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산청 수해 이후

  • 입력 2025.09.21 18:00
  • 수정 2025.09.21 19:52
  • 기자명 이종혁(경남 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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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혁(경남 산청)
이종혁(경남 산청)

산청에 수해가 난 지 두 달이 지났다.

침수됐던 하우스들은 대부분 복구 작업을 마치고 딸기 정식이 한창이다. 강둑이 터지거나 산사태로 피해가 컸던 하우스는 공동 철거 작업이 진행 중이며, 일부 농민들은 하우스를 서둘러 다시 지어 어떻게든 올해 농사를 이어가려 애쓰고 있다. 지자체의 빠른 복구 작업에도 불구하고, 도로와 하천 주변에는 여전히 수해의 흔적이 남아 있다.

수해 직후 주변 친구들이 가장 먼저 농장으로 찾아왔다. 이어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주민들의 피해상황을 접수하고, 지역 주민모임 ‘그늘과언덕’과 함께 자원봉사자와 피해 농가를 연결하는 일을 시작했다. 인원이 줄기는 했지만 지금까지도 그 활동은 이어지고 있다. 많은 농가들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감사와 희망을 발견했다고 한다. 

재난 현장에서 주민들은 도움과 관심도 필요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게 하는 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해 이후에도 비가 잦아 걱정스러운 날, 딸에게 “비가 이렇게 많이 오면 딸기를 어떻게 심어?” 물었더니 “내가 어린이집 가고 나면 비 그치면 그때 심으면 되지”라고 했다. 아이다운 말이었지만 그 한마디에 나는 힘과 용기를 얻었다.

이런 역할을 지자체나 정부가 해줄 수는 없을까? 수해가 나고 한 달은 복구에 정신이 없었고, 시간이 지나자 주변 상황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피해신고를 했으니 가만히 있으면 정리가 되는 문제일까? 그제야 다른 지역의 사례를 찾아봤고, 구례 대책위원장의 도움으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구례는 섬진강댐 수문 개방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매뉴얼대로 했다고 하지만, 그 매뉴얼은 수십 년 전 기준이라 현재 상황과 맞지 않았던 것이다. 산청에서는 많은 농민들이 남강댐을 지적한다. 구례와 달리 남강댐 수문을 너무 늦게 열어 댐 상류 지역인 산청, 하동, 진주 일부에서 큰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구례 재난 이후 수자원공사의 매뉴얼은 어떻게 얼마나 개선됐는지 모르지만 요즘처럼 이상기후가 빈번한 상황에서는 탄력적이고 현실에 맞는 댐 관리 매뉴얼이 필요하다.

농업재해보험 역시 농민들의 불만이 크다.

보험에 적용되지 않는 품목이 너무 많고, 기존에 침수피해는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농민들도 많았다. 산청은 딸기 재배 농가가 많은데 딸기는 모종 재배와 정식 이후 수확 기간이 각각 10개월 정도로 길다. 그만큼 딸기 농사는 모종이 중요하며 모종 농사가 딸기 농사의 90%를 차지한다는 말도 있다. 그렇지만 보험에서는 딸기 모종은 제외되고 정식 이후부터 수확하는 기간까지만 보상이 된다.

법과 정책이 담아내지 못하는 현장의 다양한 피해를 농민들은 고스란히 떠안고, 견디고 또 견뎌내고 있지만 더는 버틸 힘이 없어 보인다.

수해로 산청에 6362억원이 피해 복구 예산으로 책정됐고, 이 중 공공시설(도로·하천 등) 복구에 5678억원, 사유시설(농지·농작물·주택 등)에 684억원이 편성됐다. 요구하고 행동을 해야 지원이 달라진다는 지역주민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행정과 주민들의 관계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제는 재난으로 생긴 상처를 진정으로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는 긴급한 지원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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