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괴리감 여전한 농작물재해보험, 현재로선 5개년 계획도 의미 없다

  • 입력 2023.02.19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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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 14일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에 위치한 무밭에서 고권섭씨가 수확을 앞둔 월동무를 세로로 자른 다음 동해를 입은 무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고씨는 3,000평에 달하는 밭 전체를 둘러보며 “폐작 수준으로 수확할 게 없다. 갈아엎는 수밖에…”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4일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에 위치한 무밭에서 고권섭씨가 수확을 앞둔 월동무를 세로로 자른 다음 동해를 입은 무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고씨는 3,000평에 달하는 밭 전체를 둘러보며 “폐작 수준으로 수확할 게 없다. 갈아엎는 수밖에…”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한승호 기자

 

월동무에 특히 집중된 제주 월동채소 동해가 ‘폐작’ 수준에 이르렀다. 수확을 한 달여 남짓 앞두고 닥친, 유례없는 한파와 역대급 폭설로 최근 제주에선 산지폐기까지 이뤄지는 실정이다.

농민들에 따르면 이번 월동무 동해는 고도가 낮아 한파 피해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 저지대에서도 발생했으며, 피해 정도가 심각해 지난 14일 우도에서 예정된 월동무 수확 작업이 취소됐다는 후문까지 들릴 정도였다.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일원에서 월동무를 재배 중인 농민 김승규(55)씨는 “작물을 키워내기 위해 필요한 농작업은 이미 다 끝난 상태다. 이제 수확만 하면 되는데 이렇게 피해가 발생해 다들 할 말을 잃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어 김씨는 “도에서 산지폐기를 진행해 평당 1,980원이 지원될 예정이지만, 지금 월동무가 심겨 있는 밭 임차료만 평당 2,500원이다. 적자를 피할 길이 없다”라며 “농작물재해보험을 들었지만, 손해평가사들이 와서 하는 얘길 들어보니 자부담 20% 를 제하고 나면 보험금이 얼마나 나올지 모를 일이다. 지금 어림잡아 일곱 군데서 무를 뽑아 세로로 가른 다음 피해율을 산정하고 있는데, 판매할 수 없는 무의 피해율을 굳이 따진다는 것 자체도 이해가 안 될 뿐더러 평가사들 말대로 피해가 50%면 나머지 50%는 어디에 팔아 무슨 값을 받으라는 얘기인지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제주도는 지난달 말 대설과 한파로 동해를 입은 월동무 포전 규모가 3,413ha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 중이다(2월 9일 기준). 전체 월동무 재배면적은 3,648ha로 도내 대부분(93.5%)의 월동무에 피해가 발생한 셈이다. 피해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판단 아래 제주도는 36억원을 들여 월동무 시장격리를 추진 중이지만 NH농협손해보험과 보험사가 고용한 손해평가사들은 ‘지침’에 따라 폐기를 앞둔 밭에서마저 피해율을 계산하느라 여념 없는 모습이다.

농민들은 “사과나 배처럼 피해 본 작물을 어떻게 가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갈아엎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인데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이 무는 피해가 40%고 이건 80%라고 떠드는 걸 보고 있자니 화가 치민다. 사실상 팔 수 있는 무가 하나도 없는데, 평가사들 방법대로 따지고 나니 피해율이 45~56% 정도 나온다. 자부담 20% 빼고 나면 보험금은 20% 남짓인 거다”라며 “이럴 거 뭐하러 내 돈 내고 보험 들었나 싶다. 보험제도를 진짜 목적대로 농가 경영에 도움되게 운영하려면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하는 보험료를 보험사에 흘려보내 차 떼고 포 뗄 게 아니라 농민에게 직접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농민들이 농업재해보험에 제기한 실효성 논란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반복·심화되는 자연재해로 보험사의 손해가 이따금 대두되고 제도의 안정적 운영에도 빨간불이 켜지자 정부는 지속성을 담보한다는 명목 아래 운영사 편의를 봐주는 방향으로 보험에 거듭 손을 대곤 했다. 제도 개선이라고 표현됐지만, 농민에겐 개악이었다. 피해 발생 시 보험금과 직결되는 가입금액은 점차 작아졌고 형평성을 이유로 과거 재해를 당한 농가의 자부담률은 높아져만 갔다. 정부는 자부담률에 따라 국고 보조도 줄였다. 보험제도가 개선에 개선을 거듭할수록 ‘자연재해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보상해 농가의 소득 및 경영안정에 기여한다’는 본래 목적에선 점점 멀어진 형국이다.

지난달 말 농림축산식품부는 ‘제1차 농업재해보험 발전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6월 1일 시행된「농어업재해보험법」에 따른 첫 5개년 법정 계획이다. 몇몇 주요한 내용이 눈에 띄지만, 농민들은 현장 목소리를 전혀 담아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한국농정>은 정부의 5개년 발전 계획과 농작물재해보험에 대한 현장 농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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