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통선 축소는 생색에 불과…제발 농민과 소통하라”

“민통선 5km까지 축소” 국방부 발표에
접경지역 농민들 “아무 의미 없다” 비판
민통선 전면 해제 및 농민 의견수렴 요구

  • 입력 2025.10.24 14:51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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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접경지역농민연합(준)이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정부의 ‘민통선 5km 축소’ 계획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접경지역농민연합(준)이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정부의 ‘민통선 5km 축소’ 계획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을 군사분계선으로부터 5km 거리까지 축소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접경지역 농민들은 오히려 반발하고 있다. 상당수 접경지역의 민통선이 이미 5km 이내로 설정돼 있어 접경지역 농민들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입장이다.

농업 활동과 재산권 행사 등에 강한 제약을 받고 있는 접경지역 농민들에게 민통선 축소는 환영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중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이미 5km 이내의 민통선이 설정돼 있는 상황에서 “민통선을 5km로 축소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는 되레 농민들의 부아를 돋웠다.

접경지역농민연합(준)은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재명정부의 ‘생색 행정’을 규탄했다. 접경지역농민연합은 수십년 동안 국가 안보를 위해 희생해온 경기·강원권 접경지역 농민들이 뒤늦게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준비 중인 조직이다.

농민들이 가장 분노하는 지점은, 접경지역 농민들이 이처럼 본격적으로 권리 보장을 부르짖기 시작한 가운데 정부가 한마디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탁상행정을 감행했다는 점이다. 이석희 접경지역농민연합 공동대표는 “그동안 우리는 불합리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국회 토론회와 대통령실 면담을 통해 요구사항을 성실히 전달했지만, 정부의 답변은 여전히 현장 목소리를 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덕수 전국농민회총연맹 강원도연맹 사무처장 역시 “‘국민주권정부’라는 이재명정부가 왜 현장 농민과 단 한 번의 소통도 없이 5km 축소를 결정하나”라며 “다시 한번 정중히 요청한다. 5km든 10km든 전면 해제하든, 현장 농민들과 제발 소통하고 의견을 청취한 다음에 해 달라”고 호소했다.

농민들은 5km 축소가 아닌, 민통선 ‘전면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민통선의 존재 이유는 군사작전상의 필요인데, 70년 전의 낙후된 장비·전력을 기준으로 설정한 것이라 현 시점에선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다. 기자회견에 함께한 김기호 한국지뢰제거연구소장은 “민통선 설정 당시 우리나라는 소총도 대포도 전차도 생산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첨단무기까지 갖추고 있다”며 “전쟁이 나면 군인들도 민통선이 아니라 민통선 밖으로 이동해 대응하게 된다”고 민통선 무용론을 설명했다.

전환식 파주농민회 대표는 “매일을 검문·검색 당하고 산다 생각해 보라. 민통선을 하루에 10번 출입하면 10번을 검문·검색 당해야 하는데 70년이 넘도록 이 짓을 하고 있다. 민통선 내에 창고나 농막 하나를 못 지어서 비싼 농기계를 노지에 놓고 눈·비를 맞히고 있다”며 농민들의 현실적인 애로를 증언했다.

접경지역농민연합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민통선 축소 관련 구체적 법령 개정 여부와 추진 근거를 공개하고 민통선을 전면 해제할 것 △접경지역 실태조사 및 농민 의견수렴 절차를 우선 실시할 것 △민통선 지역 농민의 재산권 회복과 생활권 보장을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사항으로 정리했다.

기자회견엔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도 참석해 농민들의 요구에 힘을 실었다. 하 의장은 “민통선은 말 그대로 민간을 억지로 통제하는 것이다. 비무장지대만으로도 충분한데 또다시 벽에 벽을 쳐놓고 있다”고 성토했다. 또 트럼프 미 대통령의 남북관계 개입 의지를 비판하며 “통일은 우리 손으로 해야 한다. 그 최일선에서 굽힘 없이 투쟁하면서 농사짓고 있는 농민들이 통일의 선봉대장이다. 우선 접경지역에서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농민들부터 마음 놓고 출입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평화가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이석희 접경지역농민연합 공동대표가 정부의 일방적·행정편의적 정책 행보를 비판하고 있다.
이석희 접경지역농민연합 공동대표가 정부의 일방적·행정편의적 정책 행보를 비판하고 있다.
전환식 파주농민회 대표가 민통선 내 권리 제한으로 인한 접경지역 농민들의 고충을 설명하고 있다.
전환식 파주농민회 대표가 민통선 내 권리 제한으로 인한 접경지역 농민들의 고충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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