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은 명문가의 집안에서 수재로 자라난 사람이다. 그러나 출세와 벼슬에는 관심이 없이 평생을 학자로서만 지내다가 오십이 넘어서야 생계를 위해 지금의 함양군 안의면 일대의 안의현감으로 몇 년간 일을 했다. 연암은 현실에 깊은 회의를 가지고 두통과 우울증을 앓고 있었지만 양반전, 광문자전, 호질, 민옹전 같은 글을 통해 양반계급과 현실을 비판하고, 그러면서도 유머 넘치는 글을 쓴 훌륭한 작가였다. 이용후생을 내세우는 북학파를 이끌며 학문을 했던 사람으로 청나라의 문물을 보고 기록한 기행문인 열하일기는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전해진다.연암은 학문만을 하다가 안의현감으로 부임했지만 책상 앞에서만 쓰이는 공부를 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매우 직분을 잘 수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인근에서 끊임없이 동원
여주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지내고 1990년 체육청소년부 장관을 지낸 정모 의원이 신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이후 모처에 모여 회식을 했더란다. 그때 그 자리에 초대받은 정모 의원이 늦게 도착해 걸판지게 취한 장성들을 향해 내던진 한마디가 ‘똥별’이였단다. 그날 정모 의원은 장성들에게 얻어맞았다나 어쨌다나. 이미 고인이 돼버려 확인할 길은 없지만 어쨌든 정곡을 찌른 말이었다. 지금은 달라졌겠지만 군대에서 유행했던 말을 살펴보면 군대 내의 사회상도 함께 볼 수 있어 흥미롭다. ‘군대일 하나마나, 군대잠 자나마나, 군대밥 먹으나마나’란 말과 ‘소령중령대령은 권총도둑놈, 소위중위대위는 깡통도둑놈, 일병이병상병은 깜밥도둑놈’이란 유행어를 보면 군대내의 부패구조를 여실히 드러낸다 하겠다. 이런 군대
교정치료는 다른 치과치료에 비해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되고 일반적으로 입 안에 고정식 장치를 부착하고 있기 때문에 교정치료를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좀 더 구강관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교정 치료 중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교정치료를 시행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흔히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므로 환자나 보호자가 담당의사의 지시에 잘 따르고 협조한다면 큰 부작용 없이 교정치료를 마무리 할 수 있습니다.❶ 치아 표면의 탈회와 충치탈회란 치아표면이 하얀색으로 부식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교정치료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발생할 수 있지만 보통 1년 이상의 기간 동안 고정식 장치(브라켓)를 부착하고 있는 교정환자의 경우 음식물이 잘 끼고 칫솔질이 어렵기 때문에 보통의 경우보다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선택도 놀랐다. 정부에서는 입만 열면 농정이 우선이요, 농민을 위해 온갖 노력을 하는 것처럼 선전을 해대더니 실상은 아예 정책이라곤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니. 게다가 그런 말을 농림부 당국자에게 직접 들으니 실로 아연할 따름이었다.이미 마음이 떠난 학교생활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대학 진학이나 취업을 준비하는 학우들 틈에서 선택은 한 가지 고민에 휩싸였다. 졸업하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농민운동을 할 것이냐, 아니면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 근거지를 마련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처음에는 당연히 고향으로 가려 했는데, 집이 충남 부여 인근인 재열이 자신은 경기도 수원에서 농민운동을 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흔들렸다. 그나 선택이나 조건은 비슷했다. 둘 다 어려운 형편인 집안의 장남이었다.“선택 형도 마
우리는 생강을 김치를 담글 때 양념으로 쓰고 주로 생선이나 육류의 냄새를 제거하는 등의 향신료로 사용한다. 양념이라는 말은 약으로 생각하고 먹으라 하여 약념(藥念)에서 출발했다. 藥念 중의 대표인 생강은 따뜻하고 매운 맛을 가진 약성이 강한 약재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우리가 몸에 좋다고 해서 양념으로 쓰이고 있는 약성이 강한 음식의 재료들을 밥이나 빵처럼 많은 양을 상식(常食)하면서 몸이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옳지 않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양념은 약념(藥念)일 뿐이니 음식의 맛과 향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아주 조금씩 넣어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생강은 고려시대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고려 현종 9년인 1018년에 최초로 재배되었다는 기록을 고려사에서 찾을 수 있다. 비장
논두렁을 건들건들 걷는 모습이 건달 같아서 건달농사꾼이라 했든가. 평생농사를 지어도 아내의 입에서 늘 튀어 나오는 건달농사꾼. 하는 일이 옹골지거나 맵차지 않고, 하는 듯 마는 듯 하는 사람을 두고 건달이라고 했다.건달의 원래 말이야 간다르바에서 나온 말씀이다. 간다르바는 부처님 곁에서 악기를 다루는 악사들의 이름이다. 실제 석가모니 옆에서 악기를 켜던 건달들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절간에 들어서면 사천왕문을 지나는데, 네 분의 사천왕 중에 악기를 들고 있는 분부터 많은 탱화에는 그렇게 등장한다. 그러니까 건달은 보컬그룹의 다른 이름이지 싶다. 그런데 보컬그룹 사람들이 생업은 안하고 늘 노래에 악기나 켜는 모습이 안 좋게 보였나 보다. 그래 션찮게 일하거나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우리는 건달이라고 한 것이
