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중에 수도권 일극집중 강화? 전면 재검토돼야

  • 입력 2025.03.30 18:00
  • 수정 2025.03.30 18:12
  • 기자명 하승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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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대표. 변호사 및 공인회계사. 19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다. 현재는 농촌·농업·농민을 옹호하는 공익법률단체인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예산감시운동 단체인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승수 대표. 변호사 및 공인회계사. 19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다. 현재는 농촌·농업·농민을 옹호하는 공익법률단체인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예산감시운동 단체인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12.3 내란 사태 이후 국가가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기득권 관료집단은 문제가 많은 사업들을 강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면, 논란이 많은 정책들은 추진을 중단하고, 정치 상황이 정리된 후에 재검토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득권 관료집단은 마치 권력의 공백 상태를 이용하려는 듯이 정책을 강행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벼 재배면적 조정을 강행하고 있다. 왜 8만ha의 벼 재배면적을 감축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도 제대로 안 되는 상황인데, 지방자치단체들을 동원해서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사실상 페널티를 주겠다는 것이다. 말로만 ‘자율’이지 실제로는 반강제나 다름없다.

환경부는 전국 곳곳에서 댐 건설을 밀어붙여서 논란이 되고 있다. 타당성과 필요성이 의심스러운 댐도 강행하거나 계속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은 곳곳에서 초고압 송전선을 건설하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전국 곳곳의 농촌·산촌에서 송전탑에 반대하는 주민들과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대부분 수도권으로 전력을 보내기 위해 추진되는 송전선이다. 그리고 지역주민들의 의사는 무시하고 돈으로 주민 갈등을 부추기는 행태도 여전하다.

전기가 생산되는 곳에 공장을 세워야 하는데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초고압 송전선의 출발점은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뿐만이 아니다. 풍력발전소나 태양광발전소도 있다. 어떤 발전소에서 출발하는 송전선이든 초고압 송전선의 목적지는 수도권이다. 특히 용인에 추진한다는 반도체 산업단지가 초고압 송전선 문제를 낳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반도체는 기본적으로 전기와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사업이다. 따라서 반도체 공장이 필요하다면 전기와 물이 있는 곳에 건설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그러면 전기와 물을 조달하기 위한 경제적·사회적·환경적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이다. 전기도 물도 없는 경기도 용인에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전기와 물을 조달하기 위해 무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전기가 없으니 비수도권에서 장거리 초고압 송전선을 건설해서 전기를 끌어와야 하고, 물이 없으니 강원도에 댐을 건설해서 물을 끌어오려고 하는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윤석열정권이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를 발표하면서 전기와 물에 대한 대책도 수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먼저 발표해놓고 나중에 대책을 세우는 식이다. 그야말로 ‘주먹구구’ 다.

그런데 반도체 국가산업단지에만 원전 10기 분량에 해당하는 10GW의 전력이 필요하다. 용인에 LNG 발전소 6개를 세운다고 하지만, 그것을 다 세운다고 해도 3GW만 조달된다. 게다가 이미 건설하고 있는 반도체 일반산업단지도 용인에 있다. 여기에 소요되는 전력도 필요하다. 그러니 모자라는 전기를 수도권 바깥에서 끌어오겠다고 초고압 송전선들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또 RE100(재생가능에너지 전기 100%)도 해야 하니, 서해안의 풍력발전과 태양광발전에서 생산된 전기를 경기도 용인까지 끌고 가겠다는 발상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천문학적인 경제적·사회적·환경적 비용이 들어가는 방식이다. 막대한 양의 전력을 장거리 초고압 송전선을 건설해서 끌고 가려면, 수조원 이상의 엄청난 송전선 건설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런 비용을 전부 반도체 사업자가 부담하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사업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송전선 건설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일부 부담해주겠다고 한다. 결국 국민이 송전선 건설비용을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전력과 관련해서 지산지소의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특히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는 그 지역에서 소비되도록 해야 한다. 동남해안에서 생산한 전기는 영남권에서 사용하고, 서남해안에서 생산한 전기는 호남권에서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반도체 공장이든 데이터센터든 전기를 많이 필요로 하는 시설은 전기를 생산하는 곳 가까이에 들어서게 해야 한다. 그것이 지역균형발전에도 부합한다. 지난해 2월 7일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 `신안해상풍력 송전선로 반대 영광군민 결의대회'에서 영광군의회 송전선로특위 의원들과 읍면대책위 주민대표 150여명이 군민 의견을 무시한 영광군 송전선로 계획의 전면 백지화를 김영록 지사에게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전력과 관련해서 지산지소의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특히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는 그 지역에서 소비되도록 해야 한다. 동남해안에서 생산한 전기는 영남권에서 사용하고, 서남해안에서 생산한 전기는 호남권에서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반도체 공장이든 데이터센터든 전기를 많이 필요로 하는 시설은 전기를 생산하는 곳 가까이에 들어서게 해야 한다. 그것이 지역균형발전에도 부합한다. 지난해 2월 7일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 `신안해상풍력 송전선로 반대 영광군민 결의대회'에서 영광군의회 송전선로특위 의원들과 읍면대책위 주민대표 150여명이 군민 의견을 무시한 영광군 송전선로 계획의 전면 백지화를 김영록 지사에게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비수도권, 수도권의 식민지?

