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경험으로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듯 한데 제가 놀랐던지, 뭘 잘못 먹고 체했던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만 그때 동네 아주머님이 제 엄지발가락을 바늘로 찔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에도 효과는 둘째치고 아프기만 하고 왜 이러지 싶어 동네 아주머니를 원망했던 기억만 생생합니다.
개원 초기 갓난아기를 안고 들어와 아이가 놀라서 그러는데 손가락을 따 달라는 보호자 분들이 간혹 있기도 했습니다. 특히 한 젊은 엄마는 마뜩잖은 눈치였지만 아이의 할머니 손에 어쩌지 못해 이끌려 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과거에는 놀랐을 때 손가락을 찔러 피를 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지금도 연세 드신 분 중에는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기도 합니다. 놀랐을 때는 반드시 손가락을 따야 하는 것일까요?
결론적으로 놀랐을 때마다 바늘로 찔러 피를 빼는 등의 조치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과거 이런 행위를 하게 된 것은 아이가 놀라면 이후 문제가 생긴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슨 조치라도 취하려 했던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손가락 또는 발가락을 바늘로 찔러 피를 빼거나 청심환류의 약을 복용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더불어 과거에는 예방접종이 없어 어려서 잘못되는 경우가 많아 아이들의 사소한 증상에도 어른들은 많이 긴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대과학을 통한 관찰과 확인 결과 아이가 놀랐다고 해서 이후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상황이 있으면 우선은 안정과 관찰이 필요한 것입니다.
<동의보감> 소아 부문에 가장 먼저 나오는 표현은 소아병난치라 하여 어린이의 병은 치료하기 어렵다고 돼 있습니다. 옛말에 “남자 열 사람의 병을 치료하기보다 부인 한 사람의 병을 치료하기 어렵고, 부인 열 사람의 병을 치료하기보다 어린이 한 사람의 병을 치료하기가 어렵다. 이는 증상을 묻기 어렵고 맥을 진찰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돼 있습니다.
놀랐을 때 반드시 피를 빼라는 기록보다는 뜸을 뜨거나 약을 먹이라는 기록은 있습니다. 당시 뜸을 뜬다는 것은 뜸으로 살에 화상이 생길 정도로 열 자극을 가하는 것이므로 지금은 시행해선 안 됩니다. 약 복용도 아이가 놀란 당시에 억지로 먹이려 해서는 안 됩니다. 너무 놀란 상태에서 오히려 약을 먹다 흡인성 폐렴이나 기도가 막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약 복용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놀란 상태가 지나가고 일상생활에 어떤 지장이 있는지를 잘 살펴 판단해야 합니다.
과거의 것을 잘 계승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현대에 재현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한 것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불필요한 것은 과감하게 버릴 줄도 아는 것이 오히려 더 잘 계승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받아들이거나 버릴 때 그 이유가 분명하고 과학적 검증이 있으면 그것을 기록으로 잘 남겨두면 될 것입니다. 과거의 것이 현대에 필요 없을 수도 있듯이 현대의 것도 미래에는 무용지물일 수 있다는 사고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