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다른데 취업하더라도 이 지역과 농업의 소중함, 농민과 농촌사회를 잊지 말고 식량주권을 지키는 데 앞장서며 살아가 달라(박기수 고문의 환영식 강의에서).” 나이 든 농민의 애틋한 당부에 앳된 대학생들이 박수로 화답했다. 지난 17일 전국적인 폭우 피해로 침통한 분위기였지만 만남을 손꼽아 기다려 온 단양군 적성면 농민들과 건국대 문과대 농활대 학생들이 반갑게 만났다.4박 5일 농활 기간 학생들의 숙소이자 환영식이 열린 곳은 적성면 적성문화복지회관. 보통 농활은 농민과 학생 간 교류가 중심이지만, 이번 농활은
[한국농정신문 김태형 기자] 최근 쌀값 하락세가 45년 만의 최대치로 폭락했다. 2020년 개정된 양곡관리법이 받아든 성적이다. 정부는 양곡관리법에 따라 쌀 초과 생산량이 생산량의 3%를 넘을 경우 또는 단경기(7~9월)나 수확기(10~12월) 쌀값이 전년보다 5% 이상 하락할 경우 시장에서 쌀을 격리할 수 있다. 변동직불제를 폐지하면서 쌀 수급안정장치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변동직불제는 농가소득 안정을 위해 정부가 정한 목표가격에 쌀값이 미치지 못할 경우 차액의 85%를 지원하는 제도다.새로 도입된 ‘쌀값 안정 장치’는 지난해 말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전국적으로 장맛비가 예정된 27일 오전 강원 원주시 호저면 산현리 논에서 한 여성농민이 오락가락 내리는 비를 맞으며 피를 제거하고 있다. 올해 나이가 여든아홉이라고 밝힌 농민은 “고생하는 농민들 쌀값 좀 잘 주라고 농협에 꼭 전해달라”며 신신당부했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 지난 2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진평리의 한 들녘에서 정태국(74)씨가 피사리를 하고 있다. 오는 20일경 가을걷이를 할 예정이라는 정씨는 “이번 주에 비와 태풍 소식이 있는데 수확할 때까지 큰 피해 없이 무사히 지나가길 바란다”며 “올 추석에는 농민 모두가 웃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3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지속된 지난 6일 충남 예산군 오가면 오촌리 들녘에서 한 농부(75)가 피사리를 하고 있다. 올해 5마지기(1,000평) 규모로 농사를 짓는다는 농부는 이날 "동이 트자마자 논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피사리 (작업) 하는데 풀이 너무 많아. 해뜨기 전부터 나와서 뽑는데도 생각보다 많이 못했어. 풀 나지 말라고 진즉에 약도 쳤는데 별 소용이 없구먼. 날 더워지기 전에 마무리해야 하는데 시간 좀 걸리겠어. 어쩔 수 있나. 뭐, 더위가 가실 만하면 나와서 다시 하는 수밖에 없지. 농사일이라는 게 끝이 없어. 하고 돌아서면 또 일이고. 뭐든지 다 그래.”
전남 구례군 광의면 구만리의 한 필지되는 논에서 지난 12일 김성만(74)씨가 벼 사이의 잡초를 제거하는 피사리 작업을 하고 있다. 김씨는 “잡초가 생각보다 많아 일이 더디다”며 굽은 허리를 좀체 펴지 않았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한낮의 기온이 33도를 웃돌며 폭염이 기승을 부렸던 지난 5일 충북 진천군 진천읍의 한 들녘에서 여성농민들이 논의 피를 뽑고 있다. 한 농민은 “날이 더워도 피사리를 안 할 수가 없다”며 “잠깐 작업에도 숨이 막힐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농정신문 박선민 기자] 대학생들이 방학을 맞아 농활이 활발한 시기지만 지난달 전국을 덮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때문에 농활이 무기한 미뤄졌다. 매년 찾아오는 손길이 끊기는 바람에 농민들은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다.전국농민회총연맹과 한국대학생연합은 농학연대의 일환으로 매년 여름방학마다 농활을 추진해오면서 농촌에 일손을 보태왔다. 그러나 올해는 메르스 여파로 집단 이동이 제한되면서 농활의 진행여부가 불투명해졌다.문제는 농활이 시작되는 6월 말에는 노지 재배 작물 수확과 후작을 위한 농지 정리, 논 제초작업 등으로 작업량이 늘어 일손이 많이 필요한 시기란 것이다.오이, 호박, 감자 등 노지재배가 주를 이루는 강원도 화천군은 7월 수확이 한창이라 일손이 집중적으로 필요한 시기다.
논에 우렁이를 넣는다, 오리를 키운다 하며 친환경 벼농사를 시작했던 사람들 중에 벌써 반 가까이 그만둔 것을 준석은 알고 있었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던 탓에 이미 편하게 논농사를 짓던 일에 익숙해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다시 관행농법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개울가에 붙은 병균네 논은 더 한심했다. 집안이 그렇게 되다보니 늘어나는 건 날마다 비우는 소주병이었고 아직 젊은 나이에 알코올 중독에 빠져버렸다. 농사는커녕 다니는 환경미화원 일도 아슬아슬했다. 보통 새벽 세 시에 나가서 열시가 좀 넘으면 일을 마치는데 그 사이에 이미 소주 몇 병을 비워 집에 돌아올 때에는 혀가 꼬부라져 있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오랜 정으로 감싸주지 않으면 직장에서 잘리고도 남을 판이었다. 허긴 일반 직장이 아니라 잘릴
여름 농활은 특별했다. 친목뿐만 아니라 정치적 의제설정 및 농촌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농민회를 ‘통해’ 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름 농활을 가기 전 봄 농민 학생연대활동 당시, 나는 전북 고창군과 기업처럼 자매결연을 하여 봉사활동의 명목으로 참여했었다. 총학생회에서 농민회가 아닌 농민과 연대하는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실제로 농민을 대표하는 기구가 농민회인데도 말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독단적인 의사 결정으로 인해 고창을 갔고 부농인 곳으로 배정받거나 물놀이만 하다가 오는 등 친밀함 그 이상의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었다.그래서 내가 속한 사회학과는 사과대가 아닌 농민회와 연대한 인문대와 함께 충주 풍덕마을로 여름농민학생연대활동을 가게 되었다. 꼭 농민회가 있어야 일이 잘 추진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