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안전 위협받으며 살아온 40년 … “이주를 허하라”

  • 입력 2023.03.12 18:00
  • 수정 2023.03.12 21:04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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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 6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월성원자력발전소 입구에서 천막농성 중인 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 소속 주민들이 핵발전으로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상징하는 상여와 관을 끌며 ‘상여시위’를 펼치고 있다. 2014년 8월 25일 시작된 농성은 이날로 3,116일을 맞았다. 한승호 기자
지난 6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월성원자력발전소 입구에서 천막농성 중인 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 소속 주민들이 핵발전으로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상징하는 상여와 관을 끌며 ‘상여시위’를 펼치고 있다. 2014년 8월 25일 시작된 농성은 이날로 3,116일을 맞았다. 한승호 기자

정확히 40년 전인 1983년, 경북 월성군 양남면 나아리(현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바닷가에서 월성핵발전소가 본격 가동되기 시작한 이래, 대부분의 세월 동안 나아리 주민들은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크게 고민하진 않았다. 1986년 소련 체르노빌 핵발전소에서 대형사고가 발생했지만, 그저 공산권 국가의 낙후된 시설에서 발생한 ‘먼 나라 일’처럼 느껴졌다는 게 주민들의 회상이다. 원전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이야기도 당시로선 크게 의심 가진 않았다.

‘원전 안전성’에 대한 주민들의 믿음에 균열이 생긴 첫 계기는 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 대지진과 연이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였다. ‘만에 하나 이곳 경주에도 지진이 나면 월성원전은 안전할까?’라는 의심이 싹트던 중, 2012~2013년 한수원이 각지의 핵발전소에 ‘짝퉁 부품’을 사용한 ‘원전 부품 비리문제’가 드러났다.

시험성적서의 내용이 위조된 부품이 이전 10년간 대량 공급됐고, 이와 연관된 뇌물수수·위조·입찰담합 등의 정황이 드러났다. 2013~2015년 동안 진행된 106건의 핵발전소 비리 관련 재판 결과, 68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원전 부품 비리사건은 나아리 주민들의 한수원에 대한 신뢰, 아울러 핵발전소 자체에 대한 신뢰를 결정적으로 무너뜨린 사건이었다. 이에 양남면 나아리·나산리 등 월성핵발전소 인근 지역 72가구의 주민(약 150여명)들은 2014년 8월 25일 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이주대책위)를 결성했다.

진도 5.8 지진, 그리고 삼중수소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우려는 날이 갈수록 심화됐다. 2016년 9월 12일, 경주·포항 일대에서 진도 5.8의 지진이 발생했다. 월성핵발전소 인근 주민들도 집과 땅의 엄청난 흔들림을 느끼며 ‘집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 ‘핵발전소에 문제가 생기는 거 아니냐’는 공포감에 시달렸으나, 당시 한수원은 주민들에게 핵발전소의 상태 및 대피 방안과 관련해 어떤 안내도 하지 않았다는 게 주민들의 증언이다.

1986년 나아리에 귀농한 황분희 이주대책위 부위원장은 “월성원전 내진설계가 6.0(한수원 측은 진도 6.5 지진까진 견딘다고 설명)이라는데, 그나마 그보다 낮은 5.8의 지진이 발생한 게 행운에 가까웠다”며 “5.8 지진에도 발전소 4기가 전부 가동을 멈추고 계측기도 다 고장났던 상황을 떠올릴 때, 만약 6.0 또는 그보다 강한 지진이 발생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고 증언했다.

월성핵발전소 및 그곳에서 100km도 떨어지지 않은 부산시 기장군 고리핵발전소는 모두 ‘양산단층’ 위에 존재한다. 양산단층은 한반도에서 가장 지진이 많이 발생하는 단층대다.

