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우들과 찾고자 하는 게 무엇이냐고 숙영은 재차 물었다.
“같은 길을 간다 하지 않았습니까?”
“같이 찾고 있다는 말이지요.”
“처음 이야기를 꺼낼 때는 눈이 무서웠습니다. 번개가 쳤지요.”
“이제는 달라졌습니까?”
“지금은 탐심으로 게슴츠레합니다.”
“바로 보았습니다. 남보다 늦었으므로 벌충해야지요.”
병호는 다짜고짜 달려들어 그녀를 안고 넘어갔다. 저고리 고름을 당기자 섶이 열리면서 속저고리가 드러나고 속고름을 풀자 속적삼이 나왔다. 상의를 벗기고 치마를 푸는데 너른바지가 나오고 단속곳을 해결하자 다시 바지와 속속곳이 나왔다. 평시라면 그렇게 차릴 까닭이 없으나 새색시라 양모가 차려주는 대로 끼어 입은 모양이었다.
“단단히도 차렸구려. 앞으로 한두 가지는 덜어냅시다.”
“빤히 보지 마십시오. 부끄럽답니다.”
“부끄러움이 어째서요. 저도 부끄럽습니다.”
마지막으로 다리속곳을 벗겨내 알몸이 되자 병호도 허겁지겁 옷을 벗었다. 이불도 깔리지 않은 맨바닥에서 그러는데 한지가 채여 구겨졌다. 초야를 치르고 합치기를 반복할수록 몸이 열리면서 숙영은 비로소 온전한 여인이 된 것 같았다. 여기에 아이가 태어나면 사고무친처럼 살다가 모든 것을 이루게 될 것으로 생각되었다. 양부모가 내놓고 구박은 안하지만 그들과 한 몸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같은 손길이라도 몸으로 낳은 자식과 제 몸에 닿는 체온이 다름을 느낄 뿐이었다. 하지만 병호와 살을 나눌 때 몸 비워진 곳이 가득 채워지면 온전한 따스함으로 허전한 자리가 훈훈해졌다. 돌출과 함몰이 딱 맞아 조여진 이런 순간이야말로 이 남자가 어떤 거리도 없는 내 것이라는 실감에 숙영은 몸을 떨었다. 더욱이 소금실 신방은 안방과 바람벽 하나를 맞댄다 하니 이곳에서나마 원하면 언제든 몸을 열 작정이었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읜 병호도 깊은 곳이 빈 것을 알고 숙영은 더욱 힘주어 그를 안았다.
“어서 아이가 들어앉으면 좋겠습니다.”
일을 마치고도 병호는 몸에서 나가지 않았다.
“잠깐 기억을 놓쳤습니다. 아까 그 말…… 다시개벽이었지요?”
병호가 딴소리를 하자 숙영이 조금 뾰로통해졌다.
“서방님은 내내 그 생각을 하였습니까?”
“아닙니다. 몰두하였습니다. 끝나고 든 생각입니다.”
“전 끝나지 않았습니다. 서방님이 나가고도 땀구멍이 다 오므라지기 전까지는요.”
“또 혼나는군요.”
“저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사내란 바깥에 눈을 주므로 아시라고 알려드립니다. 전 서방님을 더 빨리 알게 될 테지요.”
그때 발자국소리가 가까워지다 멀어졌다.
“들었지요? 저녁상 준비하자고 왔을 겝니다. 일어나십시오.”
그녀가 가슴을 밀었지만 그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힘을 주며 속삭였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개다리소반에 경서를 두고 책장을 넘기는 것이었으나 병호의 신경은 안방에 가 있었다. 종정마을을 떠나 소금실에 들어온 지 한 달쯤 지나면서 숙영은 이쪽 생활에 몸이 익어갔다. 기창은 집에 머물며 약초꾼과 심마니가 가져온 약초를 의원에게 방매하고 산삼 같은 귀한 물건은 대갓집에 주선한 뒤 원주인이 찾아오면 대금을 지불하였다. 숙영은 약초를 간수하는 기창을 돕고 물건을 가져오는 사람에게 술상과 밥상을 차려냈다. 지금도 진산에서 왔다는 약초꾼에게 밥상을 들여 주었는데 그가 나타나면서부터 병호의 신경은 온통 그쪽에 가 있었다.
“지금쯤 식사가 끝나가는 중일 겝니다.”
약초꾼에게 용무가 있음을 알고 숙영이 일러주었다. 병호는 윗목에 쌓인 책을 들추며 무언가 찾는 눈치지만 눈에 띄지 않는지 죄 들썩여보는 것이었다.
“찾는 게 이것입니까?”
반짇고리에서 주머니를 찾아 내밀자 병호의 얼굴에 안도의 기색이 나타났다. 숙영은 안방에 숭늉을 넣어주고 밥상을 들어 내왔다. 약초꾼이 밖에 나서자 병호가 부리나케 뛰어나와 배웅하는 척 따라붙더니 한참이 지나고도 돌아오지 않으므로 주머니와 관련된 어떤 일인 줄 짐작하였다. 약탕기를 들어 물을 짜낸 후 안방에 들여가자 기창이 장씨를 일으켜 앉혔다. 약사발을 비운 장씨의 입에 감초를 넣어주자 우물거리다 뱉겠다는 시늉이라 손을 내밀어 받았다. 기창은 무뚝뚝하여 며느리를 보고도 좋은지 싫은지 말이 없었고 음식이 맞는지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장씨는 실망하는 낯이 역력했는데 숙영의 키가 병호보다 컸기 때문이었다. 말수는 적지만 약초꾼을 대하는 기창의 태도를 통해 그녀는 시아버지의 성품을 보았고, 지아비와 며느리를 일찌감치 떠나보낸 채 하고 많은 외로움을 감내하고도 불우한 처지를 원망하지 않는 장씨에게서는 시가의 품격을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