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임대수탁 수수료, 농민 주머니 말고 ‘정부 재정’에서

“농지관리는 국가 영역, 당연히 정부가 책임져야”

연간 임차료 예치 개선 및 임대료 상한 도입 필요

  • 입력 2024.03.17 18:00
  • 수정 2024.03.17 18:50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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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논을 임차해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농업 생산비가 폭등한 현실을 감안할 때 농지임대수탁 수수료 또한 부담일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책임지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남 담양 들녘에서 한 농민이 경운기로 논을 갈고 있다. 한승호 기자
논을 임차해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농업 생산비가 폭등한 현실을 감안할 때 농지임대수탁 수수료 또한 부담일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책임지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남 담양 들녘에서 한 농민이 경운기로 논을 갈고 있다. 한승호 기자

“계약 임대료가 10만원이라면 농지 주인은 10만원을 다 받고 싶은데 왜 (수수료를) 까고 주느냐고 한다. 그럼 임차농은 고지서대로 이미 돈을 내고서도 주인에게 더 줘야 한다. 계약엔 없었어도 본인들끼리 추가로 주고받는 거다.”

한국농어촌공사(공사)를 통해 논 1700㎡(약 500평)를 임차한 양동일(전남 장흥군)씨 사례다. 개별 농민 간 거래에서 별도 수수료 없이 합의된 임대차료를 주고받았던 방식을 농지 소유주가 고수하는 경우다. 농민들에 따르면 이 같은 사례는 흔한 것으로 파악된다. 따로 추가 금액을 주고받지 않더라도 ‘(주인이 내줘야 할) 로터리값에서 제한다’라거나 ‘쌀을 원하는’ 경우처럼 여러 방식으로 농지임대수탁 수수료(농지임대수수료)가 임차농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2023년 공사의 농지임대수수료 수입은 78억5200만원으로 지난 2018년(46억9900만원)보다 약 67% 증가했다. 전남 17억8800만원, 전북 14억5800만원, 충남 12억8400만원, 경북 8억390만원 규모다. 지난 6년간(2018~2023년) 가장 많은 수수료를 낸 지역은 전남·북으로 번갈아 부동의 1·2위를, 충남·경북은 각각 부동의 3·4위를 기록했다.

농지임대수수료는 5~10년까지 계약 기간 동안 매년 부과되며 농지 임대료 상승과 임대위탁 건수 증가 등에 따라 공사의 수취 규모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임차농의 부담도 가중되는 만큼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요구도 이어져 왔다.

지난달 15일엔 구례·순천·영암·해남 등지의 농민 50여명과 오미화·박형대 전남도의원 등이 전남 나주 공사를 찾아가 농지임대수수료 폐지를 촉구했다. 이 자리를 마련한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의장 윤일권, 전농 광전연맹)은 “논농사의 경우(호남 기준) 생산액의 25~35%를 임대료로 지불하는 실정”인데 “농지임대수수료 5%까지 붙어 이중·삼중의 고통이 된다”고 토로했다. 박형대 의원(진보당, 장흥1)도 “2023년 계약유지 건은 21만6006건, 수수료 수익은 78억원에 이른다. 거래금액의 0.9%인 부동산 중개보수 상한요율에 비춰 5%는 터무니없이 높다”라고 지적했다.

양동일씨는 “나처럼 적게 지으면 좀 낫지만, 4000~5000평만 돼도 큰 부담이다. 1000평당 임대료가 100만원정도니 거기서 3~5% 떼어 봐라. 게다가 농사짓기 전이라 수입이 없고 농자잿값도 비싼 데 땅을 빌리자마자 1년 치 임차료를 선불로 내니 얼마나 불합리한가. 정작 공사는 농지 주인에게 1년 뒤에나 임대료를 지급한다. 임대료 보관에 따른 이자가 발생할 것이고 거기에 수수료까지 별도로 떼니 공사가 농민 상대로 돈놀이한다고 비판할 수밖에 없지 않나. 임차료는 반드시 후불제여야 한다”라고 일갈했다.

이에 대해 공사는 “이는 임차료 선납이 아니라 채권확보 방법(연대보증인·보증보험·근저당)의 하나인 담보금 예치에 해당하며 연간 임차료 금액만큼 예치하는 것”이라며 “채권확보는 임차료에 대한 채권 회수를 위해 필수적 조치다. 또한 예치된 임차인의 담보금은 임차인의 편의를 위해 계약 기간의 마지막 연차에 납부할 임대료에 갈음해 처리되며, 이때 임차인이 추가로 부담하는 임차료는 없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농민 입장에선 임차료를 미리 내는 것과 같은 결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양동일씨는 말했다. “예치를 못하면 보증인을 세우라고 하더라. 연대보증제도가 없어진 게 언제인데 시대착오적이다. 그럼 보증보험은 어떤가. 10년(계약기간) 걸 다 끊으면 보증보험료도 비싸다. 그렇다고 1년 단위로 끊을 수도 없다. 농민에겐 이래저래 다 부담일 뿐이다. 선납은 물론 행정서비스 비용을 농민이 다 부담하도록 하는 것 모두 너무나 과도하다.”

