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농업은 온 국민의 ‘백신’이다

코로나19 이후 농정, 농업체질 개선에 ‘올인’해야

  • 입력 2021.01.01 09:00
  • 수정 2021.01.03 23:20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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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2020년은 코로나19에 점령당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가 코로나19라는 낯설고 위협적인 전염병에 몸을 잔뜩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로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의 질서도 무너졌다. 농업분야라면 자유무역이 보기 좋게 불신임 받게 됐다. 식량자급률이 매년 낮아져도 농산물 수입 카드로 안심하던 우리 정부의 자세도 전면 ‘새로고침’ 해야 할 때다. 설상가상 기후위기까지 우리 농업을 폐작 수준으로 망쳐 놨다. 코로나 이후의 농정방향은 어떻게 쇄신해야 할까.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은 식량자급을 위한 농업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코로나19가 국내로 유입되기 전, 오일장이 열린 전남 곡성군 곡성기차마을전통시장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편안하게 장을 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은 식량자급을 위한 농업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코로나19가 국내로 유입되기 전, 오일장이 열린 전남 곡성군 곡성기차마을전통시장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편안하게 장을 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식량위기 대처하는 세계 흐름

지난해 5월 19일 국회에서 ‘코로나19 이후 한국 농정, 어떻게 해야 하나’ 토론회가 열렸다. 세계적 전염병 확산 위기를 지혜롭게 넘기는 것은 물론 이후 농업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 각 분야 전문가들이 의견을 모았다. 토론회 제목 그대로 코로나 이후 한국농정의 방향을 타진해 보는 자리였다.

주제발표를 맡아 다각도의 농정변화를 제안했던 유영봉 제주대학교 교수는 코로나 위기가 농산업 분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우선 ‘재화의 이동제한’과 ‘글로벌 푸드 체인 붕괴’를 언급했다. 식량을 비롯한 노동력 등 모든 것의 이동이 전면 통제될 수 있다는 사실은 충격이자 미증유의 위기였다. 세계 곡물기업들이 주축이 됐던 글로벌 푸드 체인의 무력화도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시장개방은 이미 ‘상수’가 됐다고 치부하는 우리 농정당국과 달리 코로나19 이후 지난해 8월까지 32건의 농식품 수출금지 그리고 수출제한 조치가 시행됐다. 국제식량정책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베트남(20일간), 콜롬비아(44일간)가 자국의 쌀 수출을 통제했고, 알제리(30일간), 이집트(92일간), 카자흐스탄(81일간)이 두류 수출을 막았다. 밀과 밀가루를 최대 183일, 6개월 수출금지 조치를 내린 국가도 있다. 다행히 이런 수출제한 조치가 우리나라에 직접 영향을 주는 일은 없었고 식량불안을 이유로 사재기가 횡행하는 사회적 동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교훈은 또렷이 각인되는 시기였다.

지난해 11월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세계 각국은 코로나와 이상기후 피해가 중첩되면서 농업생산 기반 확충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국가 정책에 적극 반영하는 모습이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17일 쌀·밀·옥수수 등 3대 곡물 경작지에 나무심기 등 다른 경제활동을 일체 금지시키는 조치를 발표했다. 이에 앞서 9월엔 논밭을 다른 용도로 쓰면 처벌할 수 있는 ‘경작지 비농업화 행위 제재’도 밝혔다.

밀 수출대국 러시아는 2월부터 밀 수출량 쿼터제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자국 소비기반은 충족하고도 남지만 앞으로 밀 작황 불확실성이 크다는 전망에 따라 비축량을 확대키로 전환한 것이다.

식량수출국들의 변화와 함께 눈여겨 볼 것이 수입국들의 변화다. <한국경제>는 식량 소비량의 80%를 수입하는 아랍에미리트(UAE)를 소개했는데, 11월에 세계 4대 곡물기업 중 하나인 프랑스 루이드레퓌스의 지분 45%를 국영기업을 통해 인수했다. 팜테크 기업에도 투자를 하는데, 모래땅에서 작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관개시스템을 개발한다거나 인공광선만으로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기술개발이 투자의 배경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인도의 쌀 생산기업 지분을 일부 사들이고, 싱가포르는 농업분야 연구프로그램에 예산을 확대 배정할 방침이다. 싱가포르는 식량소비량의 90%를 수입하고 있는데, 2030년까지 70% 수준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식량수입 의존도를 낮추는 싱가포르나 논밭을 식량생산 수단으로 강제하는 중국은 특히 우리 먹거리 수입현실과 농업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농정, 식량자급률 상향 목표로 재편성해야

식량자급률로 따지자면 우리나라도 위험지수가 높은 나라 중 하나다. 2019년 양곡년도(전년 11월 1일~당해년도 10월 31일) 기준 주요 곡물의 잠정 식량자급률은 45.8%다. 식용으로 먹는 곡물의 절반도 자급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품목별로 △쌀 92.1% △보리 47.7% △밀 0.7% △옥수수 3.5% △콩 26.7% 등 쌀만 자급하고 있다. 사료까지 포함한 자급률을 따져보면 21%로 뚝 떨어진다. 육식 소비가 급증하는 시대라 사료까지 포함한 곡물자급률이 실제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수치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주식인 쌀만큼은 자급한다는 것도 장담할 수 없다. 지난해 벼 생육기에 54일간 비가 내려 수확량이 급감했다. 기상‘이변’이 아니라 이상기후가 일상이 된 마당에 쌀 자급률이 곤두박질치는 일도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우리 농정이 달라져야 할 근거는 이미 자급률 수치가 대변하고 있지만 지난해 코로나 사태와 기후위기 이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김현수 농식품부 장관은 2021년을 맞아 배포한 신년사에서 위기에 대응하는 농정방향을 나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김 장관은 “지난 역사가 보여주듯 전쟁의 승패는 ‘식량’에 달렸다”면서 코로나19 전쟁에서 식량사재기가 없던 공을 “농업인들이 흔들림 없이 먹거리 공급을 책임진 덕분”이라고 격려했다. 그렇다면 올해 농정은 농민들이 안심하고 농사짓고 국민들은 안정적인 농산물을 공급받을 여건이 마련됐다는 것일까.

