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문의 장날 무엇을 살까

  • 입력 2025.10.26 18:00
  • 수정 2025.10.26 20:10
  • 기자명 김남운(충북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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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운(충북 청주)
김남운(충북 청주)

어느 해보다 힘든 가을을 보내고 있지만 가을은 가을인가 보다. 어머니의 밭에는 배추·무·알타리·쪽파·생강·토란·콩 등이 익어가고 있다. 참깨는 벌써 두 말을 쪘다고 하시고 어제는 들깨를 떨어오셨다. 80세가 훌쩍 넘은 어머니의 가을은 바쁘다.

청주 문의면의 장날은 1일과 6일이다. 학창시절 장날에는 버스 타기도 어려웠다. 소전리에서 산덕리, 구룡리를 거쳐 우리 마을까지 버스가 오면 학생들은 물론 어르신들이 각종 농산물 보자기를 갖고 계셔서 안내양이 문을 닫기도 어려웠다. 가끔은 버스 안에서 닭이 날아다니기도 했다. 버스를 놓치면 학교에 지각하기 때문에 지나가는 경운기를 타고 가기도 했다. 어른들은 꼭 장날에 농협에도 가고, 병원에도 가고, 미용실도 가고, 방앗간에도 들렀다. 식당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지금도 아버지는 장날이면 집을 나서신다.

예전에 비해 규모는 작아졌지만 여전히 문의면에는 오일장이 선다. 오늘(10월 21일)이 문의 장날이다. 어머니는 참깨와 들깨를 한 말씩 자루에 담아 방앗간에 가려고 전화를 하신다. 다른 사람의 깨가 섞일까 봐 방앗간에 앉아서 참기름과 들기름이 그동안 모아놓은 소주병에 가득 담길 때까지 기다리신다. 옆에 앉아계신 분들과 동네에 누가 돌아가셨는지, 누구네 자녀가 결혼을 했는지 등 각종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 방앗간이다.

장터에서 여전히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뻥튀기이다. ‘뻥’ 소리가 나야 활력이 넘친다. 육쪽마늘, 건고추 등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각종 야채와 나물, 콩 등을 갖고 나오신 분들이 길게 앉아서 손님을 기다린다. 마트에서는 구입하기 어려운 아주까리밤콩, 울타리콩 등은 장터에서 살 수 있다. 어느새 은행을 주워 씻고 말려서 갖고 나오신 할아버지는 이걸 팔아 그 돈을 어디에 쓰실까 궁금하다.

농촌인구는 빠른 속도로 감소하는 중이다. 면 인구가 3000명 아래로 내려가면 병원·약국·학교 등도 존재하기 어렵다. 더욱이 인구의 상당수가 고령이면 소비력이 충분하지 않아 지역 상권이 어렵다. 생활인구를 늘리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펴고 있지만 그 효과는 읍 지역에 쏠릴 수밖에 없다. 결국 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돈을 면 지역에서 쓸 수 있어야 하는데 농촌의 고령인 분들은 자급형 농사를 짓고 계셔서 구매력이 낮다. 지역 상권은 돈이 돌지 않으면 유지되기 힘들다. 오일장도 그렇다.

지난 20일 농림축산식품부는 2년간 인구감소지역 7개 시군에 거주하는 주민에게 월 15만원 상당의 지역상품권을 지급하는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 대상 지역을 발표했다. 내가 사는 지역은 해당되지 않았지만, 이 사업은 지역 상권을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 지급된 민생회복지원금은 농민수당이나 공익형 직불금과 달리 농민뿐 아니라 모든 주민에게 지급됐고 어머니도 받게 됐다. 어머니는 지원금 대부분을 면 소재지에서 사용했다.

농촌을 살리겠다고 수십억원을 들여 건물 짓고, 보도블록 교체하고, 멀쩡한 가로수 뽑아 새로 심는 등의 사업예산을 줄여서 농어촌기본소득으로 전환하면 7개 시범지역이 아니라 내년에라도 전국적으로 시행할 수 있다.

오늘은 문의 장날이다. 어머니를 방앗간에 모셔다드리고 장터 구경을 한다. 문의 장날 무엇을 살까? 대부분 아는 분들이라 눈이 마주치면 사야 하니 정면을 똑바로 보고 천천히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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