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작물재해보험 둘러싼 동상이몽 … 한계 다다른 농민들

  • 입력 2023.02.19 18:00
  • 수정 2023.02.19 18:05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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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동해로 인한 월동무 피해를 반증이라도 하듯 무 선별작업이 한창이어야 할 작업대가 텅 비어있다. 지난 14일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 친환경그등애농산물유통영농조합법인 사무소에서 고권섭 대표가 텅 빈 작업대를 허탈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동해로 인한 월동무 피해를 반증이라도 하듯 무 선별작업이 한창이어야 할 작업대가 텅 비어있다. 지난 14일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 친환경그등애농산물유통영농조합법인 사무소에서 고권섭 대표가 텅 빈 작업대를 허탈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최근 정부가 향후 5년 동안 추진할 농업재해보험 발전계획을 발표했지만 현장의 반응은 냉담하기 그지없다. 농민들은 그간의 현장 요구가 거의 반영되지 않은, ‘운영 편의’와 ‘제도 지속’에 중점을 둔 겉 번지르르한 계획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기상이변으로 인해 매년 다양하게 반복·심화되는 이상기후와 자연재해로 농작물 피해가 증가하고 농가경영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정부의 농업재해 대책은「농어업재해대책법」에 의한 복구비 지원과 농업재해보험 운영, 단 두 가지로 추려진다. 이 중 피해 농가에 농약대·대파대 등을 지원하는 복구비의 경우 그야말로 생산비의 극히 일부분만을 보전할 뿐 영농 재개를 도울 만큼의 대책이 되진 못하는 실정이다. 재해 발생 시 농가 피해를 현실적으로 보장해 줄 수 있는 경영 안전망은 사실상 농업재해보험이 유일하지만, 이마저도 미진한 부분이 많은 실정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5개년 발전계획에는 △보험 대상품목 및 적용지역 확대 △병충해 등 보상 대상 확대 △재해복구비와 보험금 차액 지원 허용 △농작물분과위원회 구성 등 상품개선체계 구축 △수확량과 기준가격 등 보험가입금액 농가 부합성 제고 △보험요율 산정 및 적용기준 합리화 △손해평가 품질 제고 및 재조사 의무화 △보험상품 기초설계 과정 개편 등이 주요하게 담겼다.

이밖에도 농식품부는 운영 안정성 제고를 위해 적정 보험요율 수준 유지와 정부 지원 효율화도 추진할 계획이다. 자기부담비율이 낮은 상품의 운영을 늘려 농가가 필요에 따라 보장수준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누적손해율 기준에 맞춰 낮은 수준의 자기부담비율을 선택하기도 현실 여건상 어려울뿐더러 과수 4종과 벼의 경우 자기부담비율을 10%나 15%로 선택할 경우 국비지원비율이 전체 보험료의 33%와 38% 정도로 낮아져 농가가 부담해야 할 보험료 총액이 늘어나게 된다. 농민들이 5개년 발전계획을 두고 사실상 정부와 보험사의 손해를 덜기 위한 꼼수 아니냐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 이유다.

아울러 농민들은 보험금 지급을 위한 손해평가 지침과 손해평가인력 운영 방식 등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이상 재조사 의무화는 하나 마나 한 일이라는 지적이다. 한파와 폭설로 극심한 피해를 겪고 있는 제주에선 최근 손해평가사들의 피해율 산정방법에 크게 분노하고 있다. 이미 상품성을 잃어 산지폐기까지 진행되는 마당에 멀쩡한 부분과 피해 부분을 갈라 피해율을 산정하고 있어서다.

아울러 고권섭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 의장은 “육지도 거대재해 발생 시엔 마찬가지겠지만 제주도는 특성상 광범위한 면적에 피해가 발생할 경우 손해평가사들이 제때 내려와 정확히 피해율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동해의 경우 일부 회복의 여지가 있어 피해 조사를 언제 하느냐에 따라 피해율이 높게 나오기도, 낮게 나오기도 하는데 피해율에 차이가 발생하면 수령하는 보험금에도 영향이 있다 보니 민감하다”면서 “이의 신청 시 재조사를 의무화할 게 아니라 조사 기준을 현장 상황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 이번에도 손해평가 시 피해율을 40% 이상 잡지 않기로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보이는데 손해평가사가 보험사에 고용돼 업무를 수행하고 업무량에 따라 임금을 받아가는 이상 농민보단 보험사에 유리하게 손해율이 책정될 수밖에 없다. 재조사를 의무화할 게 아니라 객관적인 피해 규모 산정이 가능하도록 제도 자체를 바꿔내야 한다”고 전했다.

