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해 12월 21~22일 농민·시민이 함께 이뤄낸 ‘남태령 대첩’은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 체포를 이끈 결정적 국면 중 하나였다. 당시 남태령에서 농민과 함께 경찰 차벽을 돌파한 시민 중 상당수를 차지했던 20대 청년들은 ‘식량주권 실현’을 위한 농민과의 연대를 계속 이어가고자 한다.
지난 11일 서울 광화문 앞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에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회장 정영이, 전여농)·퇴진너머 차별없는 세상 전국대학인권단체연대(퇴진너머 대학연대)가 공동주최한 ‘퇴진너머 차별없는 세상을 그리는 청년 대학생 사전집회 : 농민과 대학생이 함께 외치는 농민생존권이 보장받는 세상’ 집회는 그 연대의 일환으로 열렸다.
퇴진너머 대학연대는 서울지역 각 대학교의 인권단체들이 모인 대학생 공동행동조직으로, 윤석열정권 3년간 인권 영역에서 퇴행과 폭력, 억압을 자행한 윤 대통령의 퇴진을 위해 투쟁해 왔다. 이들은 남태령 대첩 당시 실현된 농민·청년 간 연대를 계속 이어가고 아울러 윤석열정권 내내 억압당했던 농민들의 요구(양곡관리법 개정, 식량주권 실현 등)를 전면적으로 내걸기 위해 전여농과 함께 사전집회를 준비했다.
이날 발언대에 오른 청년들은 하나같이 윤석열정부의 농민말살 정책을 규탄하며, 윤석열정부에 맞서 농업·농촌을 지키고 식량주권을 실현하고자 하는 농민들과 앞으로도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경희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에서 활동하는 하현희씨는 “남태령 대첩 전만 해도 농민의 목소리와 삶을 깊이 들여다볼 줄 몰랐다. 농민들의 수고와 노력이 담긴 국산 농산물을 먹으면서 부끄럽게도 농민들이 생존권을 위협받는 현실을 알지 못했다”고 고백한 뒤 “윤석열정부가 얼마나 농민의 목소리를 억압했는지, 어떤 모욕적인 말로 농민 생존권과 존엄성을 박탈했는지 알게 되자 분노의 마음이 들었다”고 밝혔다.
특히 2023년 이래 계속되는 윤석열정부의 양곡관리법(양곡법) 거부와 관련해, 하씨는 “양곡법의 목표는 쌀값을 안정시키고 과잉생산을 방지하는 것이건만, 정부는 양곡법 개정 논의에 참여조차 하지 않고, 어떤 해법도 제시하지 않은 채 거부권을 행사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는 트랙터들이 남태령 고개를 보란 듯이 넘는 광경을 봤다. 시민과 힘을 합쳐 농민들이 승리하는 모습을 확인했다”며 “가장 길고 추웠던 밤을 채운 연대의 물결이 이제는 사회로 퍼져나가야 할 때다. 농민혐오 정권이 퇴진하고 모든 노동이 존엄하게 대우받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대 인권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단오(활동명)’씨는 식량주권 실현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밥 한 공기 쌀값이 300원도 안 되는 가격이 계속 이어지는 이유가 외국에서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40만톤 이상의 쌀 때문임을 거론한 뒤, “전봉준투쟁단의 폐정개혁안 6조에 따라 ‘농산물 공정가격’, 즉 최저가격 보장을 실현해야 한다. 그럼에도 윤석열과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양곡법을 거부하고 농민의 삶을 철저히 무시하는 상황이다. 농민이 아니면 대한민국의 식량주권을 누가 지키겠는가”라고 꼬집었다.
남태령에서 얻은 승리의 경험과 감동을 잊지 않고, 앞으로도 농민들과 연대하겠다는 청년들의 약속도 이어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 ‘X(옛 트위터)’에서 ‘향연’이라는 이름으로 남태령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시민들에게 전파, 남태령 대첩 과정에서 수많은 시민이 함께할 수 있도록 노력한 충남 아산 여성 청년농민 김후주씨는 “남태령 대첩 이후 남태령에서 느낀 벅찬 감동이 한여름 밤의 꿈으로 그칠까 걱정했다. 폐정개혁안을 실현하지 못하고, 윤석열 이후에도 세상이 바뀌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 걱정이 점차 없어지고 있다”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장애인 기본권 실현투쟁이 벌어졌던 안국역 △동덕여대 학내 민주주의 수호 투쟁현장 △경남 거제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노동자들의 투쟁현장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여성노동자들의 고공농성 투쟁현장 △혹한을 견디며 ‘키세스단’ 시민들이 나흘간 집회를 이어간 한강진역 앞 등 방방곡곡에 연대가 퍼져나가는 걸 보며 희망을 느꼈다고 술회했다.
