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창이 코끝에 손가락을 대보고는 어머니를 외치며 곡을 하였고 병호와 숙영이도 있는 대로 울음을 울었다. 마을 굴뚝에 연기가 오르자 기창은 부음을 알리고 동리 총각 몇에게 먼 곳에도 소식을 전해 달라 당부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마당에 솥을 걸고 음식 장만에 손발을 맞출 무렵 한술 뜨고 가는 남원의 약초꾼 편에 병호는 성밭마을에 기별을 넣었다. 해가 뉘엿해져 기범이가 나타나고 밤이 깊어 필상이 찾아왔으며, 이튿날 동틀 무렵엔 희옥이가 달려들어 곡부터 풀어놓았다. 그날 해가 중천에 오르자 억구지까지 나타나 일을 돕고 심부름도 하더니 해 질 무렵 전주에 간다며 길을 나섰다. 그 무렵 억구지는 전주 남천교 앞에 기범이가 마련한 셋방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원래 사죄는 세 번 계복(啓覆)하는데 관찰사가 차사원(差使員)을 정하여 수령과 조사하게 하고 두 번째는 차사원 두 명을 정하여 심리하고 마지막에는 관찰사가 직접 하였다. 전주영장의 도움으로 과정을 늦추었으나 나라에서 암행어사를 보내 대원군 세력을 축출할 제 김시풍 역시 떨리게 되었던 터였다. 이미 관찰사가 옥안(獄案)을 작성하여 계문(啓聞)하였다 하므로 박치수는 저승에 발 하나를 얹어둔 꼴이었다. 더욱이 행형은 추분과 춘분 사이에 실행되기 때문에 추분 지나면서 기범이와 억구지의 신경은 통째 전주에 가 있었다.
이튿날 소식을 듣고 친척들이 조문을 왔으며 오후에는 송진사의 맏아들이 상가에 찾아왔다. 기창은 조문하는 사람들에게 예를 갖추고 송진사의 맏아들에게는 차일 아래까지 내려와 아버지의 안부를 물었다. 이미 이런 날이 있을 줄 알고 수의를 마련하는 일부터 조문객을 맞는 일과 장지에 이르기까지 어긋남 없이 준비했던 터라 장례는 숙연한 가운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유족의 입장에서는 애간장이 녹아도 장씨는 명대로 살다 가는 편이라 사람들은 호상이라며 안도하였고 상가 곳곳에 윷판과 고누판이 벌어졌다. 병호의 동무들은 사람들을 대접하는 일에 소홀함이 없었으며 술이 과해 큰소리를 내거나 싸움이 벌어지면 뜯어말리고 윽박지르면서 질서를 잡았다. 장지는 집에서 멀지 않은 뒷산으로 정하였고 이번에도 병호의 동무들이 상여를 멨다. 하관을 할 적에는 기창의 당부에도 숙영이 어찌나 애잔하게 곡을 하는지 듣는 사람이 눈시울을 붉혔다.
“집에 가거든 백구 좀 달래보십시오.”
산에서 내려올 때 숙영이 부은 눈으로 병호에게 일렀다.
“먹을 게 그렇게나 많은데도 굶고 있습니다. 이러다 식구가 또 나가겠습니다.”
병호와 기창은 조문객을 맞느라 미처 알지 못하던 일을 혼자 알고 애를 태운 눈치였다. 친척 몇이 기창과 방에 들고 병호의 친구들은 멍석에 상을 차렸다. 고깃국에 말아온 밥을 병호가 들고 가자 백구는 꼬리를 흔들더니 앞발에 얼굴을 묻었다. 병호가 밥그릇을 밀어주며 사정하였으나 눈만 끔벅이고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실랑이하는 모습에 사람 못된 것보다 몇 곱절 낫다고 조문객들은 칭찬하였고 병호는 하는 수 없이 밥그릇만 놓아둔 채 동무들 곁으로 나왔다. 지난여름 혼례를 치를 때 같이 만나 신명을 낸 후로 동무들이 모이기는 처음이었다. 필상이 구해온 문건을 병호와 숙영이 필사해 나누어주었으나 그때도 따로 담론한 적은 없었다. 소원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생활 속에 제각기 접어든 까닭이었다.
백구는 이튿날도 밥을 먹지 않았다. 기창이 사정해도 듣지 않고 병호가 타일러도 꼬리만 흔들었다. 밤늦은 시간이면 백구를 달래며 애원하는 숙영의 목소리가 문지방을 넘었지만 끝내 음식을 마다하더니 장씨의 장례를 치른 지 닷새 만에 녀석은 눈을 감았다. 가족들은 장씨의 무덤 곁에 백구를 묻었다.
병호네 식구는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 기창은 찾아오는 사람을 맞고 출타도 하면서 약재를 넘기거나 대갓집을 찾아 귀한 물건을 거래하였다. 병호는 다시금 방에 들어앉았으며 숙영은 살림하는 틈틈이 약재를 관리하고 손님을 맞았다. 다른 날과 다름없이 필사해온 것을 뒤적이던 병호가 싸리울 너머에서 건너다보는 사내를 보고 마루로 나섰다.
“뉘십니까?”
“원정마을 사는데 기범이 성님이 좀 나왔으면 한대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병호는 기창에게 며칠 출타하겠다고 허락을 얻었다. 기창에게 허락받는 것을 토방에서 듣고 숙영이 옷을 챙겼다.
“예를 차리는 길이 아닐 터이니 오래 입어 낡은 것을 꺼냈습니다.”
“그간 어찌 살았는지 까마득합니다. 혼자만 너무 복되게 삽니다.”
병호는 전주에 나왔으면 한다는 기범이의 소식을 듣고 감영에 회보(回報)가 도착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회보가 내려오면 대략 사흘 후에는 형을 집행하므로 이제는 다 끝난 셈이었다. 원정마을 사내는 필상이라는 사람과 같이 왔으면 한다는 김기범의 말을 전하고 매장할 자리를 마련한다며 엄재로 올라갔다. 박치수는 사죄를 범하고 죽는 판이라 일족의 반대로 선산에 들지 못하므로 기범이가 숯막 가까이 매장하자고 매듭지었다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