“다들 똑똑한 젊은이들이니까 한자 뜻만 풀어도 무슨 뜻인지 알 겁니다. 한 마디로 논에 베지 않은 나락이 서 있는 채로 미리 판다는 이야기지요. 당장 돈이 급하니까 돈 있는 사람이나 쌀장수에게 헐값으로 넘기게 되는 겁니다. 그런 형편이니까 당연히 추수기 때 가격보다 아주 싼 가격에 넘길 수밖에 없고, 다시 돈이 궁하게 되니까 이듬해에는 더 빨리 입도선매에 나서고, 이런 과정이 삼사년 반복되면 결국 논까지 빚쟁이한테 넘어가고 맙니다.”권태헌은 잠시 말을 멈추고 젊은이들을 둘러보았다. 농정국 관리의 말에 회원들은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않고 귀를 기울였다. 농촌의 궁핍한 실상에 대해 알 수 있는 길은 거의 없었다. 가끔 개탄하는 어조의 신문 칼럼이 나오는 정도였다. 권태헌의 말은 듣기에 따라서 정부가 농업 정
아침저녁으로 부는 찬바람이 솜털을 일으켜 세운다. 늘 그래왔듯 지리산 깊은 골짜기의 가을은 겨울이 벌써 턱 앞에 와있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제대로 난방을 해야 하는 기간이 6개월은 되는 곳이라 이쯤에는 김장 걱정, 메주 걱정, 난방 걱정, 겨울옷 걱정 따위로 통장의 잔고를 자꾸만 살피게 된다. 우리 집은 농사 없이 사는 살림살이라 가을걷이로 넉넉한 이웃들과는 달리 텅 빈 창고 때문인지 한기가 뼛속까지 스미는 걸 느낀다.아침에 일 보러 나오는데 병원에 가야겠다며 어머니가 따라나서신다. 그런 어머니의 얼굴이 여느 날과는 달리 어째 어두워 보인다. 평소에 하는 어깨 치료 말고 또 어디가 편치 않으신가 하여 궁금하지만 선뜻 여쭙지 못하고 눈치만 살핀다. 살림 팽개치고 나다니는 죄인 같은 딸이라 그렇다. 그러다
황금들녘이 점점 좁아져 간다. 들판은 풍년인데 농심은 흉흉하다. 정부의 거짓말에 넌더리가 난단다. 언제나 관료권력은 거짓으로 점철했다.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것이 농심이다. 그렇게 역사가 흘러 대명천지 현재도 거짓말로 일관된다.일미칠근(一米七斤)이란 말이 그렇다. 쌀 한 톨에 농부가 흘린 땀방울이 七斤이라고? 역으로 말하면 땀방울七斤이 들어있지 않은 쌀은 쌀도 아니다 란 것 아닌가. 그 의미는 농부들은 농부격에 맞게 열심히 땀 흘려 일해라, 손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또는 허리가 굽어 알아서 기도록하란 말이다. 은근한 협박이며 이데올로기지 않은가. 그래서 쌀 한 톨에 담긴 七斤의 의미를 풀어 보았다.쌀의 전래는 중앙아시아로부터 시작한다. 거기 곤륜산이 있고 서왕모가 산다. 서왕모의 정원에는 복숭아나
간혹 아이가 또래보다 말하는 것도 늦고 발음도 부정확하다고 걱정을 하시며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오시는 부모님이 계십니다. 이런 아이들을 검사해 보면 ‘시옷’이나 ‘치읓’ 등의 발음을 분명하게 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그저 습관적으로 발음을 하거나, 어리광을 부리거나 귀여워 보이기 위해 일부러 혀 짧은 소리를 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부정확했던 발음이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정확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그러나 ‘혀 짧은 소리’는 단순히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또는 일부러 내는 소리가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혀가 짧아서 의도하지 않게 혀 짧은 소리를 내는 경우가 있습니다.혀가 짧다고 하는 것은 실제로 혀의 길이가 짧다는 말이 아닙니다. 혀 끝과 혀의 아래
자연치가 없어지면 할 수 있는 방법은 과거에는 브리지와 틀니가 있었다.하나의 치아가 빠지면 인접한 두 개의 건강한 치아를 갈아서 이를 기둥으로 삼아 다리를 놓는 것과 같은, 말 그대로 브리지(bridge)를 치료의 기본으로 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자연치아의 훼손이 심각하고 일정기간 지나면 2차적인 질환이 발생할 수 있었다.브리지의 문제점은 첫째, 자연치를 갈아야 하는 어려움이다. 기둥치아에 소위 금니가 들어갈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멀쩡한 치아를 갈아내어야 한다. 이렇게 갈아내는 것은 기둥치아를 매우 약하게 만들고 수명을 짧게 만든다.둘째, 옆니에 매달려 있는 형상이니 인접치가 원래 설계되어진 것보다 많은 하중(약 50% 이상)을 더 받게 되어 수명에 한계가 있었다.틀니는 브리지보다도 더 많은
재열에게서 미리 들은 권태헌이라는 이는 특이한 경력에 협동조합운동에 대해 강한 열의를 가진 인물이었다. 이미 일제하에서부터 만주에서 농업합작사를 통해 조합운동에 눈을 뜬 그는 해방 후에 농림부에 특채되어 지속적으로 조합운동을 펼쳐나갔다. 조봉암이 농림부장관을 하던 시절에 그에게 협동조합운동의 경험과 이론을 제공한 사람도 권태헌이었다. 조봉암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협동조합이 우리 농촌의 미래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협동조합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 이승만과 국회를 장악하고 있던 한민당 세력은 농촌에 변화를 불러올 협동조합운동을 적극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결국 법안은 국회에 계류되었다가 폐기되었고 이후 육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도 농협법은 통과되지 못하고 있었다.“선생님은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