김후주씨는 “부디 (남태령에서의) 동짓날 밤의 연대와 희망을 잘 이어가 대동사회를 실현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 남태령은 역사에 남을 ‘시민연대의 승리’ 현장이었다”며 “남태령의 감동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다”고 밝혔다.
서울지역대학 인권연합동아리에서 활동하는 건국대생 이인진씨는 “기후위기 시대 농민들은 한 해 내내 사투를 벌여야 한다. 봄 기후가 극한으로 치달아 콩이 타들어 가거나 여름철 폭우로 소가 홍수에 휩쓸려가도 정부는 제대로 된 대책 하나 안 세우기 때문”이라고 한 뒤 “윤석열정부는 농산물 가격폭락과 농촌소멸 문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고, 오직 (농산물) 수입 위주 정책을 펼쳤고 양곡관리법엔 거부권을 행사했다”고 비판했다.
이인진씨는 동아리에서 농촌으로 농민학생연대활동(농활)을 갔을 당시 만난 농민이 마음 편히 농사짓는 데만 집중했으면 좋겠다고 푸념했던 기억을 소개했다. 이어 “식량주권 실현으로 더는 수입 농축산물에 우리 농산물이 밀려나지 않고, 이 땅의 농민이 농사짓고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직접 국정에도 참여할 수 있길 바란다”는 바람을 표했다.
이씨와 마찬가지로 서울지역대학 인권연합동아리에서 활동하는 건국대생 김소연씨는 농활을 다녀온 뒤 우리나라의 낮은 곡물자급률(2023년 기준 22.2%)에 충격을 받았고, 아울러 윤석열정부의 반(反)농민 정책에 분노했다고 밝혔다. 김소연씨는 “농촌은 지역 양극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농사지을 사람이 없다. 이를 바꾸려면 정책에 농민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정부는 농촌 주민의 지속가능한 삶을 보장하고 식량주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청년들의 응원과 지지, 그리고 더 뜨겁게 연대하겠다는 약속에 농민들도 화답했다. 양옥희 전 전여농 회장(당시 회장)은 “지난 12월 남태령에 농민들과 연대하고자 수많은 ‘유관순 열사’들이 오는 것을 보며, 그 동짓날 밤 여성농민들은 정말 많이 울었다. 남태령이 남긴 것은 우리의 연대였다. 이제 어디서나 서로의 연대가 계속되고 있다”며 “나라의 근간을 바로 세울 이들은 가진 자들, 많이 배운 자들이 아니다. 농민·노동자·서민이 항상 나라의 기본을 다졌다. 이 끈을 놓지 말고 앞으로도 함께하자. 청년이 함께 앞장서서 사회대개혁에 동참해주길 바란다”고 호소해 참가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그 사회대개혁 과정의 과제는 무엇일까? 정영이 전여농 회장(당시 부회장)은 그 예시로서 △국민의힘 해체 △신자유주의 개방농정 철폐 △식량주권 실현 △수구세력 청산 등을 거론했다. 정 부회장은 남태령에서 거둔 승리가 청소년·장애인·성소수자 등 그동안 권력을 가지지 못했던 ‘우리 모두’가 연대해 거둔 승리이자 민주주의의 승리였다며, 윤석열 이후의 세상은 ‘우리 모두’ 중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유발언자로 나선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윤석열 이후’에도 우리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하 의장은 “농민들은 노무현정부 때도, 문재인정부 때도 (농민 생존권을 위해) 싸웠다. 정부는 언제나 가진 자의 편이고, 그들에게 혜택을 주는 만큼 농민·노동자로부터 수탈해 간다”며 “정권은 다시 바뀌겠지만 가진 것 없는 우리는 앞으로도 싸울 것이다. 남태령에서 경찰에 연행될 것을 각오했던 농민들은 시민들이 함께 싸웠던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국사회가 더 좋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전농도 온 힘을 다해 여러분과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