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은 없고 단속만 … “이럴 거면 농촌 인력 책임져야”

‘이주노동자 단속’ 후폭풍 맞은 전남 나주시 다시면 돌아보니

  • 입력 2023.06.25 18:00
  • 수정 2023.06.26 06:27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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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막바지 양파 수확 작업이 한창인 지난 20일 전남 나주시 다시면의 한 양파밭에서 내국인 노동자가 홀로 비닐을 걷고 있다. 이날 양파 수확 및 비닐 제거 작업을 의뢰한 농민에 따르면 앞서 같이 일하던 이주노동자들은 어떠한 설명도 없이 작업 도중 밭에서 사라졌다. 한승호 기자
막바지 양파 수확 작업이 한창인 지난 20일 전남 나주시 다시면의 한 양파밭에서 내국인 노동자가 홀로 비닐을 걷고 있다. 이날 양파 수확 및 비닐 제거 작업을 의뢰한 농민에 따르면 앞서 같이 일하던 이주노동자들은 어떠한 설명도 없이 작업 도중 밭에서 사라졌다. 한승호 기자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의 한 들녘에 접한 국도변에 농사용 트럭이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 트럭 난간을 붙잡고 서있는 농민 A씨는 연거푸 담배만 태우며 자신의 양파밭을 바라보고 있다. 양파 수확기가 거의 저물어가는 지금, 밭에는 내국인 노동자 한 명만이 남아 힘겹게 비닐을 걷고 있었다.

사정은 이랬다. 약 1만평 규모의 양파농사를 짓는 A씨는 이날 인력중개업체를 통해 인당 13만원을 약속하고 10명의 노동자를 불렀다. 한 필지의 작업을 끝내고 수확한 양파를 망에 담아 공터에 내려놓기까지는 했는데, 딱 거기까지였다. 이들은 이유도 명확히 설명하지 않은 채 오전 작업 중 순식간에 사라져버렸고, 현장에는 걷지 못한 비닐과 양파를 실어둔 트럭만 남았다. 곧 전국적인 폭우가 예정돼 있어 이제 A씨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고, 그저 발만 구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곳만의 풍경이 아니다. 지난 6월 중순께 전남 일대 양파 주산지에선 한창 수확에 나서야 할 이 시기 농민들이 일손 자체를 구하지 못해 진땀을 뺐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이 워낙 심한 탓에, 운이 나쁘면 작업이 진행 중에도 노동자들이 잡혀가거나 도망치곤 했다.

나주시를 중심으로 실태를 주시하고 있는 김영욱 나주시농어업회의소 사무국장은 “무안, 함평 쪽 이주노동자 단속이 너무 심해 도저히 양파 수확을 못할 지경이다. 어제 무안 운남면에서 60명이 잡혀갔고 그전에도 잡혀갔다고 하는데, 인근 지역에서 이런 일이 생기니 나주에서까지 외국인 인력 차량이 싹 숨어버렸다”라며 “전화 돌리다보니 인력반 두 팀이 사라졌다. 심지어 밭에서 일을 하던 도중에도 어느 지역에서 단속을 당했더라 하는 전화를 받고는 바로 철수해버린다. 불안해서 일을 할 수가 없어 큰 일”이라고 설명했다.

 

 

한번 단속 뜨면 마을 단위로 일 멈춰

수확기 하루만 쉬어도 인건비 폭등

공급이 대폭 줄어드니 자연스레 인건비가 올라가고, 이는 안 그래도 비료·유류·농약 등 자재류 가격 인상으로 고충을 겪고 있는 농민들에게 또 하나의 큰 시련을 안겼다. 현재 이 일대에서 농민들이 1인당 지급해야 하는 일당은 최소 13만원, 많게는 16만원 이상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인력난을 겪던 시기의 수준과 비슷하거나 더 높다. 지난 4월 나주시의회가 ‘11만원 상한선 제한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지만, 현장에서는 어림도 없는 얘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시면의 또 다른 들녘에서 작업 중이던 B씨는 “양파 생산비 중에 인건비가 70%는 될 것”이라며 “심고 뽑고 망에 담는 데만 평당 6,000원이 넘는다”라고 설명했다. C씨는 “생산원가를 따져보면 양파농사를 처음 시작한 7년 전에는 20kg 한망 당 6,500원 정도 했는데 지금은 1만1,000원이 넘어간다”라며 “이러니 양파값이 1만2,000원 나오면 로터리를 쳐 버리는 거다. 그 이하면 양파는 아마 다 중국에서 수입해 먹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농자재와 달리 인력의 문제는 농작업 자체가 늦어지거나 아예 멈춰버릴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욱 크다. 수확 시기를 놓치면 상품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니 현장 상황에 따라 인건비는 그야말로 천정부지로 치솟기까지 한다. 또 다른 농가 D씨는 “어떻게든 일을 할 수 있게 해야지, 솔직한 말로 단속 한 번 뜨면 면 전체가 일을 하나도 못 하는데 농사를 어떻게 짓나”라며 “그렇게 하루 일을 못하면 일이 몰리는데 시간은 한정돼 있으니, 다음 날에는 그냥 부르는 대로 오르는 거다”라고 말했다. 이날 다시면에서 아직까지 수확작업을 마치지 못한 농가들은 현 시점이 통상보다 4~5일이나 늦은 시기라고 말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기댈 수밖에 없는 현실

최근 수확기를 거친 마늘·양파 등 노지 주요 작목의 농작업만 따져 봐도, 대부분의 농가는 적정 인원만 구할 수 있다면 파종이나 수확에 하루, 이틀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치 않다. 농가들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쓰고 싶어 쓰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런 한시적 농작업에 알맞은 인력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제도권 내에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각 지자체와 농협 등에서 운영하는 내국인 농촌인력중개센터가 있지만, 이제야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는 실정인데다 센터의 숫자가 늘어난다고 해서 내국 인력의 수가 늘어나는 것이 아닌 만큼 농번기의 부하를 감당해내기엔 역부족이다.

