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소비자 이익 되는 농산물도매시장 돼야" 개혁 논의 확산

한국법제연구원, 지난 12일 국회서 국제학술대회 개최
대만·일본 사례 공유 및 한국 도매시장 거래제도 진단
도매시장법인 ‘독점’ 구조,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 제기
유통환경·소비 선호 변화 따른 시장 발전 필요성 확산

  • 입력 2025.09.15 10:17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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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이상기후로 인한 농업 생산성 저하, 소비자물가에 대한 끊이지 않는 사회적 관심 속 농산물 유통구조와 도매시장 거래제도의 문제점이 부각되며 개혁 필요성이 다시금 떠오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일 국무회의에서 도매시장법인의 독점 구조 폐해를 지적하기도 했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도매시장 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지난 12일 한국법제연구원이 실질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거래제도 발전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국제 학술대회에서 전문가들은 대만과 일본, 한국 등 각각의 도매시장 구조와 관련 법 개정 및 발전 현황 등을 세세하게 짚었다. 이어 각계 관계자와 연구진, 정부 담당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도매시장 발전 방향에 대한 의견이 개진됐다.
 

농민단체 ‘농회’ 중심의 도매시장 운용
리황자오 대만 국립중흥대학 교수

지난 12일 국회박물관에서 열린 ‘농산물 도매시장 거래제도 개선을 위한 국제학술대회’에서 리황자오 대만 국립중흥대학 교수가 대만의 도매시장에 관해 발표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2일 국회박물관에서 열린 ‘농산물 도매시장 거래제도 개선을 위한 국제학술대회’에서 리황자오 대만 국립중흥대학 교수가 대만의 도매시장에 관해 발표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최근 10년 동안 시스템이 많이 달라졌고, 대만은 현재 전통적인 유통과 새로운 형태의 유통구조를 모두 취하고 있다. 한국보다 도매시장 이용률은 낮지만, 대만에서도 도매시장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대만의 도매시장은 공공성과 비영리 목적으로 운영된다. 도매시장 자체가 돈을 벌지 않는다. 공공사업에 가깝다. 농민단체인 '농회'가 대만의 농산물 도매시장의 운영주체다. 농산물 도매시장 운영주체는 농민단체거나 농민단체가 공동출자해 설립한 법인 등 6가지 경우에 한정된다. 대만 정부는 농민들이 농산물 도매시장에서 가장 중심적 역할을 해내길 희망하고 이에 농민단체는 소속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공동출하해 도매시장서 판매한다. 농민단체는 도매시장의 경영자이자 주요 농산물 공급업체며, 자신들이 공동 출하한 농산물을 우선 처리한다.

대만의 도매시장은 대부분 경매거래를 이용한다. 수의매매, 정가거래, 입찰거래 네 가지 방식도 활용된다. 경매의 경우 가격 결정 매커니즘이 매우 중요하다. 가격이 공정한지 가격과 가격 결정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는지도 중요한 이슈다. 가격 평가팀이 있어 경매가격에 대한 평가도 이뤄지고 외부 감독원들이 공정거래 여부도 확인한다. 이밖에 농민이 상품을 도매시장에 판매한 뒤 소득을 얼마나 가져가는지가 도매시장 효율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기도 하다.

현재 대만의 도매시장은 판매뿐 아니라 재포장, 가공 등의 새로운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법 개정과 그에 따른 농산물 도매시장 변화
우지에 기오카즈 일본 츠쿠바대학 교수

지난 12일 국회박물관에서 열린 ‘농산물 도매시장 거래제도 개선을 위한 국제학술대회’에서 우지에 기오카즈 일본 츠쿠바대학 교수가 일본의 도매시장에 관해 발표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2일 국회박물관에서 열린 ‘농산물 도매시장 거래제도 개선을 위한 국제학술대회’에서 우지에 기오카즈 일본 츠쿠바대학 교수가 일본의 도매시장에 관해 발표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일본에서 도매시장은 △집하와 분산 △가격 형성 △대금결제 △정보 수발신 등 네 가지 역할을 한다. 특히 대금결제의 경우 법 개정으로 해당 기능이 일부 약화하긴 했지만, 청과물의 경우 5일 내 대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

