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안정 대책 마련하라" … 논 갈아엎기 투쟁, 전국 확산

전남·경남 이어 경북·충남서 논 갈아엎어
벼값 2만원 이상 떨어져 “남는 거 없어”

  • 입력 2022.09.21 18:17
  • 기자명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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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태형 기자]

21일 경북 상주시 내서면 능암리 들녘에서 열린 ‘쌀값 보장 촉구 상주농민 결의대회’에서 트랙터가 추수를 앞둔 논을 갈아엎고 있다. 갈아엎은 논 주위로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논이 극명하게 대비돼 보인다. 한승호 기자
21일 경북 상주시 내서면 능암리 들녘에서 열린 ‘쌀값 보장 촉구 상주농민 결의대회’에서 트랙터가 추수를 앞둔 논을 갈아엎고 있다. 갈아엎은 논 주위로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논이 극명하게 대비돼 보인다. 한승호 기자

 

본격적인 수확기를 앞두고 농민들이 쌀값 보장을 촉구하며 벼를 갈아엎고 있다. 농사를 짓는 데 드는 가격은 폭등하고 있지만 쌀값은 통계 작성 이후 45년 만의 최대 폭으로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민단체들은 지난해 수확기 이후 쌀값이 계속 떨어지자 대규모 집회, 논 갈아엎기, 삭발투쟁을 하며 정부에 시장격리 등 쌀값 안정 대책 마련을 촉구해왔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20kg 산지 쌀값은 4만725원으로 지난해 수확기 평균 쌀값(5만3,535원)과 견줘 23.9% 떨어졌다.

21일 상주시농민회는 경북 상주시 내서면 능암리 소재 1,983㎡(600평)의 이재경씨 논에서 수확을 보름 앞둔 벼를 갈아엎었다. 앞서 지난달 19일 전북 김제시를 시작으로 전남 영암군, 경남 함안군에서 잇따라 논을 갈아엎은 데 이어 네 번째다. 이날 충남지역 농민들도 도내 9개 시·군에서 벼를 갈아엎고 쌀값 보장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시위를 했다.

이날 상주지역 농민들은 쌀값 보장을 염원하는 축문을 낭독한 뒤 곧바로 벼를 갈아엎었다.

이재경씨는 “보름 있으면 수확할 벼들인데, 갈아엎으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쌀을 생산하는 농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관료들이 농민들 고통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벼가 짓이겨지는 모습을 지켜보던 전현배씨는 “벼를 갈아엎어도 권력을 쥔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는 게 화가 난다”며 “내 자식이 살아갈 사회에서 최소한의 식량안보는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논 갈아엎기에 앞서 이날 같은 장소에서 ‘쌀값 보장 촉구 상주농민 결의대회’가 열렸다. 농민들은 ‘쌀값은 농민값, 쌀값을 보장하라’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양곡관리법 개정하라”, “농업생산비 지원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남주성 상주시농민회장은 대회사에서 “참담한 마음으로 벼 논을 갈아엎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고 밝혔다. 남주성 회장은 “RPC(미곡종합처리장)에 물어보니 쌀값이 지금 시세로 계속 하락하면 (벼 40kg 기준) 4만5,000원도 장담 못 하겠다고 한다”며 “값이 올라도 모자라는데 6만7,000~6만8,000원 하던 것이 4만5,000원도 안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 회장은 “윤석열정부가 물가인상을 핑계로 벼가격 하락을 방치하는 게 아니라면 지금 당장 구곡을 시장격리하고 올해 생산될 신곡도 시장격리하겠다고 빨리 발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박근혜정부 때 벼값이 3만원까지 내려갈 때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변동직불제가 있어서 가격을 보전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가격하락으로 인한 피해를 오롯이 농민들이 받게 된다”고 우려했다. 변동직불제는 농가소득 안정을 위해 정부가 정한 목표가격에 쌀값이 미치지 못할 경우 차액의 85%를 지원하는 제도다.

그동안 농민들은 정부가 쌀 변동직불제를 폐지하고 2020년 공익직불제로 개편하면서 쌀 초과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가격이 전년 대비 5% 이상 하락하면 시장에서 격리할 수 있도록 했으나, 요건이 충족됐음에도 격리하지 않아 쌀값 하락을 부추겼다고 주장해왔다.

남 회장은 “국회는 양곡관리법을 조속히 개정해야 한다”며 “우리 쌀을 지켜내고 우리 농민들도 마음 놓고 농사지을 수 있도록 단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동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도연맹 부의장은 “경북에서 논 갈아엎기 투쟁은 2000년대 초반 이후 처음이다”며 “쌀값은 농민값이라고 하는데,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우리 농민들이 잘 사는 날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오는 11월 16일 전국농민대회가 있으니 쌀값을 제대로 보장받기 위해 함께해 나가자”라고 말했다.

생산비 보장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김옥순 상주시여성농민회장은 “비료·농약·유류비는 몇 곱절로 올랐는데, 쌀값은 20% 이상 떨어졌다”며 “생산비도 안 되는 쌀값으로 농민들은 어떻게 살아가느냐”라고 말했다. 김옥순 회장은 “우리 농민들은 나락을 짓밟는 게 아니라 우리 몸을 짓밟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내 몸을 갈아엎는 심정을 알아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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