논 7600㎡(약 2300평)를 임차한 김동현(전남 장흥군)씨는 “공사의 역할은 소작을 금하고 농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건데, 제 역할은 하지 않고 농지임대수수료나 받고 수익사업하듯 하는 건 잘못이다. 지금 전체 농민의 70% 이상이 임차농인 상황에서 공사는 농지 임대차가 사실상 소작 형태로 왜곡되지 않도록 정책을 개선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농지임대와 관련된 수수료를 없애고, 개인과 고령농 등의 농지를 매입해 농민들에게 저리로 제공하는 임대사업을 직접 수행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박형대 의원이 지난 12일 전남도의회 본회의장에서 ‘한국농어촌공사 농지임대수수료 폐지 촉구건의안’을 발의했다. 전라남도의회 제공
박형대 의원이 지난 12일 전남도의회 본회의장에서 ‘한국농어촌공사 농지임대수수료 폐지 촉구건의안’을 발의했다. 전라남도의회 제공


“농지임대수탁사업비, 정부 재정으로 충당해야”

대안으로 공사의 농지임대위수탁 사업에 드는 기본 경비는 농민 주머니가 아닌 정부 재정에서 충당해야 한다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관련해 지난 12일 전남도의회 본회의(제378회 임시회 제1차)에선 ‘한국농어촌공사 농지임대수수료 폐지 촉구 건의안(건의안)’이 의결됐다.

건의안을 대표 발의한 박형대 의원은 “농지임대수탁은 국가 차원에서 경자유전의 원칙과 합리적 농지관리를 확립하는 것으로 그 수수료는 당연히 정부 재정으로 충당돼야 한다”라며 “부당한 농지임대수수료를 반드시 폐지하고 농지투기와 불법 소유 금지 등 엄격하고 효율적인 농지관리를 위해 농지관리청 설치를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실 농지임대수수료는 정부 의지에 따라 빠른 개선이 가능하다. 농지의 임대·사용대·매도수탁 수수료 요율 기준이 규정된「한국농어촌공사 및 농지관리기금법 시행령」은 국회 의결 없이 개정할 수 있고, 관련 예산 확보가 관건인 문제다. 시장원리에 묶여 해법이 복잡할 수밖에 없는 농지 임대료 문제와 대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에 전농 광전연맹도 “농지임대수수료 폐지를 농지 개혁의 일차적 과정”으로 보고, “국가 소유(농지은행 보유 농지) 농지에 대한 임차료 최소화나 면제를 통해 경자유전의 원칙을 현실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나아가 수수료 부담은 날로 상승하는 농지 임대료 문제와도 연결되는 만큼 임대료 상한제(농산물 생산가액의 10% 이내)도 필요하다고 본다.

지난 전농 광전연맹의 기자회견에서 농민들은, ‘계약할 때 임차료가 너무 높게 책정됐다며 오히려 농지 소유주가 뒤에서 일부 금액을 돌려준 사례’나 ‘임대차료 합의 과정에서 공사 담당 직원들이 가능한 가장 높은 시세를 제시하고 지주가 이에 동의하면 따를 수밖에 없었던 사례’를 전하며, 수수료 수익을 올리기 위해 공사가 임대차료를 일부러 높게 책정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 바 있다.

무엇보다 농업 생산비가 폭등한 상황에서 임대차료 비중이 늘어날수록 농업소득이 결정적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는 문제도 주목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한 농민은 “농업(논) 생산비에서 임대차료가 30~40%를 차지한다. 지금도 3.7제나 4.6제(소작농과 지주간 수확물 분배 비율)가 존재하는 셈이다. 조선시대에나 나올 법한 얘기 아닌가. 궁극적으론 임대차료를 농산물 생산가액의 10%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한편 지난달 전농 광전연맹과의 면담에서 공사 대표단은 농지임대수수료 폐지 요구에 대해 `종합적·전향적으로 검토', `농식품부와의 협의 사항으로 개선방안을 건의'하겠단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한 진행 상황에 대해 공사는 지난 13일 “제도 취지 등을 고려해 효율적 방안에 대해 검토 중”이며 “향후 제도개선(안)을 마련해 농식품부와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사가 `검토', `계획'에서 몇 걸음이나 더 나아갈지 농민들의 눈이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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