 

갈수록 줄어드는 보장범위

5개년 발전계획을 통해 밝혔듯 정부는 수확량과 기준가격 등의 산정방법을 개선해 적정 보험료 부과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보험료는 보험가입금액과 시·군별 기본 보험요율, 개인별 할인·할증률 등을 곱해 결정된다. 보험가입금액은 피해 발생 시 보험에서 최대로 보상할 수 있는 한도액인데, ‘평년수확량’과 ‘기준가격’을 곱하는 방법으로 산출한다. 최근 5년 수확량을 평년수확량으로 따지기 때문에 최근 5년 내 재해로 피해가 발생했다면 그만큼 보장받을 수 있는 범위가 줄게 되는 구조다.

과수 4종 중 배를 예로 들어 올해 착과량이 9만개여도 최근 5년 내 재해로 피해를 입어 5년 수확량 평균이 6만개밖에 안 되면 보험에서 보장하는 착과량은 6만개가 전부인 셈이다. 이 경우 태풍 등으로 9만개 중 3만개가 낙과해도 농민이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은 단 한 푼도 없다.

나주에서 배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 A씨는 “물론 보험료가 오르겠지만, 재해 시 농가 경영안정을 돕겠다는 보험 취지에 맞게 제도를 운영하려면 착과량 전체를 보험으로 보장해줘야 한다. 현재 보험가입률이 가장 높다는 이유로 보험사와 정부에서 단단히 착각을 하는 것 같은데 재해대책이랄 게 보험밖에 없어 가입할 뿐이지 현장 농민 대부분이 말도 안 되게 개악을 거듭하는 보험에 불만이 상당한 상태다”라며 “기상이변의 여파로 재해 발생이 증가하고 그로 인해 보험사 손해가 막중하다고 정부는 제도를 계속 바꾸는데, 정책보험이라는 사업 특성에 맞지도 않는 처사다. 물론 농작물재해보험이 농가에게 상당한 도움이 되는 건 맞지만 지금처럼 근본적인 부분을 개선하지 않고 현장과 소통 없이 품목과 가입률만 늘리는 방향의 발전계획은 장기적으로 제도 유지에 전혀 유리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발전계획을 통해 정부는 수확량 산정방법을 5년 수확량 산술평균 또는 7년 수확량 올림픽평균(최대·최소값을 제외한 평균)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또한 실제 착과량을 담보하지 못하는 만큼 농민들은 보험이 확실한 재해대책으로 역할을 할 수 있게 착과량 계산을 대폭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보험가입금액에 평년수확량만큼이나 큰 영향을 미치는 기준가격은 현재 최근 5년 간의 가락도매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삼는데, 농민들은 오직 ‘반입물량’에 따라 결정되는 경매가격을 기준가격으로 삼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을 거듭하고 있다. 농식품부에선 지난달 말 품목별 유통 현황을 고려해 가락시장뿐만 아니라 전국 공영 도매시장 가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기준가격 산정 방식을 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농민들은 주산지 농협 등을 통해 실제 거래되는 가격을 보험가입가액에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충남 부여군에서 시설하우스 농사를 짓는 한 농민은 보험사가 피복재 부분 피해를 인정해주지 않아 시설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작물 피해까지 입었다. 지난달 31일 해당 농민이 아직 수리하지 못한 시설하우스를 둘러보고 있다.
충남 부여군에서 시설하우스 농사를 짓는 한 농민은 보험사가 피복재 부분 피해를 인정해주지 않아 시설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작물 피해까지 입었다. 지난달 31일 해당 농민이 아직 수리하지 못한 시설하우스를 둘러보고 있다.

