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와 TV에서 최수종씨가 공익광고를 한다. 참 듣기 좋다. 서로 돌보고 아끼는 모습과 함께 그들의 활동이 이 시대의 정의라고 그들이 안중근이고, 유관순이라고 한다. 깊게 동의한다. 안중근과 유관순이 살던 시대는 나라의 자주독립이 정의였고, 여러 가지 이유로 아무나 앞에 나서지 못할 때 목숨을 걸고 나섰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숙명처럼 받아들이기보다는 나 하나라도 뭐라도 한다면 독립의 길에 한걸음 다가가겠지라는 믿음을 가졌겠지 싶다. 그런 분들의 한걸음, 한걸음이 쌓여 오늘의 우리가 있지 않은가. 1980~1990년대는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는 것이, 21세기 초반엔 신자유주의와 싸우는 것이 정의였다고 생각된다. 지금은 어떠한가!
마른장마라고 호들갑을 떨던 것이 엊그제인데 물폭탄에 삶의 끝자락을 붙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2020년에는 54일간의 장마와 물폭탄으로 동네방네 하우스가 다 잠겼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이렇게 큰 비가 온 경험이 한동안 없었는지 많은 농민들이 당황했다. 여기는 고설재배가 많기에 시설들이 거의 망가졌다. 물이 빠지면서 물살에 이리 휘고 저리 휘고, 상토는 물을 먹어 교체시 사람의 힘이 많이 필요했다. 9월이면 정식에 들어가야 하는데, 당시 8월 초에 물난리를 만났으니 복구에 박차를 가했지만 워낙 많은 피해농가들이 있었기에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도 많았다. 그리고, 특별재난구역으로 지정되어 국가지원을 받아 여기저기 기반공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올해 7월에 또 물폭탄을 맞이했다. 이제 기후위기는 뉴스에서 보던 어떤 일이 아니라 실감과 위기감이 느껴지는 일이다. 가뭄으로 산불을 크게 경험한 뒤 마른장마, 예상이 쉽지 않은 물폭탄이 터지더니 높은 온도의 폭염까지, 이 작은 한반도는 매일 놀라움을 경험하고 있다. 그래도 학습효과인지 많은 안중근과 유관순들이 빠르게 복구 작업을 돕고 있다. 내 코가 석 자라고 나의 하우스도 침수되어 작물들이 고사돼 가는 것을 보는 상황이다 보니 나보다 피해가 큰 우리 회원들에게 가서 도움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마음이 불편하지만 어쩌랴.
그렇다면 이 시대의 정의는 뭘까 생각해 본다. 작년, 재작년 모두 기후 때문에 농사의 매뉴얼이 무용지물이 됐었다.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큰 문제인데 농촌이 이 지경이 되면 국민들의 먹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기후는 예상을 뒤엎으며 럭비공마냥 변해 가고 있고, 어떻게 해야 한다는 구호는 난무하지만 실제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변화는 미미하다. 내 주변엔 농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는 분들이 꽤 있다. 매년 ‘기후 때문에 망했어’ 하면서도 올해는 다시 잘 해보자 하면서 씨를 뿌리는 나 같은 빈농에게조차 이제 딴 길을 찾아 볼까하는 유혹이 찾아온다.
그래도 노력하고 있다. 탄소배출을 줄이는 방법을 연구하고, 친환경농법으로 가고자 하고, 생태농업을 실천하면서 말이다. 전남의 통계를 보면 탄소배출의 60% 가까이가 여수, 광양 산업단지에서 나온다. 기후위기의 상황에서 가장 피해를 많이 보는 농림축산어업인들은 탄소배출에서 6%를 차지하면서도 더 줄여보고자 작업장뿐 아니라 마을과 가정에서도 노력한다.
‘내 코가 석 자’라는 농민들이지만 하늘을 보고 땅을 보며 이 시대의 정의는 무엇인가 고민한다. 물론 개개인의 작은 실천도 중요하다. 물과 전기를 아끼고, 분리배출을 잘 하고 생태농업을 지향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복구의 전반과정과 생산물 유통의 과정들을 보면서 과연 우리가 기후위기를 극복해내고 기후평화를 맞이할 수 있을까 의심이 된다. 앞에서는 평화를 얘기하면서 뒤로는 무기를 만들어 파는 사람들로 세계평화가 요원한 것처럼, 기후위기 특수를 노리는 사람들로 인해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