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이 민간인을 대거 사찰한 사실이 드러났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공안탄압저지대책위원회가 최근 진보활동가, 노동자, 농민 등 114명에 대한 통신자료 제공 내역을 조사한 결과, 수사 당국이 제공받은 통신자료 건수는 190건에 달했다.
이에 두 단체와 민주노총은 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정권과 수사 당국은 광범위하고 무차별적인 민간사찰을 즉각 중단하라”고 규탄했다.
이날 민간인 사찰 피해 당사자를 대표해 문병모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부위원장이 자신의 사례를 전했다. 그는 올해 두 번(3, 4월) 서울경찰청이 자신의 통신자료를 제공받았다는 사실을 개인정보 공개 청구로 알게 됐다. 문 부위원장이 한 사건의 피의자와 통화했다는 게 이유였다.
아울러 전교조는 간부들과 통일위원회 위원들을 중심으로 통신자료 제공 내역을 조회했고, 그 결과 교사 20여명의 개인정보가 제공된 것을 확인했다. 전교조는 지부, 지회, 전현직 간부까지 넓혀 통신자료 제공 사례를 더 확보한 뒤 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알릴 예정이다.
이날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상임이사는 정부와 수사당국이 통신자료 제공 제도를 반인권적으로 악용하는 상황과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현재 「전기통신사업법」 83조는 법원, 검사, 수사관서의 장, 정보수사기관의 장이 재판과 수사,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을 위해 이용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가입일이나 해지일에 대한 열람이나 제출을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요청하면 사업자는 그 요청을 따를 수 있다고 규정한다. 통신자료제공 요청은 요청사유, 해당 이용자와의 연관성, 필요한 자료의 범위를 기재한 서면(자료제공요청서)으로 해야 하지만, 긴급한 사유가 있을 땐 서면 없이도 가능하며 사유 해소 뒤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서면을 제출하게 돼 있다.
장 상임이사는 “(해당 조항은) 수사기관이 통신자료를 가져갈 때 특별한 요건과 절차를 규정하지 않고, 대상자가 피의자인지 여부도 상관없다. ‘수사상’, ‘수사를 위해’라고 적은 서면만 내면 얼마든지 많은 이의 통신자료를 가져갈 수 있다”면서 “수사기관이 누군가의 뒤를 캐고 싶을 때 매우 편리하게 이용하는 제도다. 통신자료 요청 건수는 연간 500만~600만건에 이른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수사당국이 통신자료 제공 요청으로 획득한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개인이 자기 주민등록번호로 이용한 모든 인터넷 서비스의 내용도 알 수 있어 구조적으로 광범위한 사찰이 가능한 셈이다.
장여경 상임이사는 “이 제도는 전부터 많은 문제가 지적됐다. 박근혜정부 때인 2015년 당국에 제공된 통신자료는 통계에 잡힌 것만 1,000만건이었다”라며 “이렇게 많은 국민을 국가가 적대시하고 반국가세력이라며 불온시하면 더 많은 이의 통신자료가 광범위하게 제공될 우려가 있다. 주민등록번호까지 포함하는 통신자료제공은 굉장히 중요하고 민감하므로 자료 제공 시 최소 법원의 허가를 받는 절차가 마련돼야 피해를 막을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지난 2016년 500명이 헌법소원 청구인으로 나서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관련 조항 가운데 ‘검사 또는 수사관서의 장, 정보수사기관의 장의 수사,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 방지를 위한 정보수집을 위한 통신자료 제공요청’ 부분에 대해서만 2022년 7월 헌법불합치(2016헌마388)로 판결했다. 이 조항은 오는 12월 31일을 시한으로 개정될 때까지만 적용된다. 당시 청구인들이 요구한 법원 허가 절차는 수용되지 않았고, 통신자료 제공 시 당사자에게 통지하도록 법 개정을 주문했다. 현재 관련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단계에 있다.
이날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민간인에 대한 광범위한 통신자료 조사를 공안탄압의 일종으로 보고, 반인권적 수사 관행을 멈추지 않으면 윤석열정권 심판과 퇴진 투쟁까지 나아가겠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