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차농 쥐어짜는 ‘농지임대수탁 수수료’

  • 입력 2024.03.17 18:00
  • 수정 2024.03.17 19:06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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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전남 장흥군에서 한국농어촌공사로부터 논을 임차해 농사를 짓는 양동일씨가 지난 12일 비가 흩뿌리는 흐린 날씨 속에서도 '농지임대수수료폐지'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들녘 위에 서 있다. 양씨는 농지임대수수료에 대해 “공사가 농민을 상대로 돈놀이한다고 비판할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한승호 기자
전남 장흥군에서 한국농어촌공사로부터 논을 임차해 농사를 짓는 양동일씨가 지난 12일 비가 흩뿌리는 흐린 날씨 속에서도 '농지임대수수료폐지'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들녘 위에 서 있다. 양씨는 농지임대수수료에 대해 “공사가 농민을 상대로 돈놀이한다고 비판할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한승호 기자

농지임대수탁 수수료(농지임대수수료)는 한국농어촌공사(사장 이병호, 공사)가 농지 소유주를 대신해 농지임대 업무를 해준 대가로 농지 소유주에게 부과하는 돈이다. 농지 소유주는 이를 공사에 직접 내지 않고, 매년 받는 임대료에서 차감하는 방식(연간 임대료의 5%)으로 납부한다. 이 돈은 공사의 인건비, 출장비(계약체결 전후, 채권·사후관리 등 현장 조사), 시스템 개발·운영비, 계약 안내와 임대차료 고지 등 통신비, 사업 홍보비 등에 쓰인다. 간단히 말해 임대차 관련 업무에 대한 ‘행정서비스 비용’으로 수익자(농지 소유주) 부담이 원칙이다.

당연히 필요해 보이는 이 수수료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뭘까. 먼저 형식상 농지 소유주가 납부하지만 사실상 임차농 주머니에서 나가기 때문이다. 부동산학에서 말하는 ‘조세의 전가와 귀착’이란 개념을 보면 이해가 쉽다.

전가란 임대인(집주인)이 내야 할 세금이 많아지면 임대료를 올려, 그 상승분을 임차인(세입자)에게 떠넘긴다는 뜻이다. 이때 임차인에게 선택지마저 별로 없다면(계약할 집이 별로 없거나 가격 차이가 없는 등) 임차인은 그 상승분을 피하기 어렵다(귀착). 물론 선택지가 많으면 귀착을 피할 수도 있다. 농지임대수수료 역시 비슷한 원리다. 농지 소유주는 수수료가 많아지면 임대료를 올리거나 임차인에게 따로 받아내는 방식으로 그 부담을 임차인에게 전가할 수 있고, 공사는 이래저래 수수료가 많아지니 나쁠 건 하나 없다.

이 수수료가 농지 임대료 상승과 연동돼 있다는 점도 문제다. 농지 임대료가 오르면 수수료도 요율(5%)만큼 따라 오른다. 또 수수료는 해마다 부과되니 소유 농지의 일부를 임대위탁해야 하는 자경농의 부담도 커진다. 시장경제에서 임대료가 오르는 건 자연스럽지만, 연 농업소득이 1,000만원 미만으로 추락하고 농업 생산비까지 폭등한 상황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특히 논벼(쌀)는 생산비(10a당)에서 토지용역비(임대차료) 비중이 가장 높은 작물인데, 그 비중은 전국 평균 32.3%에 이른다. 지역별로는 전북(41.4%), 전남·충남(32.2%), 경북(31.5%) 순이다(2022년 기준, 2023년은 미발표). ‘생산비도 못 건진다’는 농업 현장에서 이 같은 임대차료 비중은 농민 소득을 빨아들이는 늪과 같다. 특히 임차농 규모가 전체 농가의 절반(통계청 2022년 기준 50%)인 상황에서 이는 농민들에게 절박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이에 비판과 개선 요구가 수년간 거듭됐지만, 공사는 ‘정부와 개선 방안을 논의 중’이란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지난달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농민들이 전남 나주 공사를 찾아가 이뤄진 양측 대표단 면담에서도 ‘종합적 검토’, ‘농림축산식품부와의 협의 및 건의’가 언급됐지만 개선방안은 여전히 “계획 중”이다.

공사는 기본적으로 ‘농지임대수수료는 농지 소유주의 임대료에서 차감되므로 임차농이 부담하는 건 아니’라는 취지로 대응해 왔고 수수료율도 점차 낮춰 왔다는 입장이다. 이는 물론 사실이지만 매우 옹색한 항변이다. 수수료는 결국 임차농이 낸 돈에서 나가고, 수수료율(법정 임대수탁 수수료율은 ‘총 임대료의 12% 이내’)도 낮춘 지 10년이나 지났기 때문이다. 2014년부터 변함없이 5%다. 그사이 농민은 농업의 포기를 고민하는 지경에 놓였다. 농지임대수수료, 나아가 농지 임대료 문제에 대한 농민과 공사 간의 평행선은 언제쯤 좁혀질 수 있을까. 결국 실질적 개선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농식품부와 공사의 진정성은 확인될 길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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