주민 건강 측면에선 ‘삼중수소’ 문제가 대두됐다. 삼중수소는 자연계의 일반 수소보다 3배 더 무거운 수소로, 일반 수소와는 달리 방사능을 함유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 방류 시 오염수에 함유된 상당량의 삼중수소가 바다에 퍼지리라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삼중수소의 존재가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핵발전소에서의 삼중수소 유출로 인한 방사선 피폭 문제는 월성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이 오랫동안 시달렸던 문제다. 주민들은 지난 수십 년간 월성핵발전소 인근에 거주하다 암 또는 백혈병으로 사망한 주민들이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많았다고 한목소리로 증언한다. 황분희 부위원장의 경우 가족력이 없음에도 2012년 원인 불명의 갑상선암을 진단받았고, 그의 남편도 갑상선 항진증에 걸렸다.

일단 한수원은 삼중수소 문제와 관련해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의 의견을 인용하며 “나라에서 정한 일반인의 방사선 선량한도는 1년에 1mSv이며, 월성원전 인근 주민의 삼중수소로 인한 영향은 연간 0.0006mSv로 기준치의 0.06% 수준”이라며 0.0006mSv의 방사선 피폭량은 “바나나 6개 또는 멸치 1g을 먹었을 때의 방사선 피폭량과 유사하며, 우리나라 국민들은 음식을 통해 연간 약 0.4mSv의 자연 방사선을 피폭받는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한수원 측의 이러한 설명은 30년 이상의 세월 동안 적지 않은 주민들이 암과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원인, 그리고 지금까지 이곳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상태에 대한 의문을 충분히 해소하기엔 부족하다. 2015년 8월 20일 환경운동연합이 월성핵발전소 소재지인 양남면 주민 61명을 대상으로 검사한 결과, 주민 몸속의 삼중수소 검출 평균치는 8.36베크렐이었으며 조사대상 61명 모두에게서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반면 월성핵발전소에서 멀리 떨어진 경주시내 주민 125명을 대상으로 동일한 검사를 진행한 결과, 18.4%인 23명에게서 평균 3.21베크렐의 삼중수소 검출량이 나왔다. 핵발전소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삼중수소 검출량의 명백한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다.

2016년 이주대책위와 환경운동연합이 함께 진행한 나아리 주민 40명 대상 검사결과도 비슷했다.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황분희 부위원장(28.1베크렐)과 갑상선 항진증을 앓은 남편(24.8베크렐), 황 부위원장의 당시 다섯 살 손자(17.5베크렐)에게서 40명 평균 삼중수소 검출량(17.3베크렐)보다 높은 검출량이 나왔다.

지난 2020~2021년에 8개월간 양남면에 머물며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의 삶과 투쟁을 목격·기록한 연구자 김우창 씨(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사수료 과정)는 “해외 핵발전문제 관련 전문가 또는 환경운동가들이 월성원전 인근 마을을 방문할 때마다 ‘어떻게 한국에선 민간인 거주지역과의 거리가 1km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가까운 곳에 원전이 들어서 있는 거냐’며 경악했다”고 밝혔다.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은 핵발전소에서 최소 5~6km 거리 바깥에 민간인이 거주하도록 하건만, 월성핵발전소 바로 앞에 민간인 거주지역 및 상업지구가 조성된 걸 보며 해외 활동가·전문가들이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아픈 몸이 증거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이주대책위가 내건 유일한 대안이 바로 ‘이주대책 마련’이었다. 직접적으로 ‘탈핵’이란 구호를 외치면 그곳에서 농사지으며, 물고기 잡으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40년간 이곳에 자리잡아온 핵발전소와 직·간접적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온 사람들의 생계가 위협받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동안 언급하기 어려웠던 ‘토양과 농수산물의 피폭문제’가 대두되면서,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라는 공간에 ‘방사능에 오염된 곳’이란 낙인이 찍히리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이주대책위는 외부에서 연대하러 온 사람들에게도 ‘탈핵’ 구호 대신 ‘이주대책 마련’ 구호만 외칠 것을 호소했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아픈 몸, 그리고 삼중수소 등에 오염된 몸을 증거로 내밀며 ‘다른 곳에서 살게 해달라’고 한수원, 나아가 국가에 호소했다.

