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간판·간판장이⑥ 부산 유학, 신기술을 습득하다

  • 입력 2025.08.03 18:00
  • 수정 2025.08.03 21:35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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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충청도 대천에서 간판 일을 하다 왔다고 했능교? 그럼 아크릴 간판도 할 줄 알겠네요.

-아, 그러니께 페인트 간판 하나는 누구한테도 안 질 자신 있구먼유. 그란디 아크…릴이라는 것이 뭣인지 잘 모르겄는디유.

-페인트 간판 자신 있으면 마, 됐심니더. 계약 하입시더. 대천에서 월급 얼매 받었능교?

“그때가 1975년이었어요. 서울 다음으로 큰 도시가 부산 아닙니까. 가왕에 큰 바닥에 왔으니 나도 크게 놀자, 맘먹고는 대천 간판집에서 받던 월급을 두 배로 부풀려서 얘기를 했어요. 어, 그런데 간판 가게 주인이 그 곱절을 월급으로 주겠다는 거예요, 허허. 정확한 액수는 기억나지 않은데, 당시 일반 회사원 월급보다는 많은 액수였어요. 신이 났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강연은 부산에 눌러있을 생각은 아예 없었고, 사람들이 ‘아크릴 간판’이라고 부르는 그 간판의 제작 기술을 배우는 즉시로 대천으로 돌아갈 계산을 했다.

드디어 작업이 시작됐다. 이강연으로서는 ‘아크릴’이라는 낯선 소재를 가지고 선전물을 제작하는,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셈이다.

-그러니께 이 플라스틱 판자에다 글씨를 새겨갖고…그 담에는 어치케 오려내는 것이래유?

-허허허. 어지간히 궁금했든 모냥이네. 일단 종이에다가 가게의 상호를 글씨로 쓴 다음에, 색깔 있는 아크릴판에다 이렇게 딱 붙이는 기라.

-아, 그런 다음에 저기 있는 저 톱으로 글씨를 오려가지고…. 그란디, 속에 전깃불을 집어옇는 것은 것은 또 어치케….

-하얀 아크릴 틀을 별도로 파는 데가 있는 기라. 그 속에 형광등을 설치하면 되는 것이고….

“크기별로 성형이 돼 있는 아크릴 간판 틀을 파는 데가 있는데 그걸 구입해 오는 거예요. 거기다 미리 써둔 글자를 한 글자씩 붙이는 겁니다. 이게 말로 설명하기는 좀 어려운데….”

그러니까 속에 전등이 들어갈 수 있는 흰색 아크릴 틀은 크기별로 판매를 하는 곳이 있었기 때문에, 그걸 사다가 그 위에다 색깔 있는 아크릴판으로 만든 글자를 붙이는 방법이었다. 어쨌든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간판 글씨가 뚜렷하게 보이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이강연에게는 그 이상 신기할 수가 없었다.

-기왕에 배우기 시작한 것, 네온사인 만드는 방법하고 밧줄 타기도 좀 배우지 그래. 네온사인은 진공 상태의 유리관 속에다 여러 가지 기체를 주입한 다음에 전류를 방전시켜서 빛을 내는 원리로 작동하는 조명이고…간판쟁이한테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밧줄타기인데….

-아니구먼유. 지는 아크릴 간판 맹그는 법만 알면 되겄네유.

당시 충청도 대천에는 밧줄을 타고 올라가서 간판을 달 만큼 높은 건물이 없었고, 또한 번쩍거리는 네온사인을 설치할 만한 업소도 없었기 때문에, 그런 기술은 배울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강연은 밧줄을 탈 줄 모른다. 뒷날 높은 건물에 간판을 설치해야 하는 경우엔 별도로 인부를 부리고 있다고 말한다.

부산의 간판 공장에서 3개월여 만에 아크릴 간판 만드는 기술을 어느 정도 익혔다고 판단되자, 그는 지체없이 자신의 본거지인 대천으로 돌아왔다.

이강연은 대천에 도착하자마자, 온갖 구박을 받아가며 페인트 간판의 제작 기술을 배웠던 ‘뉴 선전사’로 찾아갔는데, 주인이 반색을 했다.

-어이구, 이게 누군겨? 강연이 아니라고! 그동안 어디서 뭣을 하다가 나타난 것이여?

-허허허, 그동안 안녕하셨시유?

예전의 천덕꾸러기가 아니었으므로 이강연은 고개를 제법 빳빳하게 세우고서 말했다.

-그러니께…쩌어그 먼 데로 유학을 갔다가 공부를 좀 많이 하고 왔지유.

“부산에서 돌아왔을 때는 대천 거리에 여기저기 2층집도 생기고, 제법 번듯한 상점들도 늘었더라고요. 그 ‘뉴 선전사’에도 일하는 종업원이 네 명이나 있었어요. 내가 부산에 가서 이러저러한 기술을 배워왔다고 설명을 했더니 주인이 내 팔을 덥석 잡더니 그러더라고요. 기술자들 중에서 최고 대우를 해줄 테니 함께 일하자고.”

역시 신기술은 남보다 앞서 배우고 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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