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외판원 이야기① 세일즈맨 홍경석의 ‘외판원 일기’

  • 입력 2025.11.02 18:00
  • 수정 2025.11.02 18:27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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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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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이 막 끝났다. 가장을 잃은 가족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슬픔을 가누지 못해 허탈해하는데, 고인의 오랜 친구이자 직장 동료가 아들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한다.

-자네 어른을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네. 자네 아버지는 세일즈맨이었지. 세일즈맨에게는 인생의 밑바닥이 따로 없다네. 법률가나 의사 같은 직업 하고는 판이하게 달라. 늘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고 미소를 지으면서 살아야 하지.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반겨주지 않았어.

고인의 부인은 영정 사진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말한다.

-여보, 날 야속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이제 울음도 안 나오네요. 어쩌다 그런 짓을 저질렀어요? 꼭 당신이 출장을 간 것만 같아요. 당신이 죽어서 탄 보험금으로 마지막 집세도 다 냈다우. 이젠 빚도 없고 홀가분해졌는데…그럼 뭘 해요, 당신이 떠나버려서 집이 텅 빌 터인데….

세계 연극사의 고전으로 불리는 아서 밀러(Arthur Miller)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의 마지막 장면을 조금 고쳐 쓴 내용이다. 예순세 살의 늙은 세일즈맨 윌리 로만이 30여 년 동안 근무하던 회사에서 해고당하자, 배신감과 좌절감을 견디지 못하고 자동차를 폭주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내용의 이 연극은, 자본주의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조차 세일즈맨이라는 직업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고단한 직업인가를 잘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이 발표됐던 때가 1949년인데, 그래도 한 직장에서 30년 동안이나 근속을 할 수 있었고, 게다가 자기 집을 장만하고 자식들을 교육시킬 수 있었으니 우리나라의 외판원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행복한 경우가 아니었을까? 1940년대 말의 우리네 삶을 상기해본다면 더욱.

이 연극의 주인공 윌리 로만처럼 30여 년 동안을 외판원, 근사하게 얘기해서 ‘세일즈맨’으로 살아온 남자를 2003년 1월에 대전광역시에서 만났다. 그는 당시에는 한 중앙언론사의 출판물을 판매하는 회사에서 간부사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홍경석씨(1959년생)가 그 주인공이다.

내가 만났을 당시 홍씨의 나이는 기껏 마흔네 살이었는데도 세일즈맨의 경력을 셈해보면, 앞서 소개한 연극의 주인공인 63세의 윌리 로만과 같은 30년째라고 했다. 열 서너 살 때부터 외판 행상에 나섰다는 얘기다. 충청도 천안 출신의 이 남자가 그동안 팔아 온 물건은 어떤 것이었고, 우리는 또 그에게서 어떤 물건을 어떻게 구입했었는지(혹은 외면하고 지나쳤는지), 그가 살아온 ‘외판원 인생 30’년을 더듬어보기로 하자.

1972년 충청남도 천안역.

-구두 닦어! 신발 닦어! 아저씨, 구두 안 닦어유? 구두 닦어!

당시 천안역은 시외버스 터미널과 함께 붙어 있어서 역전 광장으로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통행을 했다. 기차를 타러 가거나 내리는 사람, 혹은 시외버스를 이용하려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면서 구두를 닦으라고 외치고 있는 이 소년이 바로 열네 살 홍경석이었다. 아직 부모에게 어리광이나 부릴 나이에 어쩌자고 거리로 나오게 되었을까?

“아버지 어머니가 결혼해서 저를 낳으셨는데 제가 첫돌을 맞이할 무렵에 이혼을 하셨대요. 그래서 저는 아버지 밑에서 동네 사람들의 동냥젖을 얻어먹고 목숨을 부지했다는 거예요. 아버지도 뚜렷한 직업 없이 지내다가 저를 동네 할머니나 유모에게 맡겨두고 천안역 앞에 있던 시외버스 주차장에서 배차 일을 했었다는데….”

얼마 뒤에 홍경석의 아버지는 재혼을 해서 두 아들을 두었다. 하지만 홍경석이 국민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에 빠져 시외버스 배차원 일마저 그만두고 말았다.

“어떻게 해요. 제가 벌지 않으면 식구가 모두 굶게 생겼는데. 당연히 중학교 진학은 포기했지요. 그 시절엔 중학 진학하는 학생이 절반도 안 됐어요. 같이 입학한 아이들 중엔 4~5학년까지만 다니고 중퇴한 학생들도 부지기수였는데, 그나마 국민학교 졸업장을 받은 것만도 다행이었지요.”문제는 이복동생들까지 다섯이나 되는 가족을 부양할 책임이 고스란히 열네 살 짜리 홍경석의 어깨에 지워진 것이었다. 그러니까 소년 홍경석이 처음으로 세일즈 전선에 나서면서 팔겠다고 내놓은 상품이 바로 ‘구두를 닦아주는 서비스’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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