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㊺] ‘노지형 대형마트’ 같은 김포오일장

  • 입력 2024.12.22 18:00
  • 수정 2025.01.17 16:32
  • 기자명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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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김포오일장. 사진 류관희 작가
한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김포오일장. 사진 류관희 작가

 

딸아이 첫돌 무렵부터 3~4년간 경기 김포시 사우동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근무지가 서울 신촌이라 출퇴근을 하면서 고생하던 때였다. 오일장에 들락거리는 재미가 없었다면 무료했을 환경이었다. 재건축을 했겠지, 어쩌면 아직 있을 수도 있겠지하는 생각들을 하면서 갔다. 김포의 오일장은 북변동에 위치한다. 내가 살던 아파트까지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선다. 자꾸 예전에 살던 아파트 이야기를 하는 건 그때 딸아이를 데리고 걸어서 산책하듯 다니던 곳이 오일장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공설운동장 옆에 장이 섰었다. 닭을 데리고 나오시는 분도 있고 붉은색이 너무 선명해서 섬뜩한 지네를 말려서 들고 나오시는 분도 있었다. 논 가운데 덜렁 5층짜리 아파트가 6동 있는 곳이라 마땅히 놀 곳, 놀 것이 없었다. 닷새에 한 번 가보는 오일장이 유일한 재미였다. 딸아이도 기억하고 내게도 잊혀지지 않는 우리 가족의 역사의 현장이 바로 김포오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했다. 보통은 상설시장과 어울려 있는 골목들을 이리저리 돌며 다니던 시장들과 달리 아주 단순한 시장이다.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면 바로 그 옆이 오일장인데, 네개의 선으로 보이는 진열대들이 한눈에 다 보이는 장이다. 그런데 단순하지만은 않다. 한바퀴 돌면 있을 건 다 있는 대형마트의 ‘노지 형태’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일단 구매해 집으로 돌아가면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신선하고 품질 좋은 채소와 과일, 해산물들이 많다. 그래서 나도 장을 볼 수밖에 없었다. 같이 간 동료도 자꾸 이것저것 사는 걸 보니 조리욕구를 자극하는 시장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진 류관희 작가
식재료 반, 먹을거리 반인 김포오일장. 사진 류관희 작가

 

 

12월의 김포오일장에서 냉이와 달래를 만났다. 아마 먼 남쪽에서 온 채소들일 것이다. 김포에서의 제철이라고 꼬집어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 상태도 좋고 가격도 좋다. 엄마 생각이 나서 냉이와 달래, 씀바귀와 물미역을 한 봉지씩 샀다. 쓴나물 좋아하시는 엄마의 표정이 생각나 발이 시려워 동동거리며 다녔지만 괜찮았다. 보리새우와 생태, 대구, 굴도 사고 싶었지만 내 영역과는 너무 떨어진 곳이라 참았다. 김장 땐 잘 보이지 않아 애를 태우던 생새우도 보인다. 국내산 새우젓과 수입산 새우젓을 구분해 맛볼 수 있는 시장이라 흥미로웠다. 지척인 강화도산 새우로 담근 추젓의 감칠맛이 최고였다. 갱엿도 보이고, 모래무지나 빠가사리 같은 민물생선도 만나고, 산개구리도 살 수 있는 곳이다.

 

 

음식을 하는 사람도 반하게 하는 맛의 팥죽.

 

 

사진작가와 동료들과 오일장에서 늘 먹는 아침은 장터국밥이지만 이번엔 팥죽을 먹었다. 김포오일장의 먹거리 중 최고는 줄이 아주 긴 만두가게라지만 우리는 팥죽을 선택했다. 12월이니까, 동지가 코앞이라 그랬다. 후회가 없는 선택이었다. 단맛 없는 간이 아주 잘 맞는 팥죽이었다. 팥을 아끼지 않고 쑨 죽이었다. 부모님이 하시던 가게를 물려받아 하고 있다는데 이름도 ‘정직한 팥죽’이라 붙어 있었다. 더구나 직접 농사지은 팥으로 한다니 서사도 좋았다. 무엇보다 좋은 건 죽과 함께 내주는 동치미다. 배추와 함께 툭툭 썰어 넣은 무도 좋았고, 마지막에 매운 고추가 삭으면서 내는 칼칼한 맛은 죽을 계속 먹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 추억을 돋게 하는 뻥튀기, 뻥소리가 나기 전 호루라기 소리가 먼저 들린다. 사진 류관희 작가
어린 시절 추억을 돋게 하는 뻥튀기, 뻥소리가 나기 전 호루라기 소리가 먼저 들린다. 사진 류관희 작가

 

 

시장을 도는 동안 만난 모든 상인들이 다 친절했다. 사진기를 들이대니 잘 나오게 찍으라며 모양을 다시 잡아주시는 상인도 있었다. 사진 찍는 것에 가끔은 욕을 하시는 분도 만나는 곳이 오일장이라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주 유쾌한 오일장 투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편치 않기도 했는데 이 기분이 뭘까, 하는 생각을 계속하면서 돌았다. 그러다 허리가 거의 직각으로 굽은 할머니를 만나면서 깨닫게 되었는데, 그건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을 들고 나오시는 할머니상인들을 만날 수 없는 곳이구나 하는 깨달음이었다. 아마도 그 넓던 논밭들이 모두 아파트가 되고 상가가 되고 도로가 되었으니 그럴 것이다. 그래도 아쉽고 서운하고 편치 않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일장에 거는 내 기대가 너무 큰 것은 아닐까. 오일장도 사회의 빠른 변화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일 텐데, 내 생각이 자연스럽지 못한 것일 수도 있을 텐데….

 

김장을 했지만 다시 김장을 하고 싶게 만드는 싱싱한 생새우.
김장을 했지만 다시 김장을 하고 싶게 만드는 싱싱한 생새우. 사진 류관희 작가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지리산 뱀사골 인근의 맛있는 부엌에서 제철음식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제철음식학교에서 봄이면 앞마당에 장을 담그고 자연의 속도로 나는 재료들로 김치를 담그며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해 50여 가지의 밥을 한다. 쉽게 구하는 재료들로 빠르고 건강하게 밥상을 차리는 쉬운 조리법을 교육하고 있다. 쉽게 장 담그는 방법을 기록한 ‘장 나와라 뚝딱’, 밥을 지으며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밥 짓는 법과 함께 기록한 ‘밥을 짓다, 사람을 만나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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