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의 삶, 그리고 국가

  • 입력 2023.03.12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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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 6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해변 인근에서 손질한 붕장어를 햇볕에 말리기 위해 작업 중인 한 주민의 모습 뒤로 월성원자력발전소가 보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6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해변 인근에서 손질한 붕장어를 햇볕에 말리기 위해 작업 중인 한 주민의 모습 뒤로 월성원자력발전소가 보이고 있다. 한승호 기자

2명의 주민이 바퀴가 달린 상여를 끌고 간다. 목재 팰릿에 바퀴를 달아 만든 상여 위엔 ‘주민이주 지원법안 국회통과 촉구한다’라 쓰인 원자로 모형의 돔이 올려져 있다. 상여의 뒤를 이어 각각 관(棺)과 노란 드럼통(방사능물질 저장용 드럼통을 상징)을 같이 끄는 주민 6명이 줄지어 행진한다.

월성원자력발전소(핵발전소)가 위치한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위원장 김진일, 이주대책위) 소속 양남면 주민 및 이들과 연대하는 울산 북구민들은 지난 6일 아침에도 2015년 이래 매주 월요일 아침 8시마다 늘 그랬듯이, 월성원자력홍보관 앞 농성장에서 출발해 약 300m 떨어진 핵발전소 입구까지 행진하는 ‘상여시위’를 진행했다.

이주대책위 주민들이 각자 끄는 관에는 자신들이 이주대책위에서 맡은 직책(위원장·부위원장·국장 등)이 쓰여 있었다. 핵발전소 모형을 상여에 싣고 자신들의 관을 각자가 끌고 가는 행진. 그들은 핵발전소로 인해 천천히 죽어가는 자신들의 장례식과 함께, 핵발전소에 대한 장례식을 같이 치르는 셈이었다.

2014년 8월 결성된 이주대책위엔 초창기 약 150여명의 지역 주민들이 동참했다. 날마다 월성핵발전소 입구에서 피켓시위를 진행했고, 전국 각지를 돌며 원전 주민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이야기했다. 2016년 9월 경주지진 직후 당시 야당 대표가 농성장을 방문해 ‘탈핵정책’ 추진을 약속했을 때, 2017년 그 야당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돼 ‘탈원전 정책’ 추진을 공언했을 땐 그래도 어느 정도 희망을 품었다.

문재인정부는 부산시 기장군 고리핵발전소 1호기 영구정지, 월성핵발전소 1호기의 조기 폐쇄 등 일부 ‘탈원전 정책’의 실시에 나섰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월성핵발전소 인근 주민들과 8개월간 함께하며 그들의 삶을 연구·기록한 연구자 김우창씨(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사 수료과정)는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에선 핵발전소 인근 주민의 생존권 확보를 위한 대안의 고민도, 핵발전소 노동자들의 새로운 삶에 대한 고민도 찾기 힘들었다. 사실상 ‘대체 에너지원 마련’에만 집중했던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탈원전’을 외치면서 정작 ‘원전 인근 주민들의 삶’에 대한 고민은 빠졌다는 게 김씨의 지적이었다. 문재인정부는 이주대책 등 핵발전소 인근 주민 생존권 관련 문제를 사실상 외면했다.

지난해 정권교체 뒤 새로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정부의 불완전했던 탈원전 정책마저 완전히 폐기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그 과정에서 문재인정부의 산업통상자원부가 월성핵발전소의 ‘경제성’을 조작했다는 논란도 제기된다. 윤석열정부는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핵발전 비중을 전체 발전량의 32.8%로 올리려 하는데, 이는 문재인정부의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내 핵발전 비중(25%) 대비 8% 가까이 상향한 비중이다.

정부의 외면 속에서도 이주대책위는 꿋꿋하게 매주 월요일마다 상여시위를 진행 중이다. 한때 100명이 넘었던 이주대책위 참가자가 줄면서 기존 피켓시위를 상여시위로 전환해야 했고, 원래 여럿이 들었던 상여를 인원 부족으로 못 들게 돼 바퀴를 달고 끌게 됐지만(최근 월요일 상여시위엔 10명 안팎이 참가), 그럼에도 주민들은 싸우고 있다.

상여시위 참가자들은 아무 말도 없었다. 구호도 외치지 않고 조용히 상여와 관, 드럼통만 끌었다. 대신 상여에 올린 스피커에서 구슬픈 장례식 곡소리가 ‘배경음악’으로 울려 퍼질 뿐이었다. 참가자들이 하고 싶은 단 하나의 말이자 상여시위를 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그들이 입은 조끼에 적혀 있었다.

“이주만이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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