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 지리산엔 기껏해야 벚꽃 정도 피었거나 땅을 기는 식물들이 꽃망울을 터뜨릴 시기에 청도로 오일장을 만나러 간다. 지나는 길에 세상의 모든 초록을 품은 산들과 세상의 모든 봄꽃들로 화장을 한 거리를 지나며 새삼 봄을 느낀다. 그중 달리는 차를 세우고 싶을 만큼 눈을 끄는 꽃이 있다. 쳐다보면 나른하기 이를 데 없는 벚꽃과는 달리 연두로 시작되는 산빛과 너무 잘 어우러지는 분홍의 복숭아꽃이 바로 그 꽃이다. 반시로 유명한 청도를 기억하고 있는데 곳곳마다 펼쳐지는 복숭아밭들을 보니 청도반시의 시절은 가고 청도복숭아의 시대가 왔나보다 하면서 지나간다.
군 단위의 오일장은 대개 적은 인구 때문에 작게 서는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그중 몇몇 오일장은 웬만한 시보다 볼거리가 많다. 청도오일장은 아는 만큼 보이는 제법 재미난 오일장이다. 청도의 어지간한 민가라면 담벼락 안에도 몇 그루씩 있는 감나무, 한재면의 특화된 미나리, 화양읍의 복숭아 등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 소싸움으로 유명한 곳이니 시장 안에 소를 주제한 한 국밥집도 보인다. 거리가 형성될 만큼 추어탕도 유명하다. 물이 좋은 탓일 게다.
청도의 추어탕은 추어(미꾸라지)만 쓰지 않는다. 추어 없이 민물고기만 넣고 끓인 경남의 어탕과도 같은 음식도 추어탕의 이름을 쓴다. 추어를 한 번 끓여 건져 으깨면서 체에 몇 차례 걸러 만드는 맑은 국물의 음식이다. 시래기나 배추를 넣고 시원하게 끓이는데 그 흔한 들깨도 쓰지 않는다. 전국 어디서든 그러는 것처럼 제피가루를 쓰는데 취향에 따라 넣어 먹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넣고 끓여 나온다. 진주의 어탕과 비슷하다 느껴지는 맛이다. 그래서 그런지 오일장에는 추어도 있지만 빠가사리나 꺽지 등의 민물고기가 많이 나와 있다. 민물고기만으로 여름에 끓여 먹던 천렵국 생각이 나서 사고 싶었지만 참는다.
납작하게 생겼다며 반시로 불리는 청도감은 씨가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곶감이나 반건조로 해서도 좋지만 폭 익은 반시의 꼭지를 떼어낸 후 반을 갈라 입에 대고 손으로 누르면서 쪽 빨아 먹는 맛이 참 좋다. 지금은 봄이라, 연둣빛으로 단단한 나무껍질을 뚫고 나오는 어린아이 손 같은 입만 보았지만 가을에 다시 오고 싶다.
미나리로 유명한 곳이지만 시장에 미나리가 흔하지는 않다. 이맘때 어느 장에서나 만날 수 있는 봄나물들은 넘쳐나는데 정작 돌미나리 몇 바구니를 만난 것을 빼면 미나리 만나기는 쉽지 않다. 마트에서나 봄직한 비닐 포장된 청도미나리나 한재미나리가 있지만 산지다운 풍성함은 보이지 않는다. 한재면으로 가봐야 할 것 같다.
노지 참취가 보여서 한 바구니 산다. 하우스에서 재배한 취나물과는 달리 밑동이 키다리나물이나 머위 줄기처럼 붉다. 향이 좋고 맛이 진한 미나리에서도 보이는 붉은 색이다. 울릉도취라고 불리는 부지갱이도 보인다. 부지갱이의 부드럽고 순한 단맛과 고소함과는 달리 노지 참취는 향도 맛도 다 센 녀석이다. 때를 놓치기 쉬운 화살나무 어린순도 나왔다.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사고 싶지 않은 두릅나무순도 있다. 쓴맛으로 여전히 나를 유혹하는 고들빼기와 씀바귀를 안 사고 지나치기는 쉽지 않다.
멍게가 한 자리 차지하고 있고, 경북지역에서 쉽게 만나지는 상어고기도 있다. 여름대파가 될 대파모종(흔히 실파라 부르는)과 각종 씨앗들과 모종들, 묘목들도 자꾸 발을 떼지 못하게 한다. 햇양파가 무더기로 나오고 노지에서 수확한 노지부추도 나왔다.
건조한 봄바람에 시들고 마르는 나물들을 안타까워하시다 ‘어이’ 하고 소리치며 사가라고 하시니 한 바구니 사고야 자리를 뜬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장에 가면 할머니들과 눈 마주치지 말라고 하던 말이 생각나 웃는다. 장을 벗어나 한재면으로 미나리를 만나러 간다. 벚꽃이 비처럼 내리고 멀리 도화가 만발해 유혹한다. 청도에 머물며 천천히 물들고 싶은 봄이다.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지리산 뱀사골 인근의 맛있는 부엌에서 제철음식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제철음식학교에서 봄이면 앞마당에 장을 담그고 자연의 속도로 나는 재료들로 김치를 담그며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해 50여 가지의 밥을 한다. 쉽게 구하는 재료들로 빠르고 건강하게 밥상을 차리는 쉬운 조리법을 교육하고 있다. 쉽게 장 담그는 방법을 기록한 ‘장 나와라 뚝딱’, 밥을 지으며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밥 짓는 법과 함께 기록한 ‘밥을 짓다, 사람을 만나다’ 등의 저서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