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마을 24회

최용탁 장편소설 '들녘'

  • 입력 2013.08.26 09:55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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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에 우렁이를 넣는다, 오리를 키운다 하며 친환경 벼농사를 시작했던 사람들 중에 벌써 반 가까이 그만둔 것을 준석은 알고 있었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던 탓에 이미 편하게 논농사를 짓던 일에 익숙해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다시 관행농법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개울가에 붙은 병균네 논은 더 한심했다. 집안이 그렇게 되다보니 늘어나는 건 날마다 비우는 소주병이었고 아직 젊은 나이에 알코올 중독에 빠져버렸다. 농사는커녕 다니는 환경미화원 일도 아슬아슬했다. 보통 새벽 세 시에 나가서 열시가 좀 넘으면 일을 마치는데 그 사이에 이미 소주 몇 병을 비워 집에 돌아올 때에는 혀가 꼬부라져 있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오랜 정으로 감싸주지 않으면 직장에서 잘리고도 남을 판이었다.

허긴 일반 직장이 아니라 잘릴 염려가 없는 공무원 신분이라 그게 가능한지도 몰랐다. 날마다 그런 지경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하는 모습을 보며 마을 사람들은 걱정 겸 손가락질을 하면서 병균을 열외 비슷하게 여기게 되었다. 요즘은 시골에도 그렇게 중독자가 되어 술을 마시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굄골에도 그런 이들이 더러 있었지만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었고 언제부턴가 술을 마시는 사람은 소수가 되어 마을회관에서 밥을 먹으며 반주라도 걸치고 싶은 사람은 눈치를 봐야하는 분위기였다. 마을 일을 주도한다고 할 수 있는 정선택이나 준석이 술을 마시지 않는 탓이 컸다. 그러니 노상 술에 취해 있는 병균은 더욱 마을에서 배돌아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 자네 논에서 미꾸라지가 나왔단 말이지? 꽤 많이 잡았나 보네.” 찬샘댁이 끓인 추어탕에는 손가락만 한 미꾸라지가 통으로 그들먹하게 들어있었다.

한 술을 뜨며 묻자 병균이 헤벌어진 얼굴로 “삽질 한 번에 두어 마리씩은 나오더만유. 논에 농약을 치나, 피사리를 하나, 완전히 친환경 농법으루 하나보니께, 미꾸리덜까지 올러오구, 이걸 누가 알어줘야 하는 거 아뉴? 헤에.” 하고는 술 한 잔을 냉큼 비웠다.

“자네 덕에 잘 먹기는 하는데, 작년에 그 논에서 소출이 좀 나왔어? 제초제라두 좀 뿌리지, 논에 그렇게 풀씨를 받어놓으믄 해마다 골치여.”

“그래두 먹구 남을 만큼 했시유. 뭐, 먹기나 허나. 달에 두 말이나 먹을라나. 올해는 누가 부친다구 허믄 줘버릴라구유.” 병균의 말에 경태가 들던 잔을 내려놓고 얼른 받았다.

“진짜냐? 그럼 나한테 주라. 도지는 남들 주는 만큼 줄 테니께.”

“넌 일 년 열두 달 하우스 농사두 바쁨 놈이 뭔 벼농사꺼지 할라 그러냐?”

“너처럼 하지, 뭐. 모나 심어놓고 설렁설렁 놔두면 저 혼자 되는 게 벼농사 아녀? 하여튼 누구 주려면 나한테 줘. 알었지?”

“그려라. 그 대신 농약은 많이 치지 말구 겨울마다 미꾸리나 잡어서 먹자.”

“그래. 그건 걱정 말고. 미꾸리가 없으면 저기 강촌매운탕 가서 사주기라도 할 테니까. 그럼 그렇게 하기로 정한 거다.” 다짐을 두는 경태를 보며 준석은 그가 제 아버지를 닮아서 농사 욕심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육년 전에 세상을 뜬 경태 아버지, 정덕봉은 병원에 있는 병균의 아버지 장길태와 서로 죽이 맞는 술꾼이었다. 나이도 한 살 차이로 친하게 어울렸던 그들이었지만 성격만은 판이하게 달랐다. 장길태는 찢어지게 가난하면서도 악착같이 살아보려는 의지가 별로 없던 반면에 정덕봉은 실로 억척같은 농군이었다.

그 역시 마을의 대성인 정씨였지만 그는 토박이가 아니고 젊은 시절에 마을로 흘러들어온 이였다. 물론 정씨 집안의 연줄을 따라 들어왔기 때문에 쉽게 마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지만 가진 게 없던 그는 정씨 문중의 머슴 비슷한 처지였다.

정선택의 행랑에서 몇 년을 살다가 결혼을 했고 경태의 큰 형인 승태를 낳고서야 겨우 제 앞으로 된 초가 한 채를 지어 나올 수 있었다. 그렇다고 머슴살이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밥을 굶지 않을 정도의 땅을 마련할 때까지 정덕봉은 문중의 궂은일을 다 맡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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