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등 통신자료 수집으로 민간인 사찰

당사자에 정보 제공 통지 없이도 민감정보 광범위 사찰 가능

정권 공안탄압 위해 악용 계속, 통신자료제공 절차 강화해야

  • 입력 2023.07.07 09:34
  • 수정 2023.07.07 09:47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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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이 민간인을 대거 사찰한 사실이 드러났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공안탄압저지대책위원회가 최근 진보활동가, 노동자, 농민 등 114명에 대한 통신자료 제공 내역을 조사한 결과, 수사 당국이 제공받은 통신자료 건수는 190건에 달했다.

이에 두 단체와 민주노총은 지난 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범위하고 무차별적인 민간사찰을 즉각 중단하라”고 규탄했다.

이날 민간인 사찰 피해 당사자를 대표해 문병모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부위원장이 자신의 사례를 전했다. 그는 올해 두 번(3, 4월) 서울경찰청이 자신의 통신자료를 제공받았다는 사실을 개인정보 공개 청구로 알게 됐다. 문 부위원장이 한 사건의 피의자와 통화했다는 게 이유였다.

문 부위원장은 “내 정보가 서울경찰청에 제공됐다는 사실을 몰랐다. 내 정보인권은 보호받지 못했다”라며 “더 심각한 문제는 여러 청구 절차를 거쳐 알아낸 해당 사건의 내용과 피의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거다. 답답함과 불안함을 거쳐 분노가 치솟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교조는 간부들과 통일위원회 위원들을 중심으로 통신자료 제공 내역을 조회했고, 그 결과 교사 20여명의 개인정보가 제공된 것을 확인했다. 전교조는 지부, 지회, 전현직 간부까지 넓혀 통신자료 제공 사례를 더 확보한 뒤 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알릴 예정이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공안탄압저지대책위원회가 지난 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과 경찰은 민간사찰을 즉시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공안탄압저지대책위원회가 지난 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과 경찰은 민간사찰을 즉시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상임이사는 수사당국이 통신자료 제공 제도를 반인권적으로 악용하는 상황과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현재「전기통신사업법」83조는 `법원, 검사, 수사관서의 장, 정보수사기관의 장이 재판과 수사,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을 위해 이용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등 대한 열람이나 제출을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요청하면 사업자는 그 요청을 따를 수 있다'고 규정한다. 통신자료제공 요청은 요청사유, 해당 이용자와의 연관성, 필요한 자료의 범위를 기재한 서면(자료제공요청서)으로 해야 하지만, 긴급한 사유가 있다면 서면 없이도 가능하다.

장 상임이사는 “(해당 조항은) 수사기관이 통신자료를 가져갈 때 특별한 요건과 절차를 규정하지 않고, 대상자가 피의자인지 여부도 상관없다. ‘수사상’, ‘수사를 위해’라고 적은 서면만 내면 얼마든지 다수의 통신자료를 가져갈 수 있다”며 “통신자료 요청 건수는 연간 500만~600만건에 이른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수사당국은 이를 통해 얻어낸 주민등록번호로 개인이 이용한 모든 인터넷 서비스의 내용도 알 수 있어 구조적으로 광범위한 사찰이 가능한 셈이다.

장 상임이사는 “주민등록번호까지 포함하는 통신자료제공은 굉장히 민감하므로 자료 제공 시 최소 법원의 허가를 받는 절차가 마련돼야 피해를 막을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지난 2016년 500명이 청구인으로 나서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는 2022년 7월 헌법불합치(2016헌마388)로 판결했지만, 당시 청구인들이 요구한 법원 허가 절차는 수용되지 않았고, 통신자료 제공 시 당사자에게 통지하도록 법 개정을 주문했다. 이 조항은 오는 12월 31일을 시한으로 개정될 때까지만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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