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지난 7월 23일 미일 관세 협상이 합의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일본은 우선 기본 관세율(MFN, 최혜국대우 관세율)을 포함한 상호관세율을 15%로 하고, MFN 세율이 15% 이상인 품목에 대해서는 상호관세와 상관없이 MFN 세율만을 부과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농업 분야와 관련해서는 바이오에탄올·대두·옥수수·비료 등 미국산 농산품의 수입 확대, 쌀 의무수입 물량(미니멈 액세스) 가운데 미국산 쌀 수입 물량 확대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산 농산품 등에 대한 일본 측의 관세 인하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일본의 관세 협상을 앞두고 일본에서는 미국이 일본의 농림수산물에 대한 관세 압박을 강화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그 이유는 미국이 일본 산업 전체의 대미 무역수지가 연간 8조7000억엔 이상 흑자를 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의 전체 농림수산물 무역수지는 연간 수출 1조3580억엔, 수입 12조7972억엔으로 11조4392억엔 적자이다(2023년도 통계). 이 가운데 대미 수출입 비중이 약 15%를 차지하는데, 대미 농림수산물 무역수지 역시 수출 2062억엔(15.2%), 수입 2조1225억엔(16.6%)으로 대미 무역 적자만 약 2조엔에 가깝다. 그래서였는지 이번 협상에서는 농림수산물의 관세에 대한 언급은 따로 없었다.
만약 미국이 관세를 올리게 되면, 일본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농림수산물이 직접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전문가들은 대미 수출 농림수산물에 대한 관세가 상승해도 수출량에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었다. 그 이유는 대미 수출 물량이 많은 상위 품목들이 기본적으로 일본 국내에서도 부가가치가 높은 품목들이며, 기호품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다.
농림수산성이 발표한 2023년 현재 대미 농림수산물 수출 내역을 보면 방어가 243억엔으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청주, 위스키 등 알코올음료가 237억엔, 녹차 157억엔, 소스 혼합 조미료(레토르트 카레 등) 124억엔, 가리비 119억엔 등의 순이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품목들은 관세가 10~24% 정도인데, 이 정도로는 이들 품목의 수출량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었다.
오히려 이번 협상에서는 일본 정부가 걱정하고 있었던 미국산 농산물 시장개방 압력과 쌀에 대한 수입 확대 압력이 현실이 됐다. 지난 4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미일 관세에 관한 대통령령’에는 일본의 미니멈 액세스 물량 가운데 미국산 쌀의 수입 물량을 곧바로 현재보다 75% 증가시킬 것, 옥수수·대두·비료·바이오에탄올 등 미국산 농산품과 기타 미국산 제품을 연간 총 80억달러 상당 구입할 것 등이 적시돼 있다. 현재 일본은 매년 77만톤의 쌀을 미국과 태국, 호주, 중국 등에서 의무적으로 수입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미국산 쌀이 34만톤으로 가장 많다. 일본은 이번 관세 협상의 결과로 미국산 쌀을 현재의 34만톤에서 50만톤 정도로 늘려야 하는 입장이다.
게다가 지난 8월 6일 미국 연방관보(Federal Register)에 고시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제14326호 ‘상호관세율 추가 수정’을 두고 미일 간 인식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일본산 제품에 대해서 ‘현행 관세에 15%를 가산’한다는 미국의 입장에 대해 ‘현행 관세율이 15% 미만인 경우에는 15%로 올리고, 15%를 초과하는 경우에는 현행 세율을 유지한다’는 일본의 입장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미국의 주장대로라면 일본산 소고기의 경우 현재 기준 관세가 26.4%인데, 이번 조치에 따라 15%를 가산하면 최종적으로 41.4%가 되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트럼프식 관세 협상은 그동안 우리가 겪어왔던 국제 무역 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상징적인 일이다. WTO(세계무역기구)라는 국제 무역 질서가 무너지고, 국가 간 개별적인 힘의 논리가 무역의 향방을 결정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사례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각국에 부과한 상호관세가 대통령의 권한을 넘어선 불법이라는 두 차례에 걸친 미국 법원의 판결이 나왔고, 마지막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어떠한 결과가 나오던 미래 무역 환경에 대한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아직 미국과 관세 협상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일본의 협상 결과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