최근 법무부가 농가들의 어려움도 고려하겠다며 농림축산식품부와 함께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를 손보기는 했다. 지난 5월 기존 5개월의 최대 체류기간을 8개월까지 늘리고 올해 입국이 이미 확정된 2만6,788명에 더해 1만3,000여명을 추가로 배정했는데, 단속 이전에도 농민들이 인력 수급에 애를 먹고 있었던 현실을 고려하면 이는 턱없이 모자라는 숫자다. 나주시를 예로 들면 올해 확보한 계절근로자는 255명인데, 이 가운데 공공형 계절근로는 50명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이전해 대비 8배가 불어난 숫자로 여타 지자체에 비하면 규모가 큰 편이다.

무엇보다 현 제도 상 계절근로자의 대부분은 농가가 직접 최소 몇 개월의 ‘고용’을 책임져야 한다. 시설원예 위주의 농가가 아닌 이상 좋은 대안이 될 수 없고, 여전히 많은 농가들이 때로는 웃돈까지 내밀어가며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알선하는 인력중개업체를 찾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제는 이주노동자들 역시 그런 실태를 잘 알고 있는 까닭에 농가의 협상력은 거의 바닥 수준으로 내려앉은 상황이다. 인력중개업을 하는 E씨는 이 문제에 대해 “스스로 몸값이 높은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어서 인터넷을 통해 항상 시세를 공유하고, 가격을 맞춰주지 않으면 도망가기 일쑤”라며 “농가가 원하는 가격을 최대한 맞춰주려고 노력하지만 우리로써도 인력을 붙잡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라고 어렵사리 하소연했다.

농민들은 이주노동자들을 향한 복합적인 심정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기여를 인정하고 제도와 통제 아래 두는 변화를 통해 농촌에 더 이상의 피해가 없길 바란다. D씨는 “농촌에 이주노동자들이 모는 트럭이 양파 싣고 돌아다니는데 면허증은 있는지, 사고가 나면 책임은 누가 지는지 궁금하다”라며 “양성화를 안 해주면서 불법을 지금까지 묵인한 결과인 만큼 더 이상은 제도 개편을 미루면 안 된다”라고 말한다.

 

 

지난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반인권적인 2차 정부 합동단속 규탄 공동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불법인 사람은 없다”며 거리에 눕는 상징의식을 펼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반인권적인 2차 정부 합동단속 규탄 공동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불법인 사람은 없다”며 거리에 눕는 상징의식을 펼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이주노동자 역할 인정하고, 농촌 인력 전반 관리 나서야“

D씨 뿐만 아니라 이날 만난 농가들 모두 농촌 이주노동자 전반을 국가가 관리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농번기 위주로 짧은 기간 동안 지방정부가 직접 고용해 일 단위로 농가에 배분하는 계절성 일용직 인력의 규모가 대폭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관공서를 통해 올바른 형태로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인데, 제도의 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정부가 지난해 시범도입한 ‘공공형 계절근로자’ 제도의 핵심내용과 일맥상통했다.

A씨는 “이제는 나라에서 직접 관리를 할 때가 됐다. 지자체에서 데리고 있다가 필요한 농가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이면 인건비 관리는 물론이고 불법체류와 그에 따른 각종 문제도 사라진다”라며 “문제는 안 고치다 이제 와서 단속만 하는데 이렇게는 양파 농사지어 다 인건비로 줘 버리니 감당이 안 된다”라고 비판했다. C씨는 “비전문취업 비자(E9)로 들어와 (취업 유지가 안돼서) 그대로 불법이 돼 계속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농촌 등지에서 일용직으로 일하게 되고 농촌에선 이들이 필요한 만큼 제도적으로 안착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라고 바랐다.

김영욱 나주시농어업회의소 사무국장은 “지자체가 현지에 직접 가서 직접 계약하고 데려와 관리한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브로커만 걸치지 않아도 돈을 더 벌기 위해 이탈하는 사례는 줄어들 것”이라며 “불법을 밀어내되 그만큼 합법적인 경로로 다시 들어올 수 있게끔 해야 하고, 특히 자기 나라에 갔다가 다시 온다고 하는 이들은 적극적으로 받아줘야 한다. 농사의 기술이나 작업 요령 등 한국 농업을 아는 인력들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농촌을 비롯해 수많은 기피노동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 보호에 나서는 이들은 이점을 특히 더 강조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이들을 ‘쓰다 버리는’ 취급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기여’의 측면을 고려해 사회의 일원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 15일 강압적 단속에 의한 인권 침해를 호소한 이주인권단체 공동기자회견에서 이영 신부(남양주외국인복지센터 대표)는 “코로나19로 인해 체류 외국인이 50만명이나 줄어든 가운데 미등록(불법체류) 체류자는 지난 2022년 41만명까지 치달았고 이 시기 미등록 체류자들이 한국 경제를 지탱해왔는데, 이제 신규 인력만을 도입한다면서 물리적이고 강압적인 수단으로 내쫓으려 하고 있다”라며 “단속은 해법이 되지 않으며, 제도권 내 양성화를 통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합법화만이 유일한 해법임을 알아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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