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소멸 위기 속 감물면의 선택, ‘스스로 만드는 마을’

충북 괴산 ‘감물이음사회적협동조합’ 성과 눈길

주민이 결정·행정은 지원하는 ‘자치 문화’ 안착

  • 입력 2025.11.23 18:00
  • 수정 2025.11.23 18:40
  • 기자명 유승현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유승현 기자]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심화하는 농촌 현실 속 충북 괴산군 감물면이 주민 주도로 마을 변화를 일궈 주목받고 있다. 감물이음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이진영)은 열악한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마을 자치를 실현하며 농촌지역 활성화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다.

지난해 1월 감물면사무소에서 열린 주민총회에 면 인구 14%에 달하는 280여명의 주민이 참석해 마을 사업 선정 투표를 하는 모습. 감물이음사회적협동조합 제공
지난해 1월 감물면사무소에서 열린 주민총회에 면 인구 14%에 달하는 280여명의 주민이 참석해 마을 사업 선정 투표를 하는 모습. 감물이음사회적협동조합 제공

주민자치를 깨운 숫자,  52명·100회·5개 사업

감물면 주민들은 2023년 괴산군의 ‘소생활권 활성화 프로젝트’ 참여를 계기로 마을에 변화를 일으켰다. 우선 필요한 사업을 발굴하기 위해 주민과 새마을회·이장단협의회 등 기존 조직 관계자로 구성된 52명의 마을기획단을 꾸렸다.

“우리가 뭘 원하지?”란 질문에서 출발한 기획단은 생업인 농사를 병행하며 1년간 100회 넘는 회의를 거쳤고, 논의는 곧 주민 요구를 직접 듣기 위한 총회로 이어졌다. 기획단은 감물면 23개 리를 모두 돌며 마을 사업을 주민 스스로 결정하자는 총회 취지를 알렸다. 그 결과 지난해 1월 열린 주민총회에 280여명이 모이며, 면 인구(1950명) 14%를 넘는 참여율을 기록했다.

이진영 이사장은 한 고령의 주민이 ‘1950년대 읍면장 직선제 시절의 주민자치를 다시 하는 것 같다’며 행정이 주민 의견 중심으로 운영되던 때를 떠올리며 반가워했다고 전했다.

총회에서는 마을별로 제출한 69개 안건 중 △저수지·임도 둘레길 조성 △어르신·장애인 빨래방 이용 지원 △감물초 진입로 꽃길 조성 △면사무소 유휴공간 평생학습장 활용 △마을 순회 셔틀버스 운행 등 5개 사업이 주민 투표로 선정됐다. 직접 제출한 안건인 만큼 주민들의 관심이 높았으며, 현재 둘레길 조성을 제외한 4개 사업이 시행됐다.

가장 큰 호응을 얻은 사업은 빨래방 설치다. 감물면 인구 중 48%가 65세 이상으로, 큰 빨래를 집에서 하기 어려운 고령 주민이 많다. 빨래방은 행정이 소정의 임차료를 받고 제공한 면사무소 옆 공간에 조성했으며, 2023년 12월 시범 운영 후 지난해 3월 정식 개소했다. 접근성이 좋고 5000원 정도로 이용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 이러한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주민들은 지난해 12월 감물이음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어르신·장애인 대상 수거 서비스는 조합원들의 자원봉사로 운영한다. 마을에 편의점이 없어 빨래방 내 빈 공간을 무인 편의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준비 중이다.

주민들의 요구로 조성된 감물커뮤니티 빨래방에서 지난 17일 이진영(사진 오른쪽) 감물이음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과 전영의 사무국장이 그간의 활동을 설명하고 있다.
주민들의 요구로 조성된 감물커뮤니티 빨래방에서 지난 17일 이진영(사진 오른쪽) 감물이음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과 전영의 사무국장이 그간의 활동을 설명하고 있다.

마을 자치 “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는 것”

이 이사장은 10년 넘게 새마을회 활동을 해왔다. 두 활동의 차이를 묻자, 그는 “새마을회는 주민을 위해 ‘해주는’ 활동이라면, 사회적협동조합 기반의 마을 자치는 주민 ‘스스로’ 변화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는 마을 토박이로, 체류형 요양시설을 만들어 농사지으며 이웃과 함께 고향에서 노년을 보내기 위해 마을 활동에 뛰어들었다. 전영의 사무국장은 2003년 귀농 후 자녀를 둔 부모로서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을 시작으로 농촌유학생 가족의 지역 정착을 돕는 공동체 활동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활동은 ‘내가 살고 싶은 마을을 스스로 만든다’는 철학에서 출발했다.

감물면 사례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문제 발굴부터 해결까지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자치 문화’를 마을에 심었다는 점이다. 또 주민이 먼저 결정하고, 행정은 이를 지원하는 방식이 실제 작동했다는 점도 의미있는 변화로 평가된다.

남은 과제도 있다. 이 이사장과 전 사무국장은 “괴산군에는 주민자치회 조례가 없어 주민의 예산과 집행 권한이 제한된다”며 제도 마련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귀농·귀촌인과 원주민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상시 논의 구조 구축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감물이음사회적협동조합은 앞으로 농촌학교 살리기 사업을 중심으로 주민 참여를 넓히고, 살기 좋은 마을 조성을 위한 활동을 지속할 계획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