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김장문화의 변화와 체험농장의 새 역할

  • 입력 2025.11.23 18:00
  • 수정 2025.11.23 18:40
  • 기자명 최연희(충북 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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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희(충북 진천)
최연희(충북 진천)

올해는 유난히 따뜻했던 가을 탓에 배추 작황이 예년과 몹시 달랐다. 주기적으로 이어진 고온과 잦은 비로 배추 생육이 불안정했고, 무름 현상이나 품질 저하로 인해 농가에서는 수확 시기가 조정되고 예약을 받아놓은 물량도 대폭 줄이는 상황이 발생했다.

가장 피부로 느끼는 건 지역 로컬푸드 매장에서 괜찮은 배추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소비자 분들도 김장을 많이 담거나, 일찍 담으려 하지 않는 것 같다. 개인뿐만 아니라 동네 김장 모습도 달라졌다. 농촌에서 김장이라고 하면 집집마다 모여 품앗이를 하듯 돌아가며 김치를 담가주는, 공동체의 상징과도 같은 겨울 행사였다. 예전엔 그랬다면, 지금은 김치를 만들어도 자식들이 많이 안 가져가고 하니 가족끼리 소소하게 만들곤 하신다.

김장은 이제 작지만 정성스럽게, 그리고 편리하게 즐기는 형태의 생활 양식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올해 김장시즌을 맞아 판매를 시작하면서 들어온 주문들만 봐도 그렇다. 가정에서 절임배추를 20kg들이 2~3개씩 사서 대량으로 담그기보다는 가족 규모에 맞게 5~10kg 정도로 소량 김장을 선호하는 추세로 바뀌고, 특히 절임배추부터 양념 제조까지 모든 과정을 맡기는 완제품 김장 김치 주문량이 절임배추 주문량보다 더 많아지는 현상이 올해 두드러졌다. 어차피 많이 하지 않을 김장이니 믿을 수 있는 농가가 담가준 김치, 즉 언니네텃밭의 구호처럼 ‘농부의 얼굴이 보이는 김치’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난 것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의 겨울 ‘소울푸드’인 김장김치를 사람들이 완전히 포기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스스로 담그는 수고로움보다, 직접 눈으로 보고 담아가는 경험을 더 가치 있다고 느끼기 시작해 올해 우리 바노들농장은 방문형 소비자 김장 체험을 더욱 활성화했다. 학생 대상으로는 ‘김치 만들기 실습’ 수준을 넘어 배추가 어떻게 자라는지, 왜 올해 작황이 좋지 않았는지를 직접 밭에서 알게 하고, 절임과 속 채우기 과정의 의미도 알려준다. 그렇게 김장문화의 본질을 함께 경험하는 체험이 11월 매주 이뤄지고 있다.

지난주에는 다문화 어린이집 아이들과 함께하는 김장 체험을 진행했는데, 그 현장은 내게도 김장이 단순한 음식 만들기가 아니라 언어를 넘어 마음을 잇는 문화 수업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서로 말은 다르지만 배추에 양념을 넣어 한 잎 한 잎 포개고, 김치를 꼭 눌러 담으며 “우리 집도 이렇게 해요”, “엄마한테 보여줄래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의 표정 속에 김장 체험이 단순히 체험교육이 아니라 외국인 친구들이 커서도 기억할 문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만든 작은 김치 한 포기는 집으로 돌아가 부모와의 대화를 이끌고, 가족 문화 속에 자연스럽게 한국의 식생활 전통을 심어 주는 매개체가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농업 기반 체험농장, 특히 여성농민이 운영하는 교육·식생활 체험공간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본다. 단순히 농산물을 재배하고 판매하는 것을 넘어, 농업의 가치를 전달하고 식문화의 지속성을 실천하는 현장이 바로 농촌 체험농장이기 때문이다. 김장이라는 전통이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더 작은 규모로, 체험을 통해, 교육적인 방식으로 새롭게 이어지는 변화의 중심에 농촌과 여성농민이 있다. 김장이 이제 수고로운 여러 과정을 거치는 노동의 기억이 아닌 경험의 기억, 관계의 기억, 그리고 문화의 기억으로 남는 시대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 변화는 밭에서 시작되고, 체험에서 이어지며, 농업의 가치와 함께 살아 숨 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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