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의 오늘, 이 땅의 농민에게 닥칠 미래 돼선 안 된다

  • 입력 2023.03.12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 9일 후쿠시마 핵사고 12년 탈핵행진 준비위원회 주최로 서울 도심에서 열린 탈핵행진에 참가한 시민들. 구희현 친환경학교급식경기도운동본부 상임대표 제공
지난 9일 후쿠시마 핵사고 12년 탈핵행진 준비위원회 주최로 서울 도심에서 열린 탈핵행진에 참가한 시민들. 구희현 친환경학교급식경기도운동본부 상임대표 제공

있어선 결코 안 되는 일이지만, 만약 한반도에 대지진이 일어나 원자력발전소(핵발전소)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 정부는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을 위해 어떤 정책을 펼칠까? 핵발전소 인근에서 살기 두려워 이주대책을 마련하라는 주민들의 목소리도 외면하는 정부가, 과연 사고 이후 주민 생존권을 위한 근본대책 마련엔 적극적일까?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래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주민들에게 어떻게 행동했는지, 후쿠시마 주민들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반면교사’로서 살피며, 우리 정부는 어떻게 행동할 것일지 예측해 보자.

후쿠시마 참사가 농민에게 끼친 악영향

2011년 3월 11일 도호쿠 대지진 직후 발생한 후쿠시마 핵발전소 참사는 일본의 주요 곡창지대 중 하나인 후쿠시마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참사가 있고서 약 2주 뒤인 2011년 3월 24일, 후쿠시마현 스카가와시에서 30여년 간 유기농사를 지어온 한 농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양배추 등 11개 품목에서 ‘기준치 이상의 방사능 물질’이 나왔다. 평생 농지를 옥토로 가꾸고자 노력했던 해당 농민의 자부심은 무너졌다. 그의 아들은 “원전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울분을 토했다.

상처는 지금도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지난 2월 일본 농림수산성의 발표에 따르면, 핵발전소 사고로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현 12개 시·정·촌의 영농휴지면적(농사 중단면적)은 1만7,298ha에 달했는데, 그중 농사를 재개한 곳은 2021년 12월 기준 전체의 40%인 7,370ha에 그친다.

후쿠시마현 가쓰오마을의 반자와 후미오씨는 여전히 쌀을 생산해도 방사성 물질의 영향으로 인해 전량 폐기해야 한다. 빨라야 2024년부터 출하가 가능하리라는 진단이 나온다. 후쿠시마현 후쿠시마시의 야스다 카즈아키씨 역시 방사성 물질의 영향으로 인해 사고 이후 11년간 유자의 출하가 불가능했다. 주위에선 아예 “나무를 잘라버려라”며 농사 포기를 종용했다.

여전히 사고 발생지 인근에선 다량의 방사능이 검출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후쿠시마 농민들의 대응도 가지각색이다. 누군가는 아예 농사를 포기했고, 또 누군가는 ‘피난민’으로서 연고도 없는 타 지역에서 농사를 시작했다. 또 누군가는 “그래도 고향에서 농사짓다 죽겠다”며 방사능의 위험을 무릅쓰고 후쿠시마의 고향으로 돌아가, 일일이 기계로 농지와 생산물의 ‘방사능 검출량’을 확인하며 계속 농사짓는다. ‘먹거리 농사’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입을거리 농사’, 즉 유기농 방식으로 재배한 목화로 면제품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 ‘오텐토 선’의 사례는 본지에서도 소개한 바 있다.

사상 초유의 기괴한 캠페인, ‘먹어서 응원하자’

그렇다면 후쿠시마 주민들을 위해 일본 정부가 한 일은 무엇일까. 참사 이후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주민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펼친 수습책 중 하나가,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괴한 캠페인인 ‘먹어서 응원하자’였다. 간단히 말해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을 ‘먹어서’ 후쿠시마 주민들의 농산물 판로문제를 해결하고, 참사로 고통받는 후쿠시마 농민들을 ‘응원하자’는 취지였다. 당연히 일본 정부가 ‘먹자’고 권한 먹거리 중엔 방사능에 오염된 것이 적지 않았다.

의도야 후쿠시마 농민들을 돕자는 취지였지만, 결과적으로 ‘먹어서 응원하자’ 캠페인은 일본 정부의 추태로 기록됐으며, 오히려 후쿠시마라는 지역과 그곳의 농민에겐 씻을 수 없는 오명만 남겼다. 후쿠시마현엔 ‘방사능으로 뒤덮인 동네’라는 이미지만 남겼을 뿐이다.

누구를 위한 ‘부흥’인가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주민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근본대책(예컨대 새로운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농사짓게 보장하는 등의 정책) 마련 대신, 자국이 참사 피해를 극복하고 ‘부흥’했음을 알리는 데 치중했다. 2020년 도쿄올림픽(실제 개최는 2021년) 유치도 자국의 ‘부흥’을 선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아직 오염물질 제거 및 폐기물 처리, 그리고 생활여건 복원이 완벽하게 마무리된 게 아님에도, 일본 정부는 올림픽 전부터 후쿠시마 주민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러나 주민들의 절대 다수는 일본 정부를 신뢰하지 못한다. 후쿠시마현 후타바군 토미오카마을의 경우 피난구역에서 해제됐지만, 전체 주민 중 10% 가량만이 귀환했다.

귀환자 중 한 명인 이타쿠라 마사오 씨는 2021년 7월 고향의 상황에 대해 “생필품을 살 만한 가게가 없으며, 저는 91살인데도 여전히 차를 몰고 3일에 한 번씩 장을 보면서 제 아내와 둘이서 지내고 있다. 의사 선생님도 없고, 이발소도 없다”며, 여전히 마을엔 엄청난 양의 방사성 폐기물들이 쌓여 있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이타쿠라씨는 “(폐기물의) 2차 보관장소는 어디냐고 물어봐도 그런 곳은 없다. (일본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도 ‘부흥’이라는 구호만 목청껏 외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공급이 불안정한 상황을 언급하며 ‘원전 중심정책으로의 회귀’ 입장을 밝혔다. 정권교체 뒤 ‘탈원전 정책 폐기’에 나서는 한국 정부와 다를 바 없다. <일본농업신문>은 이와 관련해 지난 2월 14일 사설에서 “(일본 정부는) 부흥 도상에 있는 재해지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원전 중심정책으로의 회귀라는) 기본 방침을 결정했다. 원전사고 12년이 지나면서도 사용후 핵연료를 최종적으로 어디 폐기할지 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다”며 “국내(일본) 원전은 해안을 따라 입지하며 주변에는 농산어촌이 많다. 농업생산을 위협하는 에너지 정책이어선 안 된다. 재해지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참고자료

오은정, <부흥과 위험의 헤테로토피 : 후쿠시마현 도미오카정의 발전 과정과 원전 마을의 오늘>(사회과학연구 제61집 2호, 2022)

일본농업신문 2023년 2월 14일 사설 <정부의 원전회귀, 피해지역 목소리 들어라>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