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영농 성공적 확대 위한 조건,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영농’

  • 입력 2025.11.09 18:00
  • 수정 2025.11.09 22:45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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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송미령, 농식품부)가 경북형 공동영농 사업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고자 한다. 공동영농 사업은 현장에서 어떻게 진행돼 왔으며, 향후 성공적인 확대를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전국 첫 ‘주주형 공동영농’ 실천한 문경 늘봄영농조합

지난 5일 경북 문경시 영순면 들녘에서 홍의식 늘봄영농조합법인 대표가 트랙터로 양파 모종을 심을 밭을 손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5일 경북 문경시 영순면 들녘에서 홍의식 늘봄영농조합법인 대표가 트랙터로 양파 모종을 심을 밭을 손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경북 문경시 영순면 늘봄영농조합법인(대표 홍의식, 늘봄영농조합). 경상북도(지사 이철우, 경북도)가 추진 중인 경북형 공동영농 사업의 모범사례로 언론지상에 자주 오르내린 곳이다.

영순면은 고령의 농민들이 더는 농사짓기 힘들어 농지를 처분하는 빈도수가 늘어나는 등 농업 생산환경 악화 양상이 두드러진 농촌 지역 중 한 곳이었다. 홍의식 늘봄영농조합 대표도 원래 영순면에서 영농조합법인을 운영하며 벼농사를 지어왔다. 그러나 벼농사만으론 충분한 소득을 거두기 어려웠다.

마침 벼 대신 타 작물 재배를 유도함으로써 농가 소득향상을 이뤄내자는 정부·지자체 차원의 움직임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경북도 차원의 ‘농정대전환’을 고민하던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홍 대표에게 획기적 농업발전 대안을 함께 연구해보자고 제안했다.

이 지사의 제안 전부터 지역 내 공동영농 실천 필요성을 주창해 온 홍 대표는, 이 지사의 제안을 받은 뒤인 2023년 영순면 내 3개 마을 80여 농가를 조직화하고 약 110ha의 농지를 모아 늘봄영농조합을 설립했다.

늘봄영농조합은 경북도와의 연계를 통해 전국 최초로 ‘주주형 공동영농모델’을 도입했다. 주주형 공동영농(또는 주주형 이모작 공동영농)이란 개별 농민이 법인에 농지를 출자해 조합원이 되고, 법인은 농업생산과 경영을 일괄적으로 주관하며, 이후 수익 발생 시 농가는 농지출자 지분에 따른 배당금을 법인으로부터 나눠 받는 유형이다.

현재 늘봄영농조합에선 여름·겨울 이모작으로 콩·양파·감자 등을 재배한다. 지난해 늘봄영농조합의 타 작물 생산량은 콩 214톤, 양파 4514톤, 감자 900톤에 달했으며, 수확량의 80%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측에서 수매했고 나머지 물량 20%는 농협 등에 판매됐다.

공동영농 과정서 거둔 수익, 마을에 환원

늘봄영농조합은 주주형 공동영농 과정에서 농가와의 장기임대차 계약을 통해 지역 농지를 모아내고, 동·하계 이모작으로 경지이용률을 증가시켜 개별 농가 자경 대비 수익률을 크게 향상시켰다. 늘봄영농조합의 경지이용률은 주주형 공동영농모델 도입 전과 비교해 170% 늘어났으며, 벼 단작 시 약 8억원 가량이었던 매출이 공동영농 이모작 후 25억~30억원(순수익 약 2억8000만원) 수준으로 3~4배 가량 상승했다.

수익이 발생하니 그에 따른 농가 대상 배당급 지급도 가능했다. 지난해 늘봄영농조합은 공동영농 참여 농가들에 총 10억원(평당 3000원)의 배당금 및 추가배당금 1억6000만원(평당 500원)을 지급했다. 1ha 기준으로 따지면 900만원이 넘는 소득을 거둔 셈이다. 조합원 농가 중 약 30~40%는 농작업에 참여하며 노동력을 제공하고 노동에 따른 임금도 받는데, 늘봄영농조합에서 지난해 농가에 지급한 인건비는 총 3억4000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늘봄영농조합은 공동영농 과정에서 거둔 수익을 마을로 환원하는 사업에도 적극적이다. 마을 사업 지원(식대, 다과비, 선진지 견학 지원 등) 및 각종 주민 불편사항 해소, 농수로 시설 보강 등에 수익이 활용된다. 홍의식 대표는 “향후 발생한 수익으로 마을 무상급식소와 고령자를 위한 공동주택 등을 마련하려는 중장기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특화형 공동영농’ 실천 중인 봉화 재산토마토작목회

지난 4일 경북 봉화군 재산면의 한 시설하우스에서 김윤하 재산토마토작목회 농업회사법인 대표가 올해 마지막 수확을 앞둔 방울토마토를 살펴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4일 경북 봉화군 재산면의 한 시설하우스에서 김윤하 재산토마토작목회 농업회사법인 대표가 올해 마지막 수확을 앞둔 방울토마토를 살펴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늘봄영농조합이 경북형 공동영농 사업모델 중 주주형 공동영농모델을 보여주는 한 사례라면, 봉화군 재산면 재산토마토작목회 농업회사법인(대표 김윤하, 재산토마토작목회)은 ‘특화형 공동영농모델’을 보여주는 사례로 간주된다.

