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불법이 아니라 우리 농가손맛이우다

  • 입력 2025.03.23 18:00
  • 수정 2025.03.23 18:25
  • 기자명 강나루 자연그대로농민장터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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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루 자연그대로농민장터 운영위원장
강나루 자연그대로농민장터 운영위원장

기억하고 싶은 맛은 우리 안에 오래 남는다. 그리고 그 기억은 힘이 세다.

나와 내 가족이 좋아하는 씨앗을 심어 나도 먹고, 나눠 먹고 그런 즐거움을 아는 토종 농민들이 있다.

대물림해 온 제주모멀을 망사에 넣고 문지른 물을 끓여서 묵을 쑨다. 가루 내어 조베기 만들고, 쌀과 섞어 방앗간에서 떡국떡을 뽑는다. 알이 작고 다양하게 쪽이 갈리는 풋마농은 매운 맛과 향이 무척 강해서 장아찌를 담가 먹고 저장성이 좋다.

빌레밭에 세우리도 김치나 장아찌를 담는다. 꼬투리가 더덕더덕 붙어 더덕깨, 덧부지깨, 알이 굵고 실한 만생종 80일깨로 참기름을 짜면 양이 많고 맛도 묵직하다. 번식력이 유독 강해서 따로 씨를 안 받아도 해마다 잘 번져 자라는 갯노물은 어릴 때도 맵고 아린 맛이 강한데 오히려 그것을 살려 항아리에 끓인 소금물을 부어 숨을 죽이고 이튿날 바로 물김치를 만들면 코가 뻥 뚫리게 하는 그 맛이 일품이다.

갯노물도 유채도 기름을 짠다. 비대죽은 알곡을 털어 수수팥떡을 만드는데 남은 대를 엮으면 빗자루가 된다. 쥐눈이콩보다는 크고 서리태보다는 작은 약콩으로 오일장에서 뻥튀기를 해온다. 일년에 세 번 파종하고 수확하는 세불콩과 두 번 파종, 수확하는 두불콩은 풋콩일때 밥에 넣지만 떡이나 술빵을 만들어 고명으로도 잘 올린다. 세모시 삶은 잎도 빻아서 떡 만들 때 넣거나 말려서 차로 마신다.

발바닥 모양을 닮은 씨앗, 작은 조롱박은 저녁에 피었다가 아침에 지는 꽃이 희고 예쁜데 가을이 되면 얇게 썰어 말려서 박 고지를 만든다. 반대로 아침에 잎이 벌어지고 밤에는 모아지는 결명자는 생으로 끓이면 붉은 홍차색이 나는데 타지 않게 후라이팬에 살짝만 볶아서 차로 마신다. 민들레와 둥굴레 뿌리도 썰어 말려서 차가 된다. 쉽게 물러지는 먹골참외는 오히려 풋열매일때 반찬해 먹는다. 당배추, 쌍뚜러기라고도 부르는 쌍노물은 다소 거칠고 벌어지는 포기 잎을 그냥도 먹지만 겉절이를 담는다.

유잎도 김치나 장아찌를 만들어 먹고, 열매는 기름을 짜거나 가루내어 고소한 죽을 쑨다. 제주에서 보리 수확이 끝나고 장마철이 될 때면 보리를 볶고 갈아서 개역 만들어 먹는다. 노란개발시리조를 찰조라 하고, 제주어로 모이다라고 해서 모인조라고도 하는데 주로 잡곡에 먹으나 오메기떡을 빚기도 한다. 갑이 깊은 호박으로 즙을 짠다. 보리보다 껍질이 연해 도정 안 해도 괜찮은 통밀로 밀가루를 만든다. 푸른빛에 검정 얼룩이 있는 얼룩이 콩은 크기가 비교적 크고 둥글어 된장을 담는다. 8월배도 콩알이 잘 으깨어져 메주 쑤어 된장을 만드는데 좋고, 고소해서 두부를 만든다. 제주 장콩으로 유명한 푸른독새기콩도 두부 만들고, 방앗간에서 날콩가루를 장만해 두고 콩국해 먹는다.

쌍노물, 구억배추, 청방배추 등에 수비초, 붕어초, 칠성초 등 다양한 재래종 고춧가루로 만든 김치들. 야생종 제피 장아찌, 푸른독새기날콩가루. 모두 농(農)에서 식(食)으로 연결된 문화이다. 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허가 없는 농가공품이 모두 식품위생법 위반이라며 불법 취급을 당한다. 토종은 씨앗으로만 대를 이어갈 수 없다. 씨를 심고 가꿔서 그 작물에 적절한 음식을 만들고 널리 나눠야만 그 맛을 알게 되고 다시 그 기억을 찾는 이들로 인하여 그 씨앗도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적절한 농민 주도의 전통적 지역 먹거리 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은 중요하다. 또한 토종 작물은 특성상 쉽게 물러져 원물로 유통이 어렵거나, 일정 수준 이상의 가공이 가능하기엔 현재 원물 수급량이 너무 불안정하다거나 하는 약점이 있다. 세세히 알고 보면 농민의 자본력이나 가공센터 생산 시설 문제 이전에 작물 그 자체로서 한계 지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소규모 농가공 활성화를 위한 현행 식품제조 규제 완화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농민들이 지금 바로 시도할 수 있는 대안적 실천에 대한 관심도 매우 필요하다.

국가 인증 여부를 떠나 3무(무제초제, 무화학농약, 무화학비료) 재배를 최소한의 원칙으로 농사짓는 농민들이 모인 제주도 ‘자연그대로 농민장터’에서는 모든 무허가 농가공품을 ‘물물교환’하는 방식으로 안내하고 있다. 장터 농민들의 가공 먹거리 생산을 지속하고, 그 권리를 존중하기 위해 고민한 대응책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농민들이 직접 나서서 대안을 실천하는 제주 농민장터 공동체에서는 지금 우리 지역의 답답한 현실에서 뭐라도 시도해 보고자 목소리를 내는 농민들과 그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들이 매주 토요일마다 직접 만나서 대화하며 공감을 나누고 있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상호 관계망으로 믿음과 신뢰가 형성되면 불특정 소비자 조직의 위탁 가공도 현실적인 대책 마련으로 곧 시도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질 수 있지 않을까. 씨앗 갈무리하는 정성까지 들여가며 토종을 지켜나가는 농민들의 농가 살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진 않을까. 이러한 대안 시장으로 생태농업이 지속되고 결국 모두의 생태적 삶의 보금자리가 되는 것 아닐까. 불법이 아니라 농가손맛이우다! 이번주도 농민들이 모여 당당히 목소리를 낸다.

우리는 그렇게 희망의 씨앗을 품고 매주마다 농민장터를 열었고 어느덧 개장 301회를 맞이한다. 각 지역마다 대대로 이어져 온 농가의 손맛과 대를 이어가는 씨앗들이 더 이상 사라지기 이전에 더 널리 더 오래 지속되어질 수 있기를. 여기 제주 ‘자연그대로 농민장터’ 현장의 사례가 생태농업을 실천하는 농민들의 대안 시장이자 독립 시장으로서 무엇이든 이로운 역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떵어떵 허여도 집구석에 옛날 씨 모당 나두주. 나나 놈이나 옛날 농사 거추룩 지으멍 살민 친환경이고 토종이랜 골을 필요가 없쥬. 이추룩 고생하멍 초지는 거 보난 아쉽다 아쉬워(故 강도화 여성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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