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 계약직 여성 노동자는 왜 사과를 따먹었을까

[인터뷰]  <그녀는 왜 사과를 따먹었을까> 김예랑 영화감독

  • 입력 2025.02.09 18:00
  • 수정 2025.02.09 19:35
  • 기자명 강선일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영화 '그녀는 왜 사과를 따먹었을까' 연출자 김예랑 감독이 모처럼 농협중앙회 앞에 섰다.
영화 '그녀는 왜 사과를 따먹었을까' 연출자 김예랑 감독이 모처럼 농협중앙회 앞에 섰다.
영화 '그녀는 왜 사과를 따먹었을까' 연출자 김예랑 감독이 본인이 한때 계약직 노동자로 근무했던 농협중앙회 본관을 바라보고 있다.
영화 '그녀는 왜 사과를 따먹었을까' 연출자 김예랑 감독이 본인이 한때 계약직 노동자로 근무했던 농협중앙회 본관을 바라보고 있다.

영화를 만들며 살고 싶다는 꿈. 그 꿈은 하루아침에 실현 가능한 꿈은 아니었다. 그는 꿈의 실현에 앞서 일단 직장을 다니고자 했다. 그가 가고자 한 곳은 농협중앙회였다. 이곳이라면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고, 이후 이곳을 그만두면 영화 작업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2020년 농협중앙회에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입사 뒤에도 ‘언젠가는 농협중앙회 정규직이 되리라’는 기대를 안고 농협중앙회 입사 준비를 했다.

그러나 그는 농협중앙회에서 ‘계약직 여성 노동자’로서 적지 않은 생채기를 입었다. 불합리한 순간을 하루하루 목도하며, 그는 잠시 한켠에 치워놨던 ‘영화감독의 꿈’을 예상보다 훨씬 일찍, 의도치 않게 펼치기 시작했다. 농협중앙회 내 계약직 여성 노동자가 경험한 차별 및 불합리한 상황을 단편영화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는 그때부터 틈날 때마다 카메라를 슬쩍 꺼냈다.

농협중앙회 정규직 입사 도전은 실패했다. 그는 미련 없이 농협중앙회 밖으로 나왔다. 농협중앙회 앞마당에서 자라던 사과나무의 사과를 따먹고서. 그리고 그가 몸담은 기간 동안 굴레처럼 작용했던, 여성 계약직 노동자 전용 유니폼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면서.

농협 노동자 출신 영화인 김예랑 감독의 독립영화 <그녀는 왜 사과를 따먹었을까>(2024)는 본인이 겪은 이상과 같은 이야기를 약 30분짜리 영상에 담은 결과물이다. <그녀는 왜 사과를 따먹었을까>는 2020~2021년 김 감독이 농협중앙회에서 근무하던 당시 겪었던 차별적 상황에 대한 증언을 담담하게 담은 작품이다. 설연휴 직전이던 지난달 20일, 김 감독의 예전 직장인 농협중앙회 인근에서 그를 만났다.

영화에서 언급한 ‘차별적 상황’은 무엇일까? 김 감독은 영화 내내 ‘여성 계약직 노동자 전용 유니폼’을 착용한 채 근무했다. 같은 계약직 노동자여도 남성은 착용하지 않아도 됐고 오직 여성만 착용했다. 농협중앙회의 남성 상사들은 김 감독 등 여성 계약직 노동자들의 복장을 ‘단속’했다. 김 감독은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유니폼을 1년 이상 입다 보면 옷이 해지기도 했고, 장시간 입다 보면 굉장히 불편하기도 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 (유니폼과) 비슷한 디자인의 더 편한 바지로 바꿔 입고 오기도 했다. 그런데 하루는 엘리베이터에 같이 탔던 남성 상사가 뒤에 서 있다가 앞에 있던 날 부르며 ‘너 왜 그거(바지) 바꿔 입었어?’라고 지적한 적이 있었다. 그 기억이 지금도 굉장히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차별적 상황은 일상에 만연했다. 농협중앙회 직원 명단이 포함된 채 이뤄지는 직원 대상 공지 시 계약직 노동자의 이름은 ‘계약직’이란 직접적 명시가 이뤄진 채 목록 맨 밑바닥을 차지했던 기억, 태블릿 PC가 딱히 필요 없긴 했지만 그럼에도 정규직에게만 태블릿 PC가 지급되는 걸 목격하며 괜히 서러웠던 기억, 손님 접대용 커피 심부름 및 설거지, 농협 임원 선물용으로 받은 대형 화분에 물 주기 등의 일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김 감독과 계약직 여성노동자들의 업무가 됐던 기억 등이다.

계약직 노동자로서 가장 불합리하다고 느꼈던 순간 중 하나는, 자신이 맡은 업무가 입사 6개월 만에 갑작스레 바뀐 경험이었다.

“입사 당시 사보 제작 및 SNS(사회관계망서비스) 홍보 등의 업무를 맡는 것으로 알고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6개월이 지났을 때, 업무변경 지시로 사보 제작과 SNS 홍보 업무는 그만두고 이런저런 잡다한 일들을 하게 됐다. 난 분명 사보 제작과 SNS 홍보 업무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입사했는데, 그런 상황을 겪으니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차별은 김 감독만의 경험이 아니었다. 영화에선 농협중앙회 근무 당시 만났던 여성 청소 노동자들이 청소업무 때마다 승객용 엘리베이터가 아닌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위아래를 오가던 상황이 거론된다. 김 감독은 “영화에 담진 못했지만, 청소 노동자들이 화장실 안에 의자를 놓고 앉아 간식 먹으며 쉬던 걸 목격한 게 생각난다. 그때를 생각하면 청소 노동자 분들에게 죄송스럽고, 한편으로 그러한 상황 자체가 너무나 속상했다”고 회상했다.

