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는 천부적인 공공재…국가적 관리체계 확립해야

  • 입력 2024.12.15 18:46
  • 기자명 강광석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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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광석 위원장. 농민운동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과 국회의원 김선동 농업정책비서관 등을 역임했고 한국농정신문 논설위원으로 꾸준하게 글을 써왔다. 현재는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되는 세상을 꿈꾸며 진보당 강진지역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광석 위원장. 농민운동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과 국회의원 김선동 농업정책비서관 등을 역임했고 한국농정신문 논설위원으로 꾸준하게 글을 써왔다. 현재는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되는 세상을 꿈꾸며 진보당 강진지역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법은 국가정책의 근간입니다. 대한민국의 농지정책은 상위법 순으로 보면 헌법-농업농촌식품산업기본법-농지법-농지법시행령의 체계로 구성돼 있습니다. 헌법은 1987년 제정헌법의 적용을 받고 있고, 기본법에는 2000년에 처음 농지조항이 삽입됐습니다. 농지법은 1996년에 제정됐으니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농지에 관한 법률 규정은 크게 농지소유와 이용, 보전대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헌법의 농지조항 변천을 역사적으로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1948년 제헌헌법은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 그 분배의 방법, 소유의 한도, 소유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한다’라고 명시합니다. 그 시대의 가장 큰 과제는 농지의 분배였습니다.

1949년 농지개혁법은 ‘유상몰수 유상분배’를 골간으로 ‘자경농주의’를 표방합니다. 비농민 농지취득과 3ha 이상 농지소유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1962년, 정부는 헌법에 ‘농지의 소작제도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금지된다’라고 못 박았습니다. ‘소작금지’라는 용어가 역사상 처음 활자화된 것은 5.16쿠데타 이후 제정된 제3공화국 헌법입니다.

농지문제는 아니지만 저는 1961년에 ‘농산물가격유지법’이 제정됐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법은 ‘정부는 농산물의 가격유지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농산물을 매수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는데, 이것이 국가수매제의 근거입니다, 아울러 법은 ‘매수한 농산물은 당해 농산물의 수급과 시가 등 사정을 고려하여 이를 처분한다. 단, 처분가격은 양곡(미곡, 맥류 기타)에 있어서는 양곡관리법 제5조의 적용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이것이 이중곡가제의 근거입니다. 농지개혁법과 농산물가격유지법이 근현대 반세기 한국농업의 쌍두마차였습니다.

제5공화국 헌법은 ‘농지의 소작제도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금지된다. 다만, 농업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한 임대차 및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인정된다’고 했습니다. 1980년에 지금 심각한 문제가 되는 임대차 경영이 처음으로 합법의 영역으로 진입합니다.

그리고 이른바 1987년 체제의 헌법은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 (중략)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인정된다’고 명시했습니다. 그런데 그 ‘불가피한 사정’이라는 것이 너무나 보편적인 것이 돼서 전국 농지의 50% 이상이 소작지가 됩니다.

경자유전이라는 용어는 1987년 헌법에 처음 등장하지만 역사적으로는 정전제를 실시했던 통일신라시대 성덕여왕과 발해의 선왕 때로부터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고려와 조선을 세웠던 혁명세력은 자경농주의를 농지정책의 근본으로 삼았습니다.

1987년 헌법 체제를 말할 때, 농민들은 농산물최저가격보장제가 헌법에서 빠진 것을 두고두고 아프게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87년 헌법 제32조는 “국가는 (중략)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최저임금은 헌법으로 보장받습니다.

