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세상을 막고 있는 ‘벽’

  • 입력 2024.12.05 18:20
  • 수정 2024.12.08 19:09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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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긴급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긴급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지난 3일 밤부터 4일 새벽까지, 때아닌 계엄령 소동이 국민의 삶을 흔들었다. 국회의 기민한 대응으로 다행히 사태가 조기 수습됐지만 많은 국민이 마음을 졸였고 혹자는 현장(국회)에 몸을 내던졌으며, 상황 종료 이후에도 모두가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밝힌 계엄 선포 사유는 ‘국회의 폭거’를 막기 위함이었다. 대통령은 단지 자신과 대립 중일 뿐인 야당 국회의원들을 ‘범죄자 집단’, ‘북한 공산세력’,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세력’, ‘자유민주주의를 붕괴시키는 괴물’이라 단정하고 이들을 척결하겠다 선언했다.

아무도 공감하지 못할 말을 당당하게 공언하고 실행케 하는 원천은, 자기의 생각만이 절대선(善)이라 믿는 ‘오만’뿐이다. 나와 다른 의견을 배척하는 걸 넘어 매도하고 탄압하는 수준의 지독한 오만. ‘계엄의 밤’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그 지독한 오만이 만천하에 드러나 버린 시간이었다.

여기서 잠시, 시선을 농촌으로 돌려 보자. 농민들의 눈엔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아주 최근에 목격했던 또 다른 장면과 겹쳐 보일 것이다. 야당이 추진하는 ‘농업 민생 4법’을 기이하리만치 자극적인 언어로 비판·매도한 지난달 25일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기자회견 장면이다.

“농망 4법”, “법안 자체가 재해”. 분명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을 이날 장관의 발언이 어째서 그토록 원색적이고 무례했는지, 이번 계엄 사태가 그 답을 보여 주고 있다. 대통령의 심저에 이 정도의 오만와 아집이 자리 잡고 있다면, 야당이 아무리 좋은 정책을 제안한들 정부의 눈엔 ‘마땅히 욕을 퍼부어야 할’ 패악무도한 정책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법안을 반대하는 정부의 입장에 과연 합리성·진실성이 있었던 것인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기후위기의 바람을 타고 농업정책엔 전에 없이 강력한 개혁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이번 ‘농업 민생 4법’은 집권세력이 아닌 야당 진영에서 수많은 제약과 한계 속에 만들어 낸 그야말로 ‘최소한’의 개선안이다. 이것으로 농민들의 삶이 온전히 펴질 리는 없지만 정부가 스스로 내놓지 못했던 수준의 진전을 담아낸 건 분명하며, 향후 더 많은 개선으로 나아갈 전환점이자 기폭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농정 개혁은 그 시작부터 대통령이라는 벽에 막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3월 농업 민생 4법의 핵심인「양곡관리법」개정안을 맞아 자신의 제1호 거부권(법안 재의요구권)을 행사했으며, 법안들이 또다시 국회를 통과한 지금도 거부권 행사 의지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본지는 농민들의 삶을 위해 야당이 고안한 ‘최소한’의 농정 개선안, 농업 민생 4법의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하면서, 이를 막아서는 정부의 태도가 과연 합리적인지 오만한지에 대한 농민 독자들의 판단을 구하려 한다. 판단이 선 이후, 현 시국에서 어떤 행동을 취할지 역시 농민 독자들 개개인의 주체적 결정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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