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때에 맞춰 큰 배는 하구로 가고 지금은 수위가 낮아져 나루에는 광양 땅을 오가는 거룻배만 행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백 리를 흐르며 추령천 보성강 등을 모아들여 강은 폭이 넓고 건너편 산천이 아득하였다. 구례를 지나 하동에 이르면 모래가 고와져 섬진강은 모래내로 불렸으며 두치강이라고도 하였다. 그곳 두치진 나루에서 조금 떨어진 모래밭에 필상을 위시한 네 사내가 아까부터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다. 그들은 기범이가 훈장으로 있는 임실 성밭마을을 출발해 화개에서 머문 뒤 두치진에 이르렀던 것이다.
진산 오항골에서 봉상으로 내려올 제 네 사람은 이필제의 행적을 더듬기로 말을 맞췄다. 불란서 신부를 만나고도 후련한 기분이 들지 않던 차에 필상이 단양 도인을 만나봄이 어떠냐 물었었다. 그때 기범이가 도를 닦아 신선이 되려는 것도 아닌데 만나 무엇하느냐 따지면서 그들이 이필제에게 넘어가 영해 관아를 들이쳤으니 차라리 그 행적을 찾아보자 제안하였다. 병호나 희옥이도 이필제가 사내답다고 응원하여 농번기 끝에 이들은 길을 나선 참이었다.
충청도 홍주에서 태어난 이필제는 상체가 크고 몸이 털로 덮여 표호(豹虎)와 같았으며 흐르는 유성처럼 눈이 빛났다고 하였다.『정감록』에 심취한 그는 조선을 떨어트린 후 정씨에게 나라를 다스리게 하고 본인은 중원에 가서 천자가 되겠다며 사람들을 설득하였다. 그리하여 진천에서 도당을 모은 후 정소국이라는 사람의 아들을 중심으로 변란을 모의했지만 사전에 발각되어 다른 사람은 피체되고 혼자 지리산에 숨어들었다. 그가 도피처로 지리산을 택한 것은『정감록』의 예언대로 승지를 찾아 떠도는 무리가 많기 때문이었다. 이필제는 거창 등지에서 변란을 모의하던 사람들과 만나 물산이 풍부한 진주를 치기 전에 남해의 병창을 먼저 털자 설득하였다. 의기투합한 이들은 사람을 모아 곤양에 이르렀으나 품삯을 받고 따라나선 자들이 하나씩 자취를 감추자 다음을 기약하고 하동 두치진 나루에 다시 모였다. 그러나 두치진에서도 사람들이 이탈하여 배에 오른 자는 여덟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 배에 장교가 올라타자 걸음아 날 살려라 꽁무니를 빼고 말았던 것이다.
“세상천지에 그리 무모한 자가 어디 있단 말이오?”
기범이가 콧구멍으로 연기를 날리며 중얼거렸다. 큰 사태가 휩쓴 자리의 귀기가 느껴지지 않자 맥이 풀린 모양이었다.
“무슨 결사를 한 것도 아니고 짐 날라주면 돈냥이나 준다고 초모를 했다지 않은가. 빠끔살이를 할 생각이었던 게지.”
희옥이도 허허 웃었다. 필상이 강심으로 가는 거룻배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래도 들리는 소문은 얼마나 대단했었나. 진천에서 작당하고 예 와서 진주를 치겠다 모의하고 종당엔 영해 관아를 습격해 떨어트렸단 말이지. 그러고도 새재의 병기창을 또 습격하려 했다니 투지만은 알아줘야겠네.”
“그 도인이란 사람들은 어찌 이필제 같은 사람의 변설에 넘어갔는지 모르겠구려.”
희옥이가 볼멘소리를 하였고 기범이가 이어갔다.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 싶어 조직을 갖춘 이에게 접근했겠지. 조직 없이 허풍이나 떨어선 될 일이 아니었던 게야.”
자리에서 일어난 병호가 엉덩이에 묻은 모래를 털었다.
“그래도 직향경성(直向京城)을 주장했다니 기왕의 민요와는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향촌 내의 소요로 끝낼 게 아니라 서울로 쳐들어가겠단 생각을 했으니 배포가 있는 잡니다. 그만들 움직입시다. 장교라도 만나면 줄행랑을 놓아야 하니까.”
기범이가 따라 일어나며 소리쳤다.
“까짓 놈을 물에 처박고 말아야지, 등신들!”
그들은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 시절 묵어갔다는 두치마을을 넘어 남으로 내려왔다. 곤양에서 하루를 묵고 이튿날 진주에 도착해 수곡의 한적한 주막에 짐을 풀었다. 다들 원행에 지쳐 국밥에 탁주를 곁들이고 일찌감치 몸을 뉘는데 하필이면 그때부터 어디선가 여인의 곡성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가냘프게 시작되더니 갈수록 낭자해져 아이가 아프다 죽었는가 걱정될 지경이었다. 새벽녘쯤 잦아들었지만 자다 깨다 소리에 시달린 일행은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삭신이 뻐근하였다.
“아따, 꿈자리가 사납구먼. 꿈에 어떤 여인이 밤새 곡을 하지 뭡니까?”
다른 사람 뒤척일 제 코만 잘 골던 희옥이가 아침이 되자 푸념하였다.
“우린 곡성에다 자네 코 고는 소리가 더해져 한잠도 못 잤네.”
기범이가 타박하자 희옥이의 눈이 커졌다.
“그럼 자네 꿈에도 나타났단 말인가?”
모두들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해장을 하고 그들은 촉석루에 올라 논개가 투신했다는 아래를 내려다보고 우병영이며 중영을 싸돌아다녔다. 그러나 이필제의 행적은 눈을 씻는대도 찾을 수 없고 사연을 안다는 사람도 만나기 어려웠다. 모의 중에 고변이 터져 애꿎은 모가지만 모래밭에 흩어졌다 하니 당연한 노릇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