그런데 1987년 당시 농민들은 농산물최저가격보장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농민들은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뽑을 수 있게 된 것만을 기뻐하다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윤석열정권을 몰아내고 다시 제7공화국 헌법을 논의해야 할 시점에 이 교훈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농지는 천부적인 공공재다. 식량주권 확립과 기후위기에 대비해 농지에 대한 국가적 관리체계를 확립해 가야 한다. 농지를 계속 투기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모든 농지가 농업으로부터 분리될 것이다. 농지은행을 모태로 농지관리청을 신설해 농지보전과 이용을 총괄 관리해야 한다. 2021년 9월 세종시 전의면 신방리에 위치한 윤희숙 국민의힘 전 의원 부친 소유 농지에서 충남지역 농민들이 ‘투기 농지 몰수! 농지 전수조사 실시!' 등이 적힌 현수막을 펼쳐 들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지는 천부적인 공공재다. 식량주권 확립과 기후위기에 대비해 농지에 대한 국가적 관리체계를 확립해 가야 한다. 농지를 계속 투기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모든 농지가 농업으로부터 분리될 것이다. 농지은행을 모태로 농지관리청을 신설해 농지보전과 이용을 총괄 관리해야 한다. 2021년 9월 세종시 전의면 신방리에 위치한 윤희숙 국민의힘 전 의원 부친 소유 농지에서 충남지역 농민들이 ‘투기 농지 몰수! 농지 전수조사 실시!' 등이 적힌 현수막을 펼쳐 들고 있다. 한승호 기자

땅 투기 먹잇감 된 절대농지

다시 농지법의 역사를 보겠습니다. 1949년 농지개혁법 이후 농지의 소유니 분배니, 소작이니 하는 조항을 일반 법률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1972년에 ‘농지의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통해 농지전용허가제도 및 우량농지의 타목적 제한 사항만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이때부터 절대농지는 기업의 땅 투기 먹잇감이 되었습니다. 농지에 아파트를 짓는 일은 국가적 사업이었습니다. 1986년에는 소작농 보호를 위해 ‘농지임대차관리법’을 만들었는데 첫발도 떼지 못하고 폐기됐습니다.

1990년에는 ‘농어촌발전특별법’을 만들어 농업진흥지역제도를 도입했고 영농조합법인의 농지소유를 허용했습니다. 영농조합법인의 농지소유를 허용하는 통에 농업회사법인의 농지소유 길까지 열렸습니다. 이른바 대기업 농업진출의 판도라의 상자가 법적으로 열린 것입니다.

1996년, 산고 끝에 농지법이 만들어집니다. 대한민국 수립 이후 50년 만의 일입니다. 왜 이렇게 농지법 제정이 늦어졌을까요? 1949년 이승만과 친일파들, 땅을 소유하고 있었던 한민당의 지주들은 농지개혁을 반대했습니다. 그들은 땅 없는 농민의 설움을 대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1948년 정부수립 이후 50년 동안, 농지를 소유한 국회의원들, 후손에게 땅을 물려주고 싶은 지주들, 땅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소유한 기업들의 이익이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 농지법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농민회는 땅값이 싼 지역 농민과 땅값이 비싼 지역 농민의 목소리가 달랐고 농지를 한 평이라도 가진 농민과 그렇지 못한 농민의 처지가 달라서 한목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1996년에 제정된 농지법은 농지를 누가 소유할 수 있는가, 농지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가, 농지를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농지법은 ‘농지는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했는데 투기의 대상이 된 농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를 명시하지는 못했습니다.

1996년의 농지법은 농지를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않는 자의 농지소유 자격을 부정합니다.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는 헌법 제122조와 경자유전의 원칙 및 소작제도 금지를 규정한 헌법 제121조는 서로 조화롭게 농지제도를 받치고 있습니다.

