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 수탈의 상징이던 만석보를 혁파하고 혁명의 시작을 알렸던 농민들이 다시 만석보터에 모여 죽창을 들었다. 트랙터는 만석보 인근 배들평야의 추수를 앞둔 논을 갈아엎었고 콤바인은 일부 수확한 벼를 갈아엎은 논에 쏟아냈다. 당시 농민군처럼 하얀 의복을 차려입고 햇불을 든 농민 대표자들은 미처 갈아엎지 못한 나락에 불을 댕겼다.
흰 연기를 피우며 불타는 논 곳곳엔 ‘쌀값 결정 농민 손으로’, ‘양곡관리법 전면 개정’, ‘쌀부터 공공수급제’, ‘밥 한 공기 300원 보장’ 등이 적힌 손팻말과 ‘쌀농사 짓는 자, 모두 일어나 싸우자’, ‘신곡 정부비축물량 100만톤 이상 수매하라’ 등이 적힌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꼈다. 논둑에서 이 모습 지켜본 농민들에게선 울분과 탄식의 한숨이 끊이지 않았다.
28일 오전 정읍시농민회는 전북 정읍시 이평면 만석보터에서 ‘쌀값 보장! 농민생존권 쟁취를 위한 논 갈아엎기 투쟁’을 펼쳤다. 45년 만에 최대치로 폭락한 쌀값에 대한 정부의 무능력·무대책을 질타하고 2022년산 햅쌀에 대한 가격 보장을 요구하는 자리였다.
농민들은 ‘쌀이 보국안민이다. 죽창 들고 일어서자’는 제목의 결의문에서 “자식처럼 키운 나락을 갈아엎는 농민들의 심정이 오죽할까”라며 “오늘 비장한 각오로 만석보에 모였다. 128년 전 만석보를 혁파하고 고부관아로 쳐들어간 동학농민군처럼 천하의 근본을 바로 세우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농민들은 “사람은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세상의 근본은 농업이고 그 근본 중의 근본이 바로 ‘쌀농사’”라며 “우리나라 쌀 농업이 무너지고 있다. 쌀값은 통계가 작성된 45년 만에 최대치로 폭락했고, 비료값·기름값·인건비 등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어 농민들은 적자 농사에 올가을 파산을 앞두고 있다”고 현재 농가가 처한 현실을 알렸다.
이에 농민들은 현재의 쌀 대란을 해결하기 위한 6가지 대책을 정부에 제시했다.
△구곡 전량 격리 및 신곡 100만톤 이상 격리 △밥 한 공기 쌀값 300원 보장 △TRQ 쌀 의무수입 전면 폐기 △양곡관리법 전면 개정으로 농민이 직접 쌀값 결정 △생산비 보장되는 쌀값 최저가격제, 공정가격제 쟁취 △비료값 폭등, 기름값 폭등 생산비 보전 등을 강하게 촉구한 농민들은 “천하의 근본을 바로 세우는 길엔 오직 전진만이 있을 뿐”이라며 쌀값 보장을 위한 근본적인 정책 변화가 없을 시 더 큰 투쟁에 나설 결의를 밝혔다.
깊은 울분과 탄식이 교차했던 현장을 화보로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