대형 유통점과 주요 산지 간 직접 거래, 수입식품 증가 등의 영향으로 도매시장 유통은 점차 감소하고 시장 외 유통이 확대되는 추세다. 그럼에도 최근 청과물과 농수산물 유통량의 약 절반은 도매시장이 담당하고 있다. 특히 일본산 청과물은 2021년까지도 76.4%가 도매시장을 경유했다.

1923년 제정된 중앙도매시장법은 △경매 △위탁 집하 △상물일치 등 세 가지 거래 원칙을 규정했다. 1971년 도매시장법 제정은 경제 및 유통 등 환경 변화에 따라 예외조항으로 경매 이외의 예약거래, 제3자 판매 등을 허용했으며, 이후 1999년, 2004년, 2018년 개정을 통해 규제 대부분이 완화·폐지됐다.

소비자 행동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도매시장도 이에 맞춰 바뀔 필요가 있다. 관련 법이 실체에 맞춰 개정을 거듭했고, 제도가 변화한 덕에 경매거래 비율이 확연히 꺾이고 있다.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식량 조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중요하다. 국민 식생활을 지키기 위해 공공이 어디까지 관여할 것인가 꾸준히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후변화로 농산물 생산 방식도 달라질 것이기에 규제와 완화 사이 최적점을 찾아가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공정거래법에 근거한 도매시장 거래제 평가
김윤정 한국법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 12일 국회박물관에서 열린 ‘농산물 도매시장 거래제도 개선을 위한 국제학술대회’에서 김윤정 한국법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한국의 도매시장에 관해 발표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2일 국회박물관에서 열린 ‘농산물 도매시장 거래제도 개선을 위한 국제학술대회’에서 김윤정 한국법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한국의 도매시장에 관해 발표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현행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은 순수 민간회사인 도매시장법인(도매법인)에 도매시장 유통구조의 결정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윤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도매법인은 정가수의매매 등 다른 형태의 거래가 가능함에도 비용이 적게 들고 안정적인 수수료 수입이 보장되는 경매제를 주된 방식으로 선택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은 부당한 공동행위(담합)의 한 유형으로 사업자가 시장을 나눠 거래를 독점하는 ‘시장분할’을 금지한다. 농안법은 산지수집 주체와 소비지 분산 주체를 각각 도매법인과 중도매인으로 한정해 시장이 분할됐다고 볼 수 있다. 농안법 규정은 경쟁제한적 규제 법령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 공정위는 이와 유사한 시장분할을 담합으로 규제한 사례가 있으며, 독과점적 시장구조에 개입할 권한이 있다.

농안법은 도매법인과 중도매인 간 업역 제한을 폐지해 산지와 소비지에서 자유로운 경쟁이 가능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밖에 도매법인만 상장할 수 있다는 전제로 쓰여진 문구의 삭제, 중도매인 거래 제한 폐지 등이 이뤄지면 어떨까 싶다.

아울러 도매시장 개설자가 신규 사업자(도매법인)의 시장 진입도 허용해야 한다. 특별한 배제 사유가 없을 때 자동으로 재지정되는 현행 제도를 개선해 도매시장 개설자가 도매법인을 공모 방식으로 지정하도록 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겠다. 평가 부진 도매법인의 지정 취소 의무화와 대만처럼 농민단체가 도매시장 운영에 참여하는 방식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12일 국회박물관에서 열린 ‘농산물 도매시장 거래제도 개선을 위한 국제학술대회’에서 백혜숙 지속가능국민밥상포럼 대표가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2일 국회박물관에서 열린 ‘농산물 도매시장 거래제도 개선을 위한 국제학술대회’에서 백혜숙 지속가능국민밥상포럼 대표가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민·소비자 위한 농산물 유통 ‘개혁’ 방안은?

