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㊸] 거창한 거창군의 오일장

  • 입력 2024.10.27 18:00
  • 수정 2024.10.27 19:15
  • 기자명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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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류관희 작가
오일장이 서는 거창전통시장. 사진 류관희 작가

 

 

거창군은 ‘거창함’을 브랜드로 키운다. 지역명을 지자체의 브랜드로 쓰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거창의 곳곳에서 생산되는 특산품에는 어김없이 거창한 한우, 거창한 사과, 거창한 국수, 거창한 산양삼 등의 이름이 붙고 심지어 거창한 뉴스라는 이름의 언론매체도 있다. 내가 거창을 가려면 우선 가장 먼저 만나는 곳도 ‘거창한휴게소’다. 휴게소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거창 산물들엔 ‘거창한’이라는 거창군만의 공동 브랜드명이 표기되어 있다. 그렇게 휴게소를 지나 거창으로 빠지는 톨게이트를 나가면 5분 거리에 거창전통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주차를 하기도 전부터 설렌다. 오일장이 원래 그렇다. 늘 설레게 하지만 또 늘 처음인 것처럼 설렌다.

거창오일장은 상설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1과 6이 있는 날마다 장이 선다. 6만 남짓의 인구에 비해 오일장은 그 규모가 제법 크다. 볼거리가 많다는 뜻이다.

 

 

사진 류관희 작가
경운기에 토란대와 대파를 들고 나오신 농부상인. 사진 류관희 작가

 

토란대가 나왔으니 토란도 나온다. 까서 팔아야 그나마 팔린다. 사진 류관희 작가

 

 

제일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여기저기 산더미 같이 쌓인 토란대다. 어머어마한 한 다발이 5000원이다. 싸지만, 사서 들고 가기 힘들고 돌아가서 손질한 생각을 하면 쉽게 구입을 결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토란대를 들고 나오신 분들은 열심히 껍질을 까고 손질하면서 파신다. 당장 쓸 일도 없고 마을에서도 구할 수 있으니 나는 그냥 지나간다. 토란대가 나왔으니 당연히 토란도 보인다. 토란도 토란대 같아서 다들 장갑 끼고 열심히 까면서 파신다. 맨손으로 만지면 미끄러워 불편하고 또 직접 만진 손이 가려울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조금 사다가 토란탕 끓이면 좋겠지만 이번엔 외면하고 간다.

눈을 돌리니 여기저기 내가 정말 좋아하는 쓴 고들빼기가 지천이다. 고들빼기는 보통 가을엔 김치를 담그고 봄엔 데쳐서 무쳐 먹는다. 봄이든 가을이든 입맛 없을 때 먹으면 딱 좋을 쓴맛이라 사고 싶은 마음이 요동을 친다. 나는 참았으나 동행한 친구가 한 묶음 샀다. 마당이 있다면 심어두고 뽑아먹다가 노란 꽃을 보는 재미도 있는 식물이 고들빼기다. 잘 퍼지기도 하고 생명력이 엄청나서 흙이 부족한 돌 틈에서도 잘 자란다. 서울 홍대 근처 돌담을 지나다 틈틈이 빼곡하게 자라는 고들빼기에 넋을 잃고 들여다 본 적이 있을 정도다.

 

 

농사 지은 고들빼기를 들고 나와 장터에서 단을 묶으신다. 단이 크고 작아 고르는 재미가 있다. 사진 류관희 작가
농사 지은 고들빼기를 들고 나와 장터에서 단을 묶으신다. 단이 크고 작아 고르는 재미가 있다. 사진 류관희 작가

 

 

추석 무렵에 송이버섯과 능이버섯을 만나지 못해 교육에도 지장이 있었는데 올해 거의 처음으로 난전에 나온 버섯들을 만났다. 남원이나 함양보다 이곳 거창이 자연산버섯을 좀 더 흔하게 볼 수 있는 것 같다. 능이, 송이뿐 아니라 흰굴뚝버섯, 구름버섯, 까치버섯, 꾀꼬리버섯, 솔버섯 등을 만나 조금조금 구입할 수 있어 좋았다. 돌아가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볼 생각에 마냥 즐겁기만 하다. 가을을 대표하는 식재료로 손꼽을 수 있는 것이 야생버섯들임을 절대로 부인할 수 없다. 이 가을에 만나는 향과 맛과 식감이 모두 다른 다양한 버섯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냥 행복해진다.