그러나 한수원은 여전히 이주대책위의 주장에 대해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한다. 엄밀히는 2016년 국회에서「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일부개정안(김수민 전 국회의원 발의)이 발의되며 핵발전소 인근 주민에 대한 이주대책 지원사업 실시 관련 근거가 마련되리라는 기대가 싹텄으나, 끝내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주민들이 이사를 가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그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6일 상여시위에 참가한 이주대책위의 한 주민은 “(거주하는 곳의) 토지값이 개똥값이라 어디에도 팔리지 않는다. 집을 내놓아도 어느 누구도 이곳에 입주하려 하지 않는다. 동네의 집들은 한 집 건너 빈 집이다. 거기서 살던 주민이 세상을 떠난 뒤 아무도 그곳에서 살려 하지 않으니까”라고 한 뒤 “당연하지 않나. 안전하지도 않고, 건강하게 살 수도 없는 곳에 누가 희망을 안고 살려 하겠나. 우리는 한수원에 ‘보상’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그저 어디로든 ‘이주’해서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게끔 보장만 해달라는 거다”라고 호소했다.

김우창씨가 이주대책위 주민들의 투쟁을 기록한 책 <원전마을>에서 정리한 데 따르면, 핵발전소 소재지인 나아리의 2006~2020년 부동산 거래량은 양남면 15개 마을 중 가장 낮은 15위였다. 양남면 마을 중 해당 기간 동안 가장 주택 거래량이 많았던 신대리(1,515회. 이 마을은 양남면 마을 중 월성핵발전소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마을)와 나아리(228회)의 거래량 차이는 7배에 달한다. 어느 누구도 이곳에 오지 않으려 하니,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도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다시, 우리는 바위에 계란을 던진다

지난 6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월성원자력발전소 입구에서 천막농성 중인 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 소속 주민들이 핵발전으로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상징하는 상여와 관을 끌며 ‘상여시위’를 펼치고 있다. 2014년 8월 25일 시작된 농성은 이날로 3,116일을 맞았다. 한승호 기자
지난 6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월성원자력발전소 입구에서 천막농성 중인 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 소속 주민들이 핵발전으로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상징하는 상여와 관을 끌며 ‘상여시위’를 펼치고 있다. 2014년 8월 25일 시작된 농성은 이날로 3,116일을 맞았다. 한승호 기자

6일 상여시위 뒤, 주민들은 늘 그렇듯이 농성장에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농성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전부 풀 순 없지만, 이날 주민들의 분위기는 비관적이었다. “우리가 그토록 열심히 싸웠건만 바뀐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더 이상 함께 활동하기 어려울 듯하다”, “2년 정도 더 하면 많이 (투쟁)하는 것 아닌가. 좀 더 싸워보고 그래도 안 바뀌면(이주대책 등의 대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안타깝지만 투쟁을 접어야 할 듯하다. 이젠 정말 힘에 부친다” 등의 이야기가 오갔다.

황분희 부위원장은 눈물이 나는 걸 꾹 참으며 “조금만 더 힘내서 싸워보자”고 독려했다. 황 부위원장은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싸움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들 했지만, 그래도 수만 개의 계란을 던져 바위에 흠집이나마 냈다고 생각한다. 이젠 과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핵발전소의 위험성과 주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고민하지 않나. 우리는 (이주대책위에) 단 한 명이 남더라도 끝까지 바위에 계란을 던지려 한다.”

이날 이주대책위 주민들은 이야기 막바지에 11일 부산시 송상헌광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후쿠시마 핵사고 12년 탈핵행진’ 참가를 결의했다. 그들이 계속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한, 그리고 그들과 함께 계란을 던지는 시민이 늘어나는 한, 결국 바위는 부서지리라.

참고자료 : 김우창, <원전마을>(한티재,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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