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들른 경로당이 썰렁하다. 지난 가을 이후 일곱분이 요양원에 들어가셨다. 그 중 한분이 엊그제 돌아가셨다. 흔한 화투짝도 펼쳐져 있지 않다. 누가 보는건지 마는건지 TV소리만 요란하다.때가 됐음에도 ‘밥 먹자’ 소리를 아무도 하지 않고 있다. 개중에 젊은 분이 끼니를 도맡다시피 했었는데 엊그제 아들집에 가셨다 한다. “오늘 점심은 그냥 라면으로 때웁시다.” 누군가 이야기 하신다. 괜히 멋쩍은 건 나다. “그럼 편히들 쉬세요.” 되돌아 나오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양지쪽 논두렁에 누군가 앉아있다. 가까이 가보니 냉이를 캐고 계
복대2리 마을회관에서 ‘꿍짝꿍짝’ 커다란 노랫소리가 들립니다. 벌써 시작을 했나봅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강사님과 참석자들이 활짝 핀 얼굴로 주고받는 노랫말에 힘이 납니다.제가 살던 마을에서는 김장을 담그고 나면 마을회관에 아침부터 어르신들이 모이셨습니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려 아침드라마를 다 보시고 점심을 준비합니다.점심을 먹고 나면 몇 분은 쪽잠을 주무시기도 하지만 대여섯 분이 모여 방구석에 있는 닳고 닳은 담요를 방 가운데로 옮기고 화투를 잡으십니다.혹시나 했던 시작은 역시나로 진
아랫녘 끝자락의 들판은 한겨울에도 푸르릅니다.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시금치나 마늘 등 월동작물이 한여름의 빛깔과 다르지 않으니까요. 나는 남해의 이 겨울이 따뜻해서 좋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단 한 철의 휴식도 안 줘서 싫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노루꼬리만큼 짧은 겨울 해를 안고서 시금치를 캐는 농민들의 손놀림이 분주하기만 합니다.올해는 어쩐지 시금치 가격이 없습니다. 파종기에 넉넉히 내린 비와 초겨울의 온화한 날씨 때문에 발아율과 초기생장이 좋았던 탓일 것이고, 시금치 발아 후 연이은 폭우가 없었던 탓에 월동작물의 주적 노균병 피
글을 쓴다는 건 이런 것인가 보다. 한 해가 다 가도, 새해가 밝아도 그게 그것이고 그 날이 그 날이어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렇게 글을 쓴다고 앉아 있으니 지난 한 해가 돌아봐진다. 작년은 내게 어떤 한 해였을까?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우리 집에서 제일 가까이에 있는 친구이다. 집이 가깝다보니 만나는 것이 부담 없어 자주 만날 거리를 만든다. 혼자서 하기 어려운 일이 있으면 불러서 같이 하기도 하고, 혼자 하기에 지루한 일이 있어도 같이 하고는 했다.요즘처럼 밤이 긴 날에는 노트북으로 영화도 같이 보고 술도 같이 한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 준비하는 요즈음 마을마다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총회가 열린다. 마을 이장을 새로 뽑기도 하고, 마을기금의 대부분이 마을 어르신들의 조의금으로 쓰여 졌음을 보고한다. 마을이 초고령화 됐음을 알 수 있다.마을총회는 대부분 마을의 대동계를 겸하고 있다. 두레, 품앗이라는 이름이 아주 오랜 이야기가 돼버렸지만 그래도 우리 마을엔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있다. 나 어릴 적만 해도 두레와 품앗이가 살아 숨 쉬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마 내 세대가 농촌공동체를 목격했던 마지막 세대가 아닌가 싶다.마을총회는 어느새 삼천포로 빠져
아들과 딸, 겨울을 끝내고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여러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주말을 이용해 서울 사는 친구와 집을 보러 가곤 했던 아들. 농민대회 참가를 위해 서울로 가려는데 아들도 서울에 집 보러 간다해서 같이 올라왔고 민중대회 끝나고 아들을 만났더니 방 두 개의 집을 계약했다고 합니다.여러 번 허탕을 치다 구한 집이라며 아들과 아들친구는 집의 이 곳 저 곳 사진을 보여주며 좋아했습니다. 아들과 그 친구가 구한 집은 보증금 300에 월세 35만원. 노부부가 일층에 살고 이층을 월세로 놓았는데 집주인들의 인상도 좋아 별 문제 없이
