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뜻있는 연구자들과 충남농업회의소가 함께 일본 구마모토의 집락영농 현장을 방문했다. 일본의 집락영농은 고령화와 후계자 부족으로 인해 개별 형태의 영농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마을 단위에서 농사를 위탁하거나 공동경작하기 시작한 것이 계기다. 특히 중산간 지역과 같이 농업 여건이 열악한 지역에서 활발히 추진되고 있으며, ‘지역의 농지는 지역이 지킨다’는 공감대가 바탕이 돼 있다.
구마모토현의 중산간 지역에 위치한 ‘오쿠아소 구사카베 영농법인’은 지역의 수로와 농지를 100년 전 조상들이 닦아온 대로 보전하고, 그 전통을 계승하자는 취지로 2015년 설립됐다. 조합원은 5명이다. 주 작목은 쌀로, 해발 630m 고지대의 기후를 활용해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을 절반으로 줄인 환경보전형 농업을 실천하고 있다. 2017년에는 오리농법을 도입했고, 메밀·보리·관상용 배추 등으로 작목을 다변화했다.
논은 총 10ha인데 100필지 이상으로 흩어져 있다. 대형기계 진입이 어려워, 5명의 직원이 순회하며 경작한다. 2016년에는 ‘백년의 은혜’라는 독자 브랜드를 만들어 판매하고, 같은 수로를 사용하는 인근 농가들도 공동으로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다. 육묘·탈곡 등 주요 공정은 공동으로 수행해 인력과 비용을 절감하며, 현재 관리 면적은 약 20ha다.
3개 마을로 구성된 구사카베 지역은 고령화로 경작 포기지가 급증하자, 2013년 구마모토현 농지집적가속화사업의 중점지역으로 지정돼 법인체계로 전환했다. 법인은 단일 회계로 수익을 통합 관리하고, 구성원 간 합의에 따라 배분한다. 물 관리나 제초작업은 주민들에게 위탁한다. 지역부흥협력대 사업을 통해 법인에서 농사를 돕던 청년은 현재는 농가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법인 쌀을 판매하는 등 지역 내 순환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한편 구마모토 중앙부 평야 지대에 위치한 스기카미농장은 2014년 설립된 농사조합법인으로, 쌀·대두·양파·밀 등을 생산하는 대규모 토지이용형 법인이다. ‘사람, 지역, 조직, 산지 만들기’를 이념으로 삼고, 지역농업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설립됐다. 조합원은 13개 마을 136명으로 구성되며 일본농협중앙회(JA)도 참여한다. 직원 11명 중 8명이 기계 작업을 담당하는 오퍼레이터이고, 임시고용자만 30명에 달한다. 사원 대부분이 비농가 출신으로 평균 연령은 35세다. 농사 경험이 없는 사원들을 대상으로 5년 육성프로그램을 통해 전문성을 키우고 있다.
스기카미농장은 조합원 경지 291ha, 법인 직영 225ha를 포함해 수탁작업 면적이 825ha에 이르며, 구보다의 KSAS 농업정보시스템을 활용해 모든 필지의 작업상황을 투명하게 공유한다. 마을행사에 적극 참여하며 ‘농업은 즐겁다’는 인식을 전파하고 있다. 양파 부산물을 활용한 드레싱과 마늘된장소스 같은 가공품을 개발해 부가가치를 높였다.
평균 연령 75세의 이 지역에서 스기카미농장은 젊은 세대의 농업 진입을 유도하고, 농업을 지역의 매력적 산업으로 재인식시키는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청년이 들어오고, 농지가 다시 관리되며, 지역 자원이 순환되는 이 구조야말로 일본 집락영농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주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