘쌀값 보장! 농민생존권 쟁취를 위한 논 갈아엎기 투쟁’에서 콤바인이 일부 수확한 벼를 갈아엎은 논에 쏟아내는 가운데 농민들이 미처 갈아엎지 못한 벼를 불태우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달 28일 전북 정읍시 이평면 만석보터에서 열린 ‘쌀값 보장! 농민생존권 쟁취를 위한 논 갈아엎기 투쟁’에서 콤바인이 일부 수확한 벼를 갈아엎은 논에 쏟아내는 가운데 농민들이 미처 갈아엎지 못한 벼를 불태우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정부가 역대 최대 규모의 쌀을 사들여 떨어지는 쌀값을 잡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쌀값 보장을 위한 근본적인 추가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고창군, 익산시, 정읍시 등 전북지역 농민들이 연이어 논을 갈아엎었다.

지난달 27일에는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포고문을 선포한 집결지이자 출발점인 전북 고창 무장기포지에 고창지역 농민들이 모였다.

이날 고창군농민회(회장 이인구)는 양치영 공음면장과 최경심 고창군 귀농귀촌협의회장, 이대종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 의장 등 내외빈을 비롯해 농민회원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590번지 일원 무장기포지에서 ‘쌀값폭락과 농민생존권 사수를 위한 논 갈아엎기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밥 한 공기 300원, 쌀 80kg 한 가마 24만원 보장’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농민생존권 쟁취”, “쌀값을 보장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가장 먼저 발언에 나선 이인구 고창군농민회장은 정부가 지난달 25일 발표한 쌀값 안정 대책을 두고 “애초에 양곡관리법을 제대로 만들었으면 싸울 일도 없었다. 정치인들이 꼭 술수를 만들어 농민들을 아스팔트로 나오게 하고 있다”며 “쌀 90만톤 격리보다 제대로 된 양곡관리법 개정을 통해 농민의 자식들이 다시 농촌에 와서 농사지으면서 도시 생활보다 낫다는 소리가 나오길 바란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달 25일 역대 최대 규모인 45만톤의 쌀을 수확기(10~12월)에 매입해 시장에서 격리한다는 쌀값 안정화 대책을 발표했다. 이와 별개로 공공비축미 45만톤을 포함하면 올해 수확기에는 총 90만톤이 시장에서 격리되는 셈이다. 정부는 쌀값 하락세를 막기 위해 초과 생산량 이상의 물량을 수확기에 전량 시장에서 격리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정부는 이번 시장격리 조치를 통해 지난해 수확기 이후 큰 폭으로 하락한 쌀값은 적정 수준으로 회복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산지 쌀값은 지난해 수확기 이후 줄곧 하락했다. 20kg 기준 산지 쌀값은 지난해 9월 15일 5만4,228원에서 지난 15일 4만725원으로 24.9% 떨어졌다.

하지만 농민들은 이번 정부의 발표는 단기적인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이대종 전농 전북도연맹 의장은 “우리 농민들이 논을 갈아엎는 이유는 쌀값을 제대로 보장받기 위해서다”며 “엊그제 정부가 나락값을 적정수준으로 회복시키겠다고 발표했는데, 그 적정수준이 뭔지 기준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가 생각하는 적정수준은 생산비가 보장되고 농민으로 살기 위한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이다”라고 말했다.

이대종 의장은 이어 “농림축산식품부는 양곡관리법을 개정해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면 쌀 과잉생산이 만성화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정부 예산이 낭비된다고 반대한다”며 이번 정부의 발표는 진정성이 없다고 평가했다. 또 “양곡관리법에 쌀 목표가격과 최저가격을 명시해서 그 가격이 보장될 수 있도록 개정해야 한다”며 “이번 발표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쌀값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정부에서 나올 수 있도록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초과생산량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내용과 벼 및 타작물 재배면적 관리와 시책을 수립·추진하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지난달 26일 이 개정안을 전체회의에 상정했으나 여당의 반대로 안건조정위원회를 구성, 재논의를 해야하는 상황이다.

고창군농민회는 이날 결의문을 통해 △양곡관리법 개정 △저율관세할당(TRQ) 쌀 수입 중단 △추곡 농협수매가 최저 7만원 보장 △쌀 한 공기(100g) 300원 보장 △최저 생산비 보장 등을 요구했다.

대회를 마친 농민들은 대회 장소에서 50m 떨어진 최수현씨의 논 1필지(1,200평)를 갈아엎었다. 최수현씨는 “작년엔 벼 40kg 기준 6만9,000원이었는데, 지금은 5만원 이하로 떨어졌다”며 “비룟값, 농약값, 인건비 다 올랐는데, 쌀값만 이렇게 떨어지니 농사지어봤자 적자다. 차라리 안 짓는 게 낫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정읍시농민회 주최로 정읍시 이평면 만석보터에서 열린 논 갈아엎기 현장에는 정읍시농민회가 최근 자체적으로 조사한 ‘2022년산 논벼 생산비’ 내용이 담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에 따르면 경작면적 1필지(1,200평) 당 논벼 생산비는 466만6,000원으로 나타났다.

한 필지당 논벼 생산비를 구체적으로 보면 △종묘비(100판 기준) 30만원 △밑거름(10포) 25만원 △이삭거름(3포) 6만6,000원 △초기 제초제(5병) 3만원 △중기 제초제(5병) 7만5,000원 △병충해 방제(3회 기준) 7만5,000원 △농약값(3회 기준) 15만원 △트랙터 작업비 42만원 △이앙기 작업비 24만원 △콤바인 작업비 36만원 △벼 건조기 20만원 △토지임차료 240만원 △톤백(대형 포대) 등 제재료비 10만원을 합쳐 466만6,000원이 나온다.

이는 농민들이 스스로 농사를 짓는 데 들어간 인건비를 제외한 비용으로, 한 필지당 벼 40kg짜리 75포대를 수확한다고 가정했을 때 벼 40kg 한 포대 생산비는 6만2,213원이다.

박형용 정읍시농민회 정책실장은 “인근 김제에서는 벼 40kg 한 포대 우선지급금이 4만원, 4만5,000원으로 결정되고 있다고 한다”고 전하며 “정읍은 아직 가격이 결정되지 않았지만, 이 가격이면 쌀 농가들은 다 적자다”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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