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은행, 농사 못 지을 ‘농지’도 수탁받아 임차

농지법 강화 이후 비농민의 농지 소유 돌파구로 자리매김

현장조사 및 사후관리, 지사 직원 1~2명이 근근이 담당

지침상 현장조사 해야 하나 본사 확인·감독은 의무 아냐

  • 입력 2022.05.22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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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비농민 소유의 방치된 농지 등 농사짓기 어려운 농지도 수탁받아 임차하는 한국농어촌공사 농지은행 사업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비농민 소유의 방치된 농지 등 농사짓기 어려운 농지도 수탁받아 임차하는 한국농어촌공사 농지은행 사업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한승호 기자

 

한국농어촌공사(사장 이병호, 공사) 농지은행이 비농민을 비롯해 상속농과 고령농 등으로부터 수탁받아 임대하는 농지에 대한 검증 절차가 보다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농기계 출입이 불가하거나 농지에 폐자갈 또는 산업폐기물 등이 매립돼 있는 경우, 심지어 고물상이 운영되고 있거나 하우스 반동만 덩그러니 남은 농지까지 임차인 선정 공고에 나왔던 것으로 확인돼서다.

새롭게 농촌에 정착한 청년농민들을 비롯해 영농을 지속 중인 농민들 또한 농지를 구하기 위해 농지은행을 가장 많이 활용하고 있다. 아울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농지 투기 이후 개정·강화된 농지법의 영향으로 농지를 소유한 비농민의 관심 또한 농지은행에 쏠린 상태다. 농지은행에서는 여전히 수탁제외요건에 해당되지 않은 비농민 소유 농지를 위탁받을 수 있고, 농지를 농지은행에 수탁한 비농민은 추후 세제 감면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에 인터넷에 비농민 소유 농지만 검색해도 농지은행을 통한 꼼수와 탈법·불법 방법이 버젓이 소개되고 있는 실정이다.

비농민 소유의, 사실상 방치되다시피 했던 농지가 농지은행을 통해 농민에게 공급되다 보니 부작용도 적지 않다. 실제 적지 않은 수의 청년농민들이 농지은행을 통해 영농 부적합 농지를 임차받았거나 받을 뻔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경기도의 A농민은 “산업폐기물이 매립돼 있으면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농지은행에서 농지를 빌리고 난 다음 농사 지으려 경운을 깊게 하다 보면 폐기물이 나오는 거다”라며 “주변 다른 농민들도 집 근방에 농지가 없어 농지은행을 통해 조금 먼 지역에 농지를 빌릴 땐 대개 위성지도로 상태를 확인하는데 실시간 적용되는 게 아니다 보니 빌리고 난 뒤 농지에 출입구가 없다는 것 등을 뒤늦게 아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처럼 농지를 소유한 비농민의 법망 회피수단으로 자리 잡아버린 농지은행은 부족한 인력과 부실한 지침 및 내규 등으로 농사에 부적합한 농지마저 수탁받고 심지어 이를 농민에게 빌려주고 있다. 공사 농지임대수탁사업 업무지침에는 “농지소유자가 임대위탁을 신청하면 현지조사와 공고 등을 거쳐 임차인을 선정한다”고 적혀 있다. 농지소유주의 농지가 임대수탁 제외농지에 속하지 않을 경우 서류검토와 농지 현지조사를 거쳐 임차인 공고로 이뤄지는 구조다. 지침에 따르면 현지조사는 △실제 지목 및 재배작물 종류 △농지보전 상태 및 경지정리·수리안전답 여부 △농기계 출입 가능성 및 접근성 등을 살피는 신청농지 조사와 △농지에 부속된 건물 등의 건축물 현황 △ 시설물 현황 및 보존상태 등을 확인하는 신청시설물 조사로 구성된다.

하지만 문제는 농지은행 사업의 모든 절차가 ‘지사’에서 이뤄진다는 데 있다. 지사에서는 1명의 인력이 농지은행 사업을 전담하거나 그마저도 없어 다른 업무와 병행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특히 용수 공급에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하는 영농철에는 농지은행을 비롯한 다른 업무 담당 인력까지 대거 용수 공급 분야로 차출돼 수탁 신청농지 현장조사를 종종 위성지도 확인으로 갈음하는 실정이다. 농지은행 사업을 담당하는 공사 각 지역본부의 지사가 모든 관할 농지를 위성지도로만 조사·확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든 농지를 현장조사하는 것도 아니란 게 공사를 통해 확인됐다.

또한 지사의 농지 현장조사 업무를 지역본부나 본사에서 관리·감독하지 않는 것도 지침상의 빈틈이다. 농지임대수탁사업의 신청접수, 대상결정 및 현지조사, 계약 및 사후관리까지 전부 지사가 관리함에도 지역본부와 지사에서는 신청접수와 계약 이외에 어떠한 것도 관할하지 않는다. 사후관리마저도 본사가 행정안전부와 국토교통부로부터 자료를 제공받아 신고되지 않은 농지 소유주 변경 등의 건을 확인하면 이를 지사에 내려 조치하는 정도다.

결국 임차받은 농지가 영농에 부적합하더라도 농민이 직접 농지은행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걸러지지 않는 상황인 셈이다. 물론 임차받을 농지가 영농에 적합한지 농민 본인이 직접 확인하는 것 또한 필수적이라 할 수 있지만, 농지를 수탁받고 임대하는 과정에서 수수료를 챙기는 공사에서도 농지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고 검증해야 한다. 특히 비농민의 농지 소유를 합법화해주는 부작용 탓에 최근 농지은행에 수탁되는 농지가 이전보다 늘어난 상황에서 적합성을 따지지 않은 불량 농지가 농지은행을 통해 공급된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한편 이와 관련해 농민들은 “지사에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관할 농지를 모두 일일이 확인할 수 없다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비농민은 부동산 투자 목적으로 농지를 구매하고 이를 농지은행에 맡기면서 세제 혜택까지 누리는데 관리 안 된, 농사짓기 어려운 농지가 농지은행을 통해 거래되다 보니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에게 전가된다”며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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