 

보험사에 절대 유리한 약관

충남 부여군에서 시설하우스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 B씨는 지난해 3월 강풍에 시설하우스 비닐이 부분 파손되는 피해를 입었다. 농업용 시설물 보험에 가입한 상태였기 때문에 피해를 신고하고 보험금을 수령해 시설을 손볼 생각이었지만, 손해평가사는 피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B씨는 “이미 하우스 10동 피복재가 모두 조금씩 파손된 상태였기 때문에 그대로 뒀다간 비닐이 전부 찢어져 버릴 게 뻔했고 방울토마토 모종을 입식하기 전 개보수를 서둘러야 했는데 보험사가 보상을 해줄 수 없다고 해서 그냥 그대로 작물을 심게 됐다”라며 “예상했던 대로 지붕 쪽 피복재가 전부 터져 난방을 해도 효과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수확량과 품질에도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다. 그제야 손해평가사가 피해율을 따지러 왔는데 약관에 시설 개보수를 하지 않을 경우 전체 파손 시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말을 해서 굉장히 황당했다”고 당시 감정을 토로했다.

이어 B씨는 “본인들이 부분 파손을 인정하지 않았으면서 파손된 부분을 고치지 않았다고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건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따지고 보면 보험사가 피해를 일찍 인정하지 않아 난방비도 더 들고 작물 재배 부문에서도 적지 않은 피해를 봤는데 이건 보험사가 어떻게 보상할 건지 묻고 싶다”면서 “수리를 하지 않으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도 절대적으로 보험사에 유리한 약관이다. 농민들은 보험금이 얼마나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빚을 내 시설을 개보수해야 하는데, 보험금이 실제 수리비용보다 부족하게 나와도 어찌할 방법이 없는 거다”라며 약관의 불합리함을 지적했다.

한편 농민들은 그간 현장에서 강조한 요구사항이 이번 발전계획에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에 깊은 분노를 느끼고 있다. 농작물재해보험에 품목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정철 영암군농민회장은 “현장 의견을 들을 생각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다른 품목단체들과 함께 그간 정부와 기관 등에 요구했던 사안들은 이번 발전계획에 전혀 반영되질 않았다”라며 “농식품부에선 무슨 엄청난 치적인 양 농작물재해보험 가입률이 늘고 있다 홍보하기 바쁜데 실제론 품목 수가 늘어나서 그런 거지 현장 농민들은 점점 보험을 외면하고 있다. 다른 보험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재해대책이랄 게 농협 농작물재해보험 뿐이라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가입 중이란 걸 알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그간 농작물재해보험과 농업재해보상법 제정 등 관련 제도 설계방향 등을 연구한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기획팀장은 “향후 5년 동안 추진할 기본계획인데도 예산과 관련된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이상기후와 재해 발생이 늘어나는 상황 속에서 농가 피해를 경감시킬 유일한 대책인 농작물재해보험 예산 또한 획기적으로 늘어나야 하는데 예산확보 계획이나 방안이 담겨 있지 않고, 가입률을 2027년 6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 외에 세부 추진계획도 포함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이 팀장은 “단편적으로 보험가입률만 높일 게 아니라 농민들이 재해로 피해를 입었을 때 실질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로 바꾸기 위해 정부는 보험사업의 목적과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또 현재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영세농들을 위해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제도를 보편화시키려는 노력이 중요하고, 보험이라는 제도가 가진 한계가 있는 만큼 재해보상법 제정 등도 충분히 고려해 봐야 한다”라며 “농업재해보상법의 필요성과 가치를 공감하고 일정 부분 합의를 맞춰 나간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아울러 과거와 비교해 발전 기본계획이라는 틀 안에서 현장 의견을 수렴하려는 노력을 하긴 했지만, 요구사항이 반영된 부분은 하나도 없다는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향후 실천계획 등을 통해 기본계획이 보완되고 현장의견이 반영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이번 기본계획이 현장의 요구를 일부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하면서도, 관련 부서를 통한 까닭에 개별 품목단체와의 소통은 다소 부족했다고 시인했다. 이어 현장의 품목단체가 분과위원회 등에 협조 의사를 전하거나 건의사항을 제출한다면 내부 논의를 통해 이를 수용할 의사가 있다고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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