그렇다면 영화의 제목은 왜 <그녀는 왜 사과를 따먹었을까>일까? 김 감독이 근무하던 당시, 농협중앙회 앞마당엔 사과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그는 “사과는 날이 갈수록 탐스럽게 익었다. 내 마음도 익어가는 사과처럼 조금씩, 서서히 바뀌었던 듯하다. (농협을 향한) 충성심이 점차 회의감 또는 환멸감으로 변하는 과정이었달까?”라고 당시의 감정을 밝혔다.

그래서였을까? 그 사과를 따먹는 것은 김 감독에겐 어느 순간 ‘금기를 향한 도전’처럼 여겨졌다. 퇴사를 눈앞에 뒀던 어느 날, 김 감독은 서슴없이 사과를 따먹었다. 그가 사과를 따먹던 장면은 그대로 영화 속에 담겼다. 그로부터 얼마 후, 김 감독은 농협중앙회를 퇴사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처럼 계약직 여성 노동자 전용 유니폼을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이후 계약직 여성 노동자 전용 유니폼 착용 제도는 폐지됐다. 다만 농협중앙회 내부의 자성 때문이라기보단 전반적인 업계 기조가 전용 유니폼 착용 제도를 폐지하는 추세였기에 그 추세를 따른 측면이 컸다. 농협 내부의 한 관계자는 그 외의 여러 비정규직 차별 문제는 여전히 농협중앙회 등 범농협 조직 내에 만연해 있다고 밝혔다. 그는 “농협 정규직 노동자들도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직시하고 이 문제의 해결에 함께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감독은 이후 일시적으로 카페를 운영했다. 당시 그는 상당한 ‘현타’를 느꼈다. 농협중앙회에서 계약직 노동자 신분으로 있던 그가 카페 사장, 즉 ‘사용자’가 된 것이다. 본인은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을 결코 차별 없이, 편하게 일하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다짐했지만,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사용자의 관점에서 노동자들을 대하는 상황을 접하며 현타가 온 것이다. 지금은 카페 운영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는 중이다. 그는 차차 ‘노동자’와 ‘사용자’의 삶을 살아보며 느낀 감정을 다루는 노동문제 관련 영화를 만들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김 감독에게 농협 계약직 노동자로서 살았던 당시를 어떻게 자평하는지 물었다.

“만약 내가 정규직으로 입사했다면 그러한 차별 구조를 제대로 보기 힘들었으리라 생각한다. 불합리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내가 되지 않았을까? 이러한 구조적 차별 문제, 그리고 우리 사회의 노동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니, 농협중앙회 입구 앞에선 농협유통·농협하나로유통 노동자들이 피케팅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피켓엔 ‘농협하나로유통은 노동조합의 임금교섭 요구안에 대하여 성실교섭 임하라!’, ‘밥 먹는 것도 정규직 비정규직 차별하는 농협중앙회 규탄한다!’ 등이 적혀 농협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 문제의 시정을 요구하고 있었다. 김 감독은 그들의 시위를 촬영하고자 카메라를 꺼냈다. 영상의 힘이 차별에 맞서는 모든 주체들을 이어줄 새로운 순간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영화 '그녀는 왜 사과를 따먹었을까'를 연출한 김예랑 감독이 농협중앙회 여성 계약직 노동자로 근무한 뒤 오랜만에 농협중앙회 앞에 왔다. 인터뷰 날이었던 지난달 20일, 마침 농협중앙회 앞에선 농협유통·농협하나로유통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차별 철폐 촉구 피케팅 시위를 전개 중이었다. 김 감독은 그들의 투쟁을 영상으로 담았다.
영화 '그녀는 왜 사과를 따먹었을까'를 연출한 김예랑 감독이 농협중앙회 여성 계약직 노동자로 근무한 뒤 오랜만에 농협중앙회 앞에 왔다. 인터뷰 날이었던 지난달 20일, 마침 농협중앙회 앞에선 농협유통·농협하나로유통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차별 철폐 촉구 피케팅 시위를 전개 중이었다. 김 감독은 그들의 투쟁을 영상으로 담았다.
영화 '그녀는 왜 사과를 따먹었을까'를 연출한 김예랑 감독이 농협중앙회 여성 계약직 노동자로 근무한 뒤 오랜만에 농협중앙회 앞에 왔다. 인터뷰 날이었던 지난달 20일, 마침 농협중앙회 앞에선 농협유통·농협하나로유통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차별 철폐 촉구 피케팅 시위를 전개 중이었다. 김 감독은 그들의 투쟁을 영상으로 담았다.
영화 '그녀는 왜 사과를 따먹었을까'를 연출한 김예랑 감독이 농협중앙회 여성 계약직 노동자로 근무한 뒤 오랜만에 농협중앙회 앞에 왔다. 인터뷰 날이었던 지난달 20일, 마침 농협중앙회 앞에선 농협유통·농협하나로유통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차별 철폐 촉구 피케팅 시위를 전개 중이었다. 김 감독은 그들의 투쟁을 영상으로 담았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