재산토마토작목회는 수박·방울토마토를 이모작으로 재배한다. 2015년경 재산면 내 토마토작목반 세 곳이 모여 작목회를 구성한 이래, 재산토마토작목회에선 농작물 공동선별·판매 등을 통한 농가수익 창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작목회 자체적으로 마련한 소형 선별기로는 방울토마토 선별이 원하는 수준으로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김윤하 재산토마토작목회 대표는 경북도의 공동영농 사업 진행 소식을 접했다. 김 대표는 농사일로 바쁜 중에도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전문가들 앞에서 발표를 진행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결과 재산토마토작목회는 지난해 공동영농 사업 대상인 혁신농업타운 중 한 곳으로 선정됐으며, 지원받은 사업금액으로 공동집하장 및 대형 자동 선별기 2대(1대당 약 1억1000만원)를 마련했다.

신규 선별기 한 대당 매시간 3톤씩 도합 6톤의 방울토마토 물량을 선별할 수 있다. 작목회 참여 농민들은 과거처럼 조급한 마음을 안고 장시간 동안 선별 작업을 위해 대기하지 않아도 됐다.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상품성 있는 방울토마토를 선별하는 게 가능해졌고, 생산물의 대량 출하 역시 가능해졌다.

재산토마토작목회는 공동영농 사업 참여 후 수박 재배 형태 역시 노지 재배에서 시설재배로 전환했다. 경북도와 봉화군으로부터 지원받은 금액을 통한 재배 형태 전환이었다. 김 대표는 수박 시설재배를 통한 수확 시점 앞당김 및 연이은 방울토마토 후작으로 농가당 소득이 약 3배 늘었다고 언급했다(지난해 작목회 평균 수익 약 4억원).

중소농도, 임차농도,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공동영농 고민해야

이상과 같은 경북형 공동영농 사례를 대대적으로 참고해, 정부는 공동영농 사업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고자 한다. 이와 관련해, 농식품부는 공동영농 시범사업 공모를 통해 내년에 사업대상 법인 6개소를 선정하고자 하며, 선정된 법인엔 2년간 개소당 18억원(국비 10억원, 지방비 8억원, 법인 자부담 2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더불어 교육·컨설팅, 기반 정비, 장비 구축, 마케팅·판로 지원 등 공동영농 전 단계별 지원이 병행될 예정이다.

경북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농식품부는 공동영농 참여 대상에 제한을 걸었다. 참여 대상은 ‘농업인 5명 이상이 참여하고 경작 면적이 20ha 이상인 농업법인’이며, 벼 단작 농가는 참여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는 현장 농민들이 ‘윤석열 내란농정’의 상징처럼 여기는 ‘벼 재배면적 감축’ 기조를 농식품부가 여전히 유지 중인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현장 농민·전문가 다수는 농식품부 공동영농 사업이 좋은 취지와 별개로 △중소농 소외 △농지가 없는 임차농의 공동영농 참여 내용 부재 △친환경농업 활성화 관련 내용 부재 △개별 농민(특히 벼 재배 농민) 자율적 경작권 침해 가능성 존재 △신규·후계농 유인책 불충분 △농산물 가격 폭락 또는 판로 미확보 시 사업 주체가 처할 어려움에 대한 대비책 미비(사실상 법인 차원의 ‘역량’을 통해서만 소득 창출 여부가 좌지우지되는 상황) 등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는 만큼, 이를 해결하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북 청송에서 농사짓는 김태현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의장은 “공동영농 사업이 규모화·집적화·기계화 기반 영농을 기본으로 삼다 보니, 그 과정에서 영농 의지가 있는 고령농을 포함한 중소농이 소외당할 위험성이 높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농지 집적과 영농 기계화를 통해 소수의 인원이 농기계로 모든 농사를 지으면, 그 과정에서 고령농 또는 소규모 농사를 짓는 여성농민 등이 마을과 농지에서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하거나 소외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중소농이 온전히 함께 농사지을 수 있는 체계를 꾸려야 진정 공동영농의 의미를 살릴 수 있지 않겠냐는 게 김 부의장의 의견이다.

공동영농에 참여 중인 법인들의 애로사항도 여전히 남아 있다. 문경 늘봄영농조합도 △농지 집적을 위한 농지 임대차 추진 시 농가들이 농지처분, 농업인 자격유지, 직불금 수령 문제 등을 염려해 공동영농에 쉬이 참여하지 않으려던 상황 △이미 지역 내에서 전업농들이 농작업 대행 등을 진행해 온 데 따른 전업농·법인 간 경합 문제 발생 △공동영농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인력 부족 문제 △기후위기로 인한 농산물 생산량 감소 및 품위 저하 등의 어려움이 남아 있다.

홍의식 대표는 “판매 여건이 좋을 때야 우리(늘봄영농조합) 사례가 ‘성공 사례’로 거론되겠지만, 기후위기 심화와 농산물 가격 하락 등으로 여건이 조금만 나빠져도 곳곳에서 ‘실패 사례’가 나타날 것”이라며, 정부·지자체가 실패 사례 발생 시를 대비해 실패 원인 및 재발 방지 방안 등을 미리 점검하고 준비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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