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은] 쌀 부족 사태 속 농업정책 향방은

  • 입력 2025.07.20 18:00
  • 수정 2025.07.20 22:55
  • 기자명 정만철 농촌과 자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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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철 농촌과 자치연구소 소장
정만철 농촌과 자치연구소 소장

 

지난해부터 이어진 이례적 쌀 부족 사태와 그에 따른 가격 급등은 일본 농업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대한 과제로 부상했다. 식량안보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이 증폭되는 가운데, 지난 7월 20일 참의원 선거에서는 식량문제를 둘러싼 각 정당의 농정 공약이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부가 지난 4월에 각의에서 결정된 새로운 ‘식료·농업·농촌 기본계획’을 통해 식량 안전 보장과 생산 기반 강화를 천명한 가운데, 여야 각 당은 이번 선거에서 저마다의 해법을 제시하며 농심과 민심을 얻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각 정당의 주요 농정 공약을 살펴봄으로써 향후 일본 농정의 방향을 예상해 본다.

이시바 내각을 이끄는 자유민주당(자민당)과 연립 여당 파트너인 공명당은 지난 4월 확정된 ‘식료·농업·농촌 기본계획’을 농정의 중심축으로 삼아 현재의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구상이다. 우선 자민당은 농업 생산성 향상을 위해 기존의 농업 관련 예산과는 별도로 막대한 규모의 예산을 추가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최근 주목받는 쌀 문제에 대해서는 주식인 쌀의 안정적인 공급과 원활한 유통확보를 위해 사전 계약을 추진하고, 민·관 협력으로 종합적인 비축체계를 확립하며, 향후 안정적인 농가 경영을 위해 논 농업 정책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중산간지역 등지의 직접지불금 확충, 새로운 환경직불금 도입 등을 통해 농업·농촌 활성화 및 농업으로 인한 환경부하를 저감한다는 계획이다. 일본산 농산물 및 가공식품의 수출 확대를 위한 지원도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공명당은 자민당과 궤를 같이하면서 쌀 가격 안정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우선 쌀 생산을 늘리고, 비축미를 적절하게 활용함으로써 쌀 가격 안정을 도모하고, 유통 실태 조사와 시장에서의 적절한 유통이 이뤄지도록 정부의 감시·감독 기능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대량의 비축미 방출과 쌀 재배면적의 증가로 2025년산 쌀 가격이 폭락하면 정부가 비축미 수매를 늘려 농가를 보호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레이와 쌀 소동’으로 드러난 그동안의 일본 농정 실패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책을 제시했다. 그동안 자민당 정권이 추진해 온 농업경쟁력 강화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농업정책을 비판하며, ‘다양한 농업인의 경영 요구에 맞는 섬세한 지원책’을 강구함으로써 농업 경영의 안정화를 도모한다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핵심 공약은 과거 민주당 정권 시절 도입했던 ‘농업인 호별소득보상제도’를 발전시킨 ‘식농직불제도’의 도입이다. 식농직불제도는 식량과 농지를 보전하기 위해 단순히 생산량에 연동하는 보조금이 아니라, 농지 면적과 환경 보전 노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농가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식농직불제를 시행하려면 1조2000억엔(약 10조원)의 예산이 소요되는데 기존 농림수산 예산에서 지원하는 게 아니라 이를 위한 추가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또한 새롭게 농업에 종사하는 창업농(귀농) 지원 예산을 10배 늘리고, 대상 연령도 49세 이하에서 65세 이하로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다른 야당들도 각각 농정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일본유신회는 농업 분야의 과감한 규제 개혁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입장이다. 농협 개혁에도 적극적이어서 농협법 개정을 통해 농민을 위한 농협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한다. 쌀 국내 생산량을 1.5배 늘리고, MMA 물량 이외의 수입쌀에 대해서는 한시적으로 관세를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공산당은 현재의 식량 위기가 신자유주의적 농정의 필연적 결과라고 규정하며, 자민당의 농정 실패를 지적한다. 쌀값 폭등의 직접적 원인으로 정부의 생산조정 정책과 비축미 감축을 지목하고, 생산비와 농가 소득을 보장하는 가격보장제도의 법제화를 강력히 촉구했다. 구체적으로 쌀 60kg당 농가수취가격을 2만엔 이상으로 보장하고, 정부 비축미를 200만톤 이상으로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농정에 대한 정부의 책임 강화를 약속했다.

이 밖에도 국민민주당은 논 10a 당 1만5000엔의 ‘식량안전보장기초직불제’와 농업의 ‘다원적기능직불제도’ 도입, ‘중산간지역 등 직접지불제도’ 확충 등 직불제 재구축에 관한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레이와신센구미(令和新選組)는 농림수산 예산을 현재의 2배인 5조엔으로 증액하고, 국내 식량 자급률을 50% 이상으로 끌어 올린다는 방침이다. 사민당은 쌀값 안정과 농가 소득 보상 실현, 식량 자급률 50% 즉시 달성을 핵심 공약으로 유기농업 확대와 학교급식 전면 무상화 등을 약속하고 있다.

작금의 쌀 부족 사태는 오랫동안 일본 농정이 안고 있던 구조적 문제들이 터져 나온 결과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기후변화의 일상화와 국제 공급망의 불안정성이 가중되는 시대, 식량안보 문제는 더 이상 농업인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국민의 생존과 직결된 과제다. 이번 선거가 쌀 문제를 비롯한 일본 농정 개혁의 향방을 결정짓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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