뿐만이 아니다. 이런 정책은 비수도권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지금도 송전탑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는 비수도권 지역의 농촌·산촌에 더 많은 송전탑들이 들어설 수밖에 없다. 인구가 많은 일부 지역은 지중화를 할 수도 있지만, 지중화에도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게다가 한전은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는 지중화를 거부해 왔기 때문에, 앞으로 송전선 경과 지역주민들과의 심각한 갈등이 예상된다.

송전선이 한 가닥만 건설되는 것도 아니다. 워낙 많은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야 하다 보니 여러 가닥의 신규 초고압 송전선이 필요해진다. 그로 인한 사회적·환경적 비용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전력계통의 안정성에 대해서도 우려가 크다. 대한민국처럼 수도권 일극 집중이 심한 국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수도권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송전망은 계속 복잡해지고 있다. 이런 식의 송전망은 전력계통의 안정성을 저해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한민국은 군사적 긴장이 높은 곳이고, 기후위기로 인한 산불과 강력한 태풍 등 재해 위험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여러 가닥의 초고압 송전선들에 동시에 문제가 생기면 전력계통이 붕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블랙아웃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비수도권에서 전력을 생산해서 수도권으로 송전하는 방식은 효율성이나 지속가능성, 안전성 등의 측면에서 타당성이 없다. 그런데도 이런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비수도권을 사실상 수도권 도시지역의 식민지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비수도권이 수도권에 전력과 먹거리와 물은 공급해주고, 수도권에서 나오는 각종 폐기물은 받아들이라는 식의 정책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그리고 일자리가 생기는 공장은 수도권에 건설해서 비수도권의 인구를 빨아들이면서, 비수도권에는 타당성도 의심스러운 토건사업이나 던져주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가.

강원 홍천군 남면 신대리 삼은마을 주위로 765kv 송전선로가 지나고 있다. 거대한 송전탑과 가장 가까운 주택은 50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았다. 한승호 기자
강원 홍천군 남면 신대리 삼은마을 주위로 765kv 송전선로가 지나고 있다. 거대한 송전탑과 가장 가까운 주택은 50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았다. 한승호 기자

전기도 지산지소가 필요

물론 변화의 조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분산 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제정돼 ‘에너지를 사용하는 지역 인근에서 공급하는 에너지’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개념 정도가 마련되기는 했다. 그러나 기존의 수도권 일극집중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분산 에너지를 활성화시킨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전력시스템의 근본적인 전환이다. 그리고 파격적인 지역분산 정책이다.

그 출발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를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하는 것이다. 어차피 공급할 전력도, 물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반도체 산업의 상황이 당장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있는 상황인지도 점검해봐야 한다. 그렇다면 무리하게 사업을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재검토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전력과 관련해서도 지산지소의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특히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는 그 지역에서 소비되도록 해야 한다. 동남해안에서 생산한 전기는 영남권에서 사용하고, 서남해안에서 생산한 전기는 호남권에서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반도체 공장이든 데이터센터든 전기를 많이 필요로 하는 시설은 전기를 생산하는 곳 가까이에 들어서게 해야 한다. 그것이 지역균형발전에도 부합한다.

수도권 일극집중으로 피해 입는 지역들의 연대 필요

흔히 수도권으로 분류되는 지역이라고 해서 모두 수혜를 받는 것도 아니다. 경기도 안성의 경우에는 용인으로 가는 초고압 송전선이 지나가는 지역이다. 안성의 농민들은 용인의 반도체 공장에서 나오는 오·폐수 문제를 우려하고 있다. 수도권이라고 해도 모두 똑같은 것도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전라북도 따로, 강원도 따로 볼 문제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현재와 같은 수도권 일극집중 시스템에서 피해를 보는 모든 주체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이미 초고압 송전선과 관련해서는 여러 지역들의 연대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런 연대를 통해서 국가적인 정책의 방향을 전환시켜야 한다.

전력 문제만이 아니다. 벼 재배면적 조정, 댐 건설 등의 정책들도 전면 재검토되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가 미뤄지면서 대한민국의 정치상황이 안개 속에 빠져 있지만, 곧 조기대선 등 정치일정이 정리될 것으로 본다.

그렇게 되면 내란의 와중에도 기득권 관료집단이 밀어붙이고 있는 정책들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다가오는 전국적인 선거들에서, 수도권 일극집중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들에 대해 활발하게 제안하고 토론해 나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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