대만·일본·한국 발표자들의 발제 이후엔 변화하는 소비자 선호에 따른 각국의 도매시장 발전 계획은 무엇인지, 농산물 가공품을 취급하고 있는지, 정부의 지원체계는 어떤지, 도매시장 변화에 대한 출하자(농민) 반응은 어떤지 등 질의응답이 빗발쳤다.

결국 예상된 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한국 농산물 도매시장 발전방안에 대한 토론이 시작됐다. 토론의 좌장은 백혜숙 지속가능국민밥상포럼 대표가 맡았다. 토론에는 생산자이자 출하자인 엄재성 (사)경북농민사관연합회 사무총장, 소비자를 대표해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 구매자 측의 박용만 (사)한국마트협회 회장 등 업계 관계자와 최병옥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김현희 한국법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 학계 전문가, 박은영 농림축산식품부 유통정책과장이 함께했다.

먼저 엄재성 사무총장은 “농산물을 생산·출하하고 남는 건 상하차비 제외한 금액 정도다. 경매가 어떻게 이뤄졌고 어떤 근거로 가격이 결정됐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가격이 낮을 땐 오히려 돈을 물어주기도 한다”며 출하자 입장에서 느끼는 현행 농산물 도매시장의 불합리한 거래제도를 지적했다. 이어 정지연 사무총장은 “농산물의 안정적 공급과 유통, 가격, 품질 모두 소비자에게 매우 중요하다.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막대한 만큼 도매시장 거래제도 안에서 소비자가 목소리 낼 거버넌스 구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라면서 공정거래 촉진 등을 위한 농산물 도매유통의 개혁, 공급망 불안에 대응할 안전장치 마련 등을 제안했다.

이후 최병옥 연구위원은 “약 30년간 농산물 도매시장 거래제도에 대한 논의·발전이 지속돼 왔음에도 사회 전체적으로 현재 유통체계를 지적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대통령까지 도매법인 독과점 구조를 언급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고 운을 뗐다. 이후 이마트·롯데마트 등 대형유통업체의 등장·정착 과정 중 정가수의매매나 예약거래 등 거래제도 다양화가 이뤄졌다면 중도매인 경쟁력 역시 강화됐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밝혔다. 최 연구위원은 경매 중심 거래제도에 대한 논쟁 말고 소비자 지향적 도매시장으로, 물류 중심 도매시장으로 개선 방향을 모색하면 좋겠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박은영 과장은 “현재 농산물 도매시장의 경매제도와 가격 등이 문제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공정하고 투명한 가격을 실시간으로 결정하고 아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경매제도가 농산물 도매유통의 주류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경매로 인한 시장가격이 유일무이한 기준가격이 되고 있다는 게 현행 유통구조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장기간 발전을 거쳐 정착한 제도가 빠르게 변화한 유통환경과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바며, 도매시장 법인 독과점 구조를 깨트리고 경쟁 체계를 구축하는 제도 개선이 향후 몇 년 간 정부가 중점 추진할 정책 목표이자 과제인 것 같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만족하는 가격 결정을 위한 정가수의매매 및 예약거래 확대, 산지 선별·수집 및 유통·판매 기능 제고와 농협 역할 재편 등을 지속적으로 논의해 발전 방안을 만들어보겠다”고 밝혔다.

토론 이후로도 현장에선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특히 도매시장법인의 경매제 대항을 위해 시장도매인제를 활용하자는 주장이 강했는데, 이와 관련해 강서농수산물도매시장을 시장도매인 전용으로 전환해 가락시장과 강서시장 등 도매시장 간 경쟁을 강화하자는 방안이 거듭 제안됐다.

한편 토론을 정리하며 백혜숙 대표는 “농산물 유통 ‘개혁’에 대통령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123개 국정과제 중 개혁이라는 단어가 직접 등장한 건 농산물 유통이 유일할 정도다”라며 “농민과 소비자 모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유통개혁·발전에 오늘 학술대회가 큰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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