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와 녹취록 얘기가 국정감사를 뒤덮고 있다. 그러나 지역에서 살아가는 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국정감사 이후에 이어질 예산심의도 중요하다. 최근 국가재정이 날로 어려워지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농민이나 농촌주민 입장에선 농업·농촌 분야 예산이 어떻게 되는지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인 국가재정 운용도 중요하다. 단지 농림축산식품부 예산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부처들의 예산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 전체적인 재정 운용 방향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따라 농민들과 농촌주민들의 삶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
특정한 사업예산도 중요하지만, 내국세의 일정 부분을 의무적으로 지방에 배분하도록 돼 있는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문제는 모든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의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재정의 어려움을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으로 전가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문제, 지방에 전가하는 윤석열정권
대한민국의 국가재정은 심각한 상황이다. 건전재정을 표방했던 윤석열정권에서 역설적으로 나라 살림살이는 더 구멍이 나고 있다. 2023년 나라 살림살이는 87조원 적자가 났다(관리재정수지 기준). 경기 영향도 있지만, 감세정책의 영향도 컸다. 그리고 최근 기획재정부는 올해(2024년) 세수를 재추계한 결과, 당초 전망보다 29조6000억원의 세수결손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정부는 모자라는 세수를 메꾸기 위해 기금을 끌어다 쓰고, 지방교부세 집행을 보류하겠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 대해 보수언론에서도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예를 들면, 10월 30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송평인 칼럼>은 「우파정부에서 더 비어가는 곳간」이라는 제목으로 윤석열정부의 무분별한 감세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즉 ‘윤 정부는 어리석게도 보유세 양도세 상속세를 다 내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윤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대책 없이 세금 낮출 궁리만 했다’라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윤석열정권의 세금 씀씀이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씀씀이를 아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문 정부와 비슷하게 써대고 있다. 돈을 쓸 곳에 제대로 썼냐 하면 그마저도 아니다’라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재정의 어려움이 심각해지자, 윤석열정부는 여기저기서 급한 대로 끌어서 쓰겠다는 입장이다. 외국환평형기금 등에까지 손을 대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윤석열정권은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으로 재정문제를 전가하고 있다. 2023년에는 세수결손을 이유로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18조6000억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정식으로 추가경정예산을 통해서 감액한 것도 아니고, 이미 수립된 예산에 대해 ‘불용’ 처리를 해서 지급하지 않은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은 회계연도 중에 갑자기 당해연도 지방교부세가 미교부(未交付) 되자, 재정적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윤석열정부의 행태가 위법적인 행위였다는 지적이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최근 정부는 2024년분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6조5000억원의 집행을 보류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에도 일부 지방교부세의 집행을 보류하겠다는 것이니, 지방재정은 연이어 타격을 받게 됐다.
비상금도 떨어지면, 빚내는 수밖에 없어
문제는 국가재정의 어려움이 개선될 가능성이 당분간 없어 보이고, 그에 따라 지방재정의 어려움도 가중될 것이라는 점이다. 윤석열정권이 조세정책, 세출정책과 관련해서 현재의 정책기조를 유지한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
이것이 현실이라면, 지방자치 차원에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재정상황을 진단하고, 재정개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중앙정부가 재정분석을 하고 있지만, 거기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준다고 약속했던 돈도 갑자기 주지 않는 중앙정부를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특히 재정자립도가 낮은 농촌지역 지방자치단체들의 경우에는 더더욱 자구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농촌지역 지방자치단체들은 지방세와 같은 자체 수입 비중이 적기 때문에, 지방교부세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그런데 지방교부세가 줄어들면 살림살이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23년 정부는 지방교부세 일부를 미지급하면서, 지방자치단체들에게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안정화기금 등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다 쓰라’고 했다. 그래서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은 있는 돈들을 긁어서 썼다. 그러나 이제는 비상금 격인 재정안정화기금 잔액이 0원이 된 곳들도 여럿이다. 그러면 빚을 내는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23년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의 지방채 발행 규모는 4조2719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개인이든, 기업이든, 지방자치단체든 간에 빚이 늘어나는 것은 위험도가 커지는 것이다. 나중에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하니, 빚이 늘어나면 이후엔 꼭 필요한 곳에도 돈을 쓰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진짜 어려워지면 지방자치단체가 재정위기를 맞는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 그러면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이 저하될 수밖에 없고, 지역의 이미지도 훼손되면서 인구유출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따라서 농촌지역 지방자치단체의 경우에는 빚이 늘어나는 것을 매우 경계할 필요가 있다.
잔치가 끝난 지방재정, 혁신이 필요하다
사실 그동안 지방재정은 상황이 좋은 편이었다. 2013년부터 2022년까지 평균 경제성장률은 2.6%였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지출 규모는 연평균 7%가 증가했다. 내국세 수입이 늘어나면서 지방교부세도 증가해 왔고, 지방세 수입도 늘어났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풍부해진 지방재정 덕분에 지방자치단체의 예산도 방만해진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거품을 빼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지방자치단체의 자체 수입을 늘리려는 노력도 필요할 수 있지만, 그것은 한계가 있다. 유해시설을 잘못 유치하거나 하면, 그로 인해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적·행정적 부담만 늘어날 수 있다.
최근 산업단지 안에서 산업폐기물매립장을 운영하던 업체가 돈만 벌고 나서 사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바람에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침출수 처리를 하는 곳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런 것이 단적인 예이다. 산업단지가 들어오면 지역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만큼 도움이 되지 않고 나중에 산업폐기물 부담만 떠안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섣불리 산업단지나 공장을 유치한다고 해서 지방재정의 어려움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행정적·재정적 부담만 커질 수 있다.
이런 때일수록 세출예산의 혁신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토목건설 공사 예산을 줄이고, 관행적으로 낭비되는 예산들을 줄여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예산의 투명성을 지금보다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지금 공모사업 수준으로 운영되는 주민참여예산제로는 안 된다. 지방자치단체의 각 부서가 예산부서에 제출하는 예산요구서부터 공개하는 등 예산편성의 전 과정이 투명해져야 한다. 불투명하게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예산들은 전부 삭감 또는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국비, 도비 보조사업도 무조건 받을 것이 아니라 필요한 사업만 받아야 한다. 국비 보조나 도비 보조사업도 결국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일정비율을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효과도 의심스러운데 예산만 낭비될 사업을 보조사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받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농촌지역의 경우에 군청의 예산결정권을 줄이고, 각 읍·면의 예산결정권을 늘려야 한다. 주민참여예산과 결합해서 읍·면별로 일정 액수의 자율예산을 보장하고, 이 예산으로 각 읍·면의 생활인프라를 개선해야 한다. 군청에서 사업이 하향식으로 결정되는 구조에서 탈피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주민참여예산제가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곳이 많은데, 이를 실질화해야 한다. 일부 예산은 공모사업 방식으로 주민 참여를 보장하되, 지방자치단체의 전체 예산에 대해 정보를 공개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주민들의 예산낭비감시권을 실질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방재정법 제48조의2에서는 ‘예산·기금의 불법 지출·낭비에 대한 주민감시권’을 보장하고 있다. 이를 실질화하기 위해서는 관련 조례의 제정 또는 개정이 필요하다.
2026년 지방선거에서 가장 중요하게 논의돼야 할 주제도, 지방재정의 혁신이다. 안일하게 대처하다가는 지역의 미래가 어둡다. 그리고 지역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면서, 중앙권력에 대해서도 제대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