비농민의 농지소유 인정하는 ‘누더기’ 농지법

그런데 농지법은 태어나자마자 그날부터 개정안이 상정돼 예외, 유예, 불가피한 경우, 어쩔 수 없는 상황, 규제 완화, 기업활동 보장, 경제부흥, 국제적 스탠다드, 국민경제의 균형적 발전, 신재생에너지 발전, 자투리 농지 활용, 소유주의 재산권 보장, 중종농지 소유권 인정을 토대로 한 조상 제사의 활성화, 농업회사법인의 국제경쟁력 강화, 그리고 또 여러 자잘하고 중차대한 이유로 비농민의 농지소유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전에도 썼듯이 홍익대학교 사동천 교수는 ‘명의신탁까지 합치면 전체 농지의 75%가 비농민 소유이며 2050년이 되면 전체 농지의 90%가 비농민 소유 농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합니다. 비농업인의 농지소유 가능 경우의 수는 농지법 예외조항으로 총 10개입니다. 특히 상속농지, 이농 후 농지소유를 무제한으로 인정합니다. 주말체험농장도 인정합니다. 농지취득자격증명서를 발급받으면 누구나 농지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근무했던 박석두 박사는 한 토론회에서 ‘후계농업인을 확보하고 있는 농가가 전체 농가의 5% 미만인 상황, 70세 이상 고령농민이 소유하고 있는 농지가 전체 농지의 29.5%를 차지하며, 상속농지는 매년 1만2000ha 수준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보아 현재의 고령화율과 영농 승계율을 고려하면 2040년경에는 전체 농지의 84%가 비농업인의 소유가 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많은 농민은 이제 소작인 신세입니다. 헌법과 농지법은 소작제도를 금한다고 매우 단호하게 선을 긋고 있는 듯하지만, 법은 총 아홉 가지 사유로 임대차(소작)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2019년 기준으로 전체 농지의 50.9%가 임차농지이며, 전체 농민의 59.6%가 임차농입니다. 소작은 봉건적 생산방식인데 21세기에 버젓이 횡행합니다. 정부는 농지은행을 만들어 농지임대차 중개까지 합니다. 이 모든 일이 법적으로 가능합니다.

다섯 가지 농지개혁방안을 제시하며

농지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농지법이 규정한 농업진흥지역은 전체 농지면적의 48%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매년 2000ha가 전용되고 있습니다. 최근 10년간 15만ha의 농지가 사라졌습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우리나라는 식량자급률 32%를 달성하기 위해서 172만5000ha의 농지가 필요한데 현재는 158만ha에 불과하다고 발표했습니다. 최근 정부는 농업진흥지역 중 여의도 면적의 12배를 타 용도로 전용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농지를 소중하게 보전해야 한다는 헌법 정신과 농지법 규정은 역대 모든 정부의 농지규제 완화에 의해 부정됐습니다.

저는 당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다섯 가지 농지개혁방안을 제시합니다. 농지의 국가적 관리체계 강화와 식량위기 대응을 위한 농지관리체계 확립이 기본 방향입니다.

첫째, 비농민의 상속농지 소유, 이농 후 농지소유, 주말체험농장을 전면 금지해야 합니다. 비농민의 상속농지는 공시지가로 매입하고, 이농 후 농지는 현실 거래가로 농지은행이 매입해야 합니다.

둘째, 비농민 소유 농지를 농지은행이 단계적으로 공시지가로 매입해야 합니다. 비농민의 농지 보유세를 강화하고 농지 시세차익을 전면 회수하는 농지공개념을 도입해야 합니다.

셋째, 농지임대차료는 국가가 전액 부담해야 합니다. 헌법과 농지법은 소작제도를 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작관행이 주류 생산방식이 된 이유는 정부의 정책 실패로 인한 것이므로 그 책임을 국가가 져야 마땅합니다.

넷째,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설정하고 농지유지총량제를 실시해야 합니다. 1차적으로 농지 유지 규모를 172만ha로 설정하고 이것을 법으로 명시해야 합니다.

다섯째, 농지전수조사를 실시해야 합니다. 불법농지를 몰수하고 휴경농지는 이용 효율화를 통해 식량자급에 기여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농지임대차 현황을 파악해 직불금 부당 수령을 막고 경작사실을 확인해 농업통계로 활용해야 합니다.

농지는 천부적인 공공재입니다. 식량주권 확립과 기후위기에 대비해 농지에 대한 국가적 관리체계를 확립해 가야 합니다. 농지를 계속 투기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모든 농지가 농업으로부터 분리될 것입니다. 농지은행을 모태로 농지관리청을 신설해 농지보전과 이용을 총괄 관리해야 합니다.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관리하는 지혜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용기가 농지정책을 시대에 맞게 전환하게 할 것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5대 개혁방안에 대한 세세한 로드맵을 한 번 더 준비해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 봐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강광석의 농지이야기’는 이번호를 끝으로 연재를 종료합니다. 성원해주신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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