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지금 빨리 ** 방송 틀어보세요. 우리 팔꿈치 아픈 거랑 똑같은 내용이 저기에 나오네요.”
목요일, 여주여성농업인센터 수업에서 기타치고 노래 부르며 올라왔던 ‘텐션’이 집으로 가도 쉽게 내려가지 않아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내가 겪고 있는 팔꿈치 통증에 관한 화면에 집중했습니다. ‘맞아, 나도 저런데…’ 하다 문득 팔꿈치가 아파 연주를 멈추곤 하던 언니가 생각나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전화를 했습니다. 품앗이 때 나는 어디가 아파서 그 일을 못하니, 이 일을 하겠다는 사람들을 보며 ‘그러려면 왜 품앗이를 왔나’하는 반감을 삭이며 무거운 일, 힘든 일을 맡아왔습니다. 평소 허리도 안 좋다, 다리도 아프다 하시는 시어머니가 농사를 하려고 하실 때마다 일하시면 병원비 더 들어가니 하지 마시라고 만류하고 내가 하나라도 더 한다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몸을 놀렸습니다.
그렇게 써왔던 몸이었는데 몇 년 전부터 팔꿈치가 아팠습니다. 눈이 너무 많이 와 넉가래와 눈삽으로 눈을 치우고 빗자루로 바닥을 쓰는데 팔꿈치에 번개가 치듯 통증이 왔습니다. 그렇다고 눈치우기를 멈출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계속 눈을 치우고 바닥을 쓸었고 이후부터 팔꿈치 통증이 지속됐습니다. 침을 맞으면 좀 나아지는가 싶다가 일을 하면 다시 아프기를 반복했고 빗자루로 바닥을 쓸 때가 제일 아팠습니다. 지역 축제의 공연을 준비하면서 평소에 비해 많은 연습을 하는데 기타를 치다 멈추고 팔꿈치를 주무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언니의 팔꿈치도 내 팔꿈치만큼 고질이란 걸 알게 됐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언니도 비질을 할 때 팔꿈치가 가장 아프다고 했고, 양계를 하는 언니에게 비질은 키운 닭을 내보내고 새롭게 병아리들을 맞이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주에는 못자리를 했더니 온 몸이 아팠습니다. 이틀 후에는 팔꿈치만 빼고 다 나았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나온 대로 운동도 하고 마사지도 하면서 아픔도 옅어가는 중에 일요일에 마늘대를 뽑았습니다. 굵고 튼튼한 마늘대를 남겨두고 옆에 난 마늘대를 뽑는데 잘 안 뽑힙니다. 왼팔로 뽑다 팔꿈치에 불이 나는 것 같아 오른팔로 뽑으니 용을 써도 왼팔로 할 때보다 속도가 안 났습니다. 들고 있던 마늘대들을 한군데로 모으고 두 팔로 뽑았는데 왼팔에 힘을 더 많이 썼는지, 아프던 게 도졌는지 뽑을 때마다 왼쪽 팔꿈치가 아팠습니다.
어제, 손부터 어깨까지 주욱 늘어진 통증을 견디며 사는 친구랑 의사들이 팔을 쓰면 안 된다고 하는데 살면서 어떻게 안 쓰겠냐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정기적인 보험료를 낼 수 없어 실비보험 들어놓은 게 없는 우리 여성농민들은 과잉의료를 권하는 사회 속에서도 병원 가는 게 쉽지 않다는 이야기, 병원 가는 게 쉽지 않아 병을 키워 더 많은 병원비를 낸다는 이야기 끝에, ‘젊어 농땡이가 늙어 보약보다 낫다’는 농촌의 전설적인 진실, 진실적인 전설을 결론으로 삼으며 웃어버렸습니다.
농촌진흥청에서 밝힌 2022년 농업인 업무상 질병현황을 보면 여성들의 농작업 관련 유병률이 6.3%로 남성 4.5%보다 높으며 근골격계질환의 유병률은 6.3%로 남성 4.3%보다 높습니다. 여성농민들에게 자주 생기는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제도가 2022년부터 시작됐습니다. 농작업으로 인해 자주 발생하는 여성농민들의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검진으로 근골격계, 심혈관계, 골절·손상위험도, 폐기능, 농약중독 총 5개 영역 10개 항목에 대해 2년 주기로 검진하며 농작업성 질환의 조기 진단과 사후관리·예방 교육 그리고 전문의 상담도 제공하며, 검진비용의 90%를 지원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2년간의 시범사업이 끝났음에도 아직까지는 3만명이 대상입니다.
오랜 농사일로 허리가 90도로 구부러진 어르신이 실외 노인 보행기(밀차)를 밀면서 도로를 가로질러 가시는 것을 기다리면서 수많은 생각을 했던 내게, 특수건강검진제도는 두 손 들어 환영할 정책입니다. 전국적으로, 나이 제한을 두지 말고 모든 여성농민들에게 특수건강검진의 혜택이 돌아가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