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AI는 모르는 ‘미각’의 가치

  • 입력 2025.11.09 18:00
  • 수정 2025.11.09 22:45
  • 기자명 이상배(경기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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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배(경기 화성)
이상배(경기 화성)

기러기들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끼룩끼룩하며 선회하다 저 멀리 사라진다. 예년이면 벼를 벤 논이 많아 먹을 낱알들이 많았는데, 올핸 앉을 자리가 없다. 가을 장맛비에 10월 중순이 되어도 방죽논 벼를 베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년 기러기는 왜 오는 것인가?  청둥오리, 제비, 뻐꾸기, 뜸부기 이들은 왜 한국을 찾는가? 반도체를 구입하러 오는 것도 아닐테다. K-POP 들으러 오는 것도 아닐 테다. 먹을 것을 찾아 수천km를 날아온 것이다. 폭풍우도 만날 것이고, 천적도 만날 것이다. 여러 날 날갯짓을 하며 오는 길목에서 새들이라고 근육통이 없겠는가? 먹을 것을 찾기 위해선 그만한 모험과 노력은 당연한 것이다. 먹을 것을 찾기 위해 그들은 온 몸을 던진다. 먹거리는 지고의 가치이다. 그러나 인간이란 동물은 스마트폰, 명예, 권력이 더 소중하다.

먹는 것이 전부인 시대에서 부분이 되어간다. 아버지는 봄날 내내 써레질을 하다 정강이 살이 칼로 벤 것처럼 터졌다. 무논에서 얼마나 시렸겠는가? 거머리가 다닥다닥 붙으면 덤불에 다리를 문질러 떼어 냈다. 다리 여기저기에 피가 쭉 흐른다. 40년 전만 해도 온 마을이 온 몸을 던져 농사했다. 마을 전체가 한 달간 모를 낼 때, 모내는 집에 동네 아이들이 모두 모여 밥을 먹었다. 햅쌀이 나오면 서로 떡을 해서 나눴다. 벼농사는 마을의 전부였고 농부의 전부였다.

지금은 마을마다 한두 명이 트랙터, 이앙기, 콤바인 등 모두 갖추고 벼농사한다. 나라도 아버지 시대처럼 농사하라면 못한다. 재배방식을 과거로 회귀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 시대에 존재했던, 먹는 것에 대한 ‘근원적 가치’와 ‘공동체의 경험’을 미래에 어떻게 되살릴지 묻는 것이다. 엄마가 해준 맛있는 음식에 대한 추억이 옅어지고 있다. 밥상머리 교육이 사라진 지 오래다. 공동체는 음식의 추억으로 형성된다. 식량자급률이 20%대라지만, 나라 전체가 비만을 앓고 있다. 수입해다 먹으면서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스마트팜, 자율주행 트랙터 등 AI 기반 농사가 가까운 얘기란다. 농업은 극소수의 엔지니어와 거대 자본에 의해 진행될 것이고, 쌀값은 소농의 생산비와 무관하게 더 떨어질 것이다. 물론 이러한 거대 기술 농업의 흐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이 농업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기술이 ‘생산’을 담당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은 ‘존재’와 ‘자아실현’을 위한 농업을 만나야 한다. 먹는 것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는 더는 관심사가 아니다. 그저 ‘소비’할 뿐이다. AI 시대일수록 먹는 것에서 나를 만나야 한다.

인공지능(AI)이 못하는 것 하나를 대라면 ‘먹는 것’이라 하겠다. 먹는 각자의 취향과 느낌을 AI가 간파할 수 있을까? 풍미(風味)에서 취미(趣味)가 시작되고, 각자의 미각(味覺)에서 문화(文化)가 시작되는 법이다. 먹는다는 것은 기능적으로 배만 채우는 것을 넘어 전인격을 채우는 복합 문화 행위이다. 문명 대전환기에 먹거리는 무엇인가? 농업은 무엇인가? 농민은 누구이고 농촌은 어떠해야 하는가? 대규모 기술 농업이 식량을 책임진다 해도, 저 넓은 농지에서 다채로운 소농들이 ‘예술’로서 농업을 표현하고 ‘문화’로서 농업을 융성하게 할 방법은 없는가? 수천km를 날아온 기러기들은 목숨을 걸고 ‘먹는 것’의 가치를 아는데, 정작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먹고 있는지 잊어가고 있다. 먹거리를 찾아 아프리카에서 시작해서 유라시아를 거쳐 극동아시아 한국에까지 찾아온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에게 먹거리는 어떤 의미이고 농업은 무엇인지 깊게 스스로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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