다행히 신년사에서 올해 중점을 둬야할 사안 중 네 번째로 ‘식량안보 강화’를 언급했다. 쌀은 자급을 갖췄으니 밀과 콩의 자급률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국내 소비량이 많으면서도 수입의존도가 높은 품목으로 압도적인 밀·콩 생산·소비기반을 국가적으로 키우겠다는 선언이다.

농식품부 식량정책과는 밀·콩의 계약재배를 통해 생산기반을 확충할 계획이다. 밀은 2025년까지 재배면적을 3만ha로 늘리고 이 중 생산단지를 50개소(1만5,000ha) 조성해 파종부터 수확까지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국산 밀 품질을 높이기 위한 보급종 공급, 품종 균일화는 물론 건조·저장시설 확충, 소비기반 확대까지 고려한 사업계획도 세웠다. 밀의 시장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비축제도 확대하는데, 전체 생산량의 25%를 수급안정·식량안보 차원에서 비축한다. 올해 1만톤에서 2025년엔 3만톤까지 비축물량도 확대한다고 밝혔다.

콩은 밥에 넣어먹는 것 외에도 두부, 콩나물 등 소비가 많은 곡물이다. 올해 농식품부는 논콩 생산단지를 44개소(4,000ha) 조성하고 2025년에는 전국에 200개소(1만2,000ha)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생산부터 유통, 소비, 비축까지 방향도 나와 있다. 밀·콩의 계약재배 사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411억원의 국고가 계약재배 사업 참여자들에게 ‘무이자’ 융자된다. 수입콩의 수급관리 시스템도 구축된다. 농식품부는 국산콩과 4~5배 가격차이가 나는 수입콩이 부정유통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수입콩 수입관리시스템도 구축해 활용할 방침이다. 업체별로 두부·된장·두유 등의 상품 수율에 따라 콩 수매량과 상품 판매량간 차이가 발생할 경우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관리시스템을 마련해 운용한다.

신년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2021년의 구체적이고 명확한 식량안보 정책은 이것뿐이다.

근본을 바꾸는 구체적 실행과제, 2021년부터 시작해야

유영봉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한국 농정, 어떻게 해야 하나’ 국회 토론회에서 “(우리가)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 기저질환이 있으면 심각한 타격을 입고 사망에까지 이른다”면서 “우리 농업의 체질은 과연 면역력과 내성이 있을까” 질문을 던졌다. 유 교수는 코로나19로 각국이 여러 대책을 발 빠르게 세우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급한 불’을 끄는 수준이자 근본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 상처 치유만 하는 정도라고 평했다. 코로나19, 기후위기로 1년을 꼬박 앓아온 한국농업에 정부는 여전히 진통제만 처방하는 것 아니냐는 뜻이다.

농업·농촌·농민이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는 방안은 밀·콩 뿐 아니라 주요 농산물 자급력을 확충하는 방안이 그 출발점이 돼야 한다. 물론 모든 농산물을 다 자급할 수는 없으니, 국외의 유입 채널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다. 기준점을 ‘주요 농산물의 자급률 향상’에 놓고 얼마나 자급할 것인가 목표치를 정한 뒤 이에 필요한 조건들을 하나하나 구축하는 것이 그 다음 필요한 과제다. 그러려면 농지의 소유와 이용이 ‘경작자’인 농민들에게 돌아가야 하고, 생산된 농산물이 국내에서 소비되는 기반도 마련돼야 한다.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소득보완 대책도 필요하다. 농민들이 대환영하는 농민수당이나 공익직불제의 확충 등도 중요한 대책이다.

농업·농촌·농민을 되살리기 위해선 지금처럼 국가 전체 예산의 3% 미만으로 편성된 농정예산부터 대폭 확충돼야 한다. 산소호흡기를 꽂아서 치료를 해야 하는 중환자에게 약 사먹을 돈밖에 없다면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국회에서 열린 ‘코로나19 이후 한국 농정, 어떻게 해야 하나’는 여러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였다.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 위원장인 이낙연 국회의원을 비롯해 김진표 의원 등 정책을 좌지우지할 위치에 있는 정치인들이 참석했다. 김현수 농식품부 장관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주무부처 장관이 의지를 가지고 농정전환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방안을 제시했더라면 아무리 청와대가 농업에 관심이 없는 인사들로 채워졌어도 최소한 농정예산은 좀 더 확대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농업현장에 대한 주무부처의 인식은 국회토론회를 끝까지 지킨 것과 결이 다르다. 공공비축미곡 매입가가 지난해보다 14.3% 인상됐다는 단순한 수치만으로 “쌀값이 높아서 농민들의 소득에 보탬이 됐다”고 말하는 농정공무원과 “수확량이 30% 줄어서 소작료도 못 낸다”는 농민들의 하소연은 여전히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30년을 이어온 개방농정의 틀을 유지해서는 전 세계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결코 탈출구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지난해 확인했다. 지구적 위기상황에 국민의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자급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2021년에 준비해야 할 또 하나의 백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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