서 푼어치도 못 되는 말재주와 일천한 경험을 갖고서도 아주 가끔 사람들 앞에 나설 때가 있습니다.대부분 여성농민들 앞입니다. 농업현실을 이야기 하고 또 당신들의 삶이 얼마나 값지고 훌륭한지를 말하다 마지막에 희망 비슷한 바람을 살짝 말하고는 마무리를 하는데, 할 때마다 복잡한 감정이 생겨납니다. 수십 년 간 비슷한 일을 해온 사람들의 깊은 통찰력에서 나온 혜안과 숱한 생활의 어려움을 감당해온 사람들의 내공을 느낄 때면 부끄러울 수밖에요.무엇보다 나의 생각과 경험이 진실로 사람들 앞에 설 만큼 무르익었나? 또는 여성농민들이 진정으로
1. 농촌에 흔한 그녀 이야기농사짓기 시작한 지는 20년 정도 되었다. 대구에서 장사하다가 형편이 어려워져서 시부모님들이 계시는 이곳으로 왔다. 시골로 오기는 했으나 농사의 ‘농’자도 모르려니와 농사를 지을 생각도 없었고 농사를 짓게 될 줄도 몰랐다고 한다. 남편이 “밥만 해 주면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와서 보니 농사일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농사규모는 8ha 정도이고 수도작이 주작목이나 양파, 생강, 고추, 배추, 참깨 등 밭작물도 다양하게 한다. 논일은 이른 봄 논에 거름내기부터 가을에 벼 수확까지 남편과 같이 둘이서
아침이다. 안개가 자욱하니 날이 쉬이 환해지지도 않는다. 정해진 시간에 꼭 출근해야 할 이유가 없고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며 집을 떠났으니 따로 밥 달라고 조르는 이도 없다.물론 남편에겐 늘 일찍 일어나는 이가, 배고픈 이가 밥을 알아서 먹는 거라 귀에 못이 박히게 이야기를 해놓았던 터라 밥 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전쟁 같은 추수가 끝난 후의 달콤한 아침. ‘이불 밖은 진짜로 위험해’를 되뇌며 오랜만에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본다.해와 함께 시작하는 농사일, 이제는 해가 짧아졌으니 ‘룰루랄라’다. 이전의 농부들은
전반적으로 날이 따뜻해졌다고는 하나 예고 없이 훅하고 찾아오는 추위와 된서리 피해를 피하려면 여주는 11월 첫 주나, 둘째 주에 김장을 담습니다. 도시 자식들의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그 때 김장을 하지 못한다면 무는 미리 뽑아두어야 하고 배추는 매일 천막을 씌웠다 벗겼다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지요.우리 식구 4명만 먹었던 예년 김장과는 다르게 올해는 예년 두세 배의 배추를 절였습니다. 첫날 밭에서 따온 배추를 절이고 양념 준비하고 김치 담을 그릇내고 배추 씻고 속 버무린 후 배추김치 만들고 깍두기 하고 달랑무 김치 담고 나니
해마다 11월 11일을 즈음하여 각 지자체별로 농업인의 날 기념식을 합니다. 행사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수농산물을 전시하고 선진적(기준은 다르지만) 농민들을 시상하며 농업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농민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더불어 이 어려운 경제상황에 농업인들이 더욱 증진해줄 것을 부탁하며 준비한 음식을 나누는 자리를 갖습니다.암요, 이런 행사를 잘 기획해서 이 어려운 농업환경에서도 농업을 지켜가는 농민들을 위로하고 또 농업의 발전방향을 나누는 일은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일이지요. 다만 농업정책과 같은 박자가 돼야 하는데 정
지역에 로컬푸드직매장을 만들고 나서 더 바빠졌다. 농번기고 뭐고 간에 매장문은 매일매일 열어야 하고 매일매일 팔 농산물은 있어야 하니 아무리 농사일이 바빠도 틈틈이 쌈채소 몇 봉, 무 몇 개, 배추 몇 포기 들고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든다.그 날은 나락 베던 날이었다. 아침부터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았지만 로컬푸드직매장에 구색이라도 갖춰주자 싶어서 텃밭에서 재배한 채소 몇 가지를 들고 나갔다. 빨리 진열해놓고 와야 하는데 다른 생산자들도 있고 하니 마음처럼 빨리 일처리를 할 수가 없었다.그래서 “아이구, 큰일났네. 오늘은 나락 베는 날