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초, 상하이에서부터 울란바토르까지 대륙종단 열차 여행을 했다. 시골로 시집와서 고생한 아내를 위할 겸 딸아이의 호연지기를 키워줄 겸 해서이다. 농민이 농번기에 짬을 내어 여행을 한다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마침 폭설 피해로 나온 보험금이 있어 일을 저질렀다. 비가림 시설을 복구하기 전에 농사에 찌든 마음을 복구하기로 한 것이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포도 농사를 계속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
무너진 포도 자리에 키위와 패션후르츠를 심었다. 키위는 포도보다 내한성이 약해서 위험성이 있다. 패션후르츠는 키위가 성목이 되기 전 빈 공간이 많아 식재했다. 열대과일 패션후르츠는 다년생으로 1년에 두 번 착과하는데, 우리나라 노지에서는 단년작이다. 다년생 고추가 우리나라에서는 일년생이 되듯 말이다. 아무래도 송산포도 만한 소득작물은 없는데, 폭설로 무너진 영농의지는 자꾸 외도를 하려 든다.
중국은 대단했다. 상하이와 견줄만한 도시가 한국에 없는 듯하다. 상하이 지하도에서 과일을 팔고 있는 한 농민이 본인 QR코드로 손쉽게 결제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베이징은 깨끗하고 공기도 예전 같지 않다. 노동절을 끼고 간 시점이라 중국 인파의 생동감은 폭설로 무너진 농심과는 너무나 대비됐다. 몽골로 넘어가기 직전 들른 중국 변방도시 후허하오터시는 변방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지하철도 잘 되어있는 대도시였다.
28년 전 중국을 처음 접할 시 중국의 경제력과 잠재성, 대륙적 기질에 기가 죽은 적이 있다. 1인당 GDP를 논해서 중국보다 잘 사는 듯하지만, 국가 전체 경제 규모는 비교할 수 없다. 7시간 가는 만원 버스 안에서 꼿꼿이 서가는 중국인의 대륙적 기질에 주눅이 든 옛 기억이 소환된다. 서울에서 수원 정도 가는 마음가짐 같았다. 중국 변방 지역으로 갈수록 기가 찬 것은 재생에너지 단지였다. 돌산 전체를 태양광 패널로 덮었다. 고비사막에 끝이 보이지 않게 두 줄로 풍력발전기가 돈다. 전 세계 재생에너지의 절반가량이 중국에 있다 한다. 뭐 하나 한국이 중국보다 낫다는 것을 찾기 어렵다.
상하이 임시정부를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한 여정이었다. 여행하는 내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물음은 ‘독립운동가들은 중국에서 어떤 느낌이었을까’였다. 만주벌판과 중국 대륙에서 풍찬노숙할 때, 상하이에서 일본의 눈을 피해 양쯔강을 타고 올라가 내륙 충칭으로 본거지를 옮길 때, 땅을 파서 호수를 만들고 판 흙으로 산을 만든 이화원을 볼 때, 끝없이 펼쳐진 만리장성을 마주했을 때 감정은 어떠했을까? 중국과 비교할 수 없이 열악했던 조선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독립운동가들은 어떤 생각으로 조국의 독립을 상상했을까?
백범 김구 선생은 문화국가를 상상했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살길은 문화강국이 되는 것 외에는 견줄 대상이 없음을 일찍이 간파했던 것이다. 정신의 탁월함, 문화의 탁월함이 주변 열강들 속에서 품격있게 살아가는 길이라고 본 것이다. 백범의 문화한국론은 열강의 틈바구니에서의 자구책으로 읽히기도 한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나 의열단의 혁혁한 공은 중국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고, 이는 중국 국민당이 임시정부를 돕는 명분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공동의 적 일본을 향한 전략적 접근이 컸겠지만, 문화적으로 탁월한 길, 가치와 사상에서 탁월한 길이 중국의 지지를 공고히 하는 명분이 된다는 것을 독립운동가들이 몸소 체감하며 문화한국론이 나왔으리라 본다.
우리 선조들이 중국대륙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지녔던 우리 민족 최고의 전략 전술인 ‘문화강국 수립’은 지금도 적효한 전략 전술이다. 몽골에서 말을 타고 들판을 가로질러 강을 건너고 산을 넘는 짧은 체험을 하며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가 떠올랐다. 이들이 조국 독립의 핵심키워드를 문화국가 수립에 두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화두가 여행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문화한국은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필자는 문화농업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살률 십수년째 1위인 우울사회, 수년째 출생률 세계 꼴찌인 소멸사회, 비만의 사회적 비용이 11조원이 넘는 고탄소 사회에서 농업·농촌·농민이 한국민을 먹이고 재우고 보듬는 포용적 문화주의 농업이 절실하다. 디지털 우울 사회, 기후위기 우울사회를 넘어 문화한국으로 가는 모성적 토대는 포용적 문화농업이다.
도시농업이든, 치유농업이든, 교육농업이든, 사회적 농업이든 모두가 문화농업이다. 놀이농업, 이야기농업, 예술농업, 관상농업, 생태농업, 경관농업(정원농업), 그린투어리즘(생태관광) 등 문화농업은 그 형태와 깊이가 무궁무진하다. 농정을 이끄는 공무원들이 ‘돈 되는 생산주의 농업’에만 전념하지 말고 국민정신건강을 위해, 건전한 문화생산을 위해 문화농업을 견지하면 좋겠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이러한 문화농업이야말로 거대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문화농업으로 문화한국을 견인하는 것이 이 시대 농민의 숙명인지 모른다.
지역 소멸 위기 속에서 농촌이 문화의 터전으로 청년들을 유혹하지 않고서 과연 저 넓은 농촌을 채울 수 있을까? 앞선 칼럼에서도 얘기했지만, 농촌 노인의 아날로그적 삶을 청년들로 하여금 아카이빙하여 간접 경험하게 해야 한다. 청년기본소득을 지원해서라도 이 작업은 반드시 주진해야 한다. 전기 없는 시대에 태어나 AI 시대까지 살아낸 유일한 인류인 농촌 노인들의 문화유산을 기록해내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농촌 노인을 단순한 돌봄 대상이 아닌 문화생산의 주체로 재인식하고 초대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디지털 르네상스의 서막이며, 디지털 문화강국의 핵심 콘텐츠가 될 것이다.
콘텐츠 없는 AI 기반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이야기 없는 디지털 환경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대한민국의 차별적 AI 기반은 농어촌 아날로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이야기가 세상을 구원한다. 이야기 독립선언을 해야 할 때이며, 그 바탕은 농촌 노인의 삶의 이야기여야 한다. 서사가 없는 민족이 인류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한국만의 이야기 독립선언만이 AI 시대에 문화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길이다. 문화한국은 바로 문화농업으로 살찌워야 한다.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유학하며 한민족 고유의 심성 또는 사상을 ‘풍류도(風流道)’로 규정한 것은, 독립운동가들의 민족중흥의 키워드로 문화국가로 귀결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풍류농업, 문화농업은 가족과 함께 대륙종단 열차 여행을 하며 딸에게도 계속 이어가고 싶은 한 소농의 바람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김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