 

 

사진 류관희 작가
단풍콩잎과 단풍깻잎은 잉여농산물을 아름다운 음식으로 환생시키는 대표적 사례다. 사진 류관희 작가

 

 

이번 거창오일장에서 만난 가장 반가운 식재료는 단풍든 깻잎과 콩잎이다. 들깨나 콩은 인간에게 온몸을 내어주는 그야말로 유익한 몇 안 되는 식물 중 하나다. 열매를 줄 뿐 아니라 잎을 먹게 해주고 콩대나 들깻대는 땔감으로 그 마지막 소임을 다한 후 흙으로 돌아가니 말이다. 한쪽에서는 아직 수확 전의 고구마 줄기와 어린 순을 들고 와 파시기도 한다. 들기름과 간장에 버무렸다가 고춧가루 넣고 볶으면 밥도둑인데 하면서도 사지는 않고 돌아선다. 고구마 어린 순도 데쳐서 된장에 무쳐 먹으면 미끄덩거리지만 그것도 별미인데 하면서도 내일부터 며칠간 닥칠 엄청난 일거리 생각에 그냥 자리를 뜬다.

 

 

사진 류관희 작가
마수를 했다시며 오만원권에 침을 발라 이마에 붙이신다. 보는 나도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사진 류관희 작가

 

 

마수를 했다며 물건과 바꾼 돈을 이마에 붙이시는 할머니도 만났다. 만원어치 사고 오만원권을 드렸는데 귀도 어두우시고 계산이 잘 안 되는 분이시라 만원권 다섯 장을 다시 내미시니 `어이쿠!' 하면서 돌려드려야 했다. 장터 바닥에 앉아 소소한 물건을 파시지만 근처에 여러 채의 건물을 가지셨다는 할머니도 계셨다. 장터에 나오시는 게 취미생활이라 하신다. 나이 들어서는 재미로라도 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김장용 무와 알타리밭에서 솎아낸 것들을 김치용으로 쌓아두고 파시기도 한다. 요즘 같은 때만 있는 무청으로 담그는 김치가 시원하고 맛있다. 이제 곧 걷어내야 할 덩쿨에서 따온 호박들이 어찌나 실하고 살이 단단한지 그 맛을 알기에 참지 못하고 6개나 샀다. 6개에 5000원이다. 도시의 마트 가격을 생각하면 참 어이가 없는 가격이 아닐 수 없다. 너무 싸게 사는 게 아닐까 하는 미안함 위에 덤으로 하나 더 얹어 주시는 여유도 있다. 직접 농사를 하시니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시장 입구에 정이 있는 시장이라고 쓰인 간판이 보인다. `거창韓거창'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들먹이지 않아도 좋을 곳이다. 오일장에서 만난 거창하지 않은 분들이 아낌없이 내준 따뜻함에 오로지 웃다가만 왔으니 이만하면 되었다.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지리산 뱀사골 인근의 맛있는 부엌에서 제철음식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제철음식학교에서 봄이면 앞마당에 장을 담그고 자연의 속도로 나는 재료들로 김치를 담그며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해 50여 가지의 밥을 한다. 쉽게 구하는 재료들로 빠르고 건강하게 밥상을 차리는 쉬운 조리법을 교육하고 있다. 쉽게 장 담그는 방법을 기록한 ‘장 나와라 뚝딱’, 밥을 지으며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밥 짓는 법과 함께 기록한 ‘